"2주 만에 100만 줄 팔렸다"...미국서 '한국 냉동 김밥' 돌풍
국내 식품업체, 김밥 100만 줄 수출
간편·비건 취향 노려 현지 입맛 사로잡아
유럽, 호주 등 진출...K푸드 관심 확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주셨는데,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과 조롱을 당했어요. 지금은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 김밥을 팔고 심지어 매진까지 됐네요."
-재미 음식 블로거 세라 안
지난달 16일(현지시간) 틱톡에 올린 '김밥 먹방' 영상으로 큰 화제가 된 재미(在美) 한국인 음식 블로거 세라 안(27)씨가 최근 미국 NBC방송에 출연해 한국 김밥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아시아음식으로 평가절하됐던 김밥이 미국에서 매진 행렬을 일으키고 있다. 안씨가 올린 영상은 이달 6일 기준 조회수가 1,100만 회를 넘었다. 미국 인플루언서들도 앞다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밥 먹방 영상을 올리고 있다.
미국 시장 무기는 '냉동 김밥'
미국에서 한국 김밥 열풍이 거세다. 지난달 초 미국 초대형 할인점인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를 시작한 한국 김밥은 약 2주 만에 완판됐다. 미국 전역 500여 개 매장마다 '사재기' '오픈런'까지 이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제발 그만 좀 사가라. 매일 사러 가는데 날마다 품절"이라는 하소연도 올라왔다.
김밥 생산 업체는 포장지에 'Kimbap'이라고 상품명을 적고, '한국식 두부(유부)와 야채가 들어간 김 말이'라는 소개 문구를 넣었다. 가격은 3.99달러(약 5,400원)로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일반 김밥(7~12달러)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
직원 80여 명에 불과한 이 업체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2021년 4월 '냉동 김밥'을 개발했다. 김밥을 영하 45도에서 급속 냉동해 수분 손실과 원료 손상을 줄이고, 촉촉함은 살렸다. 냉동 보관기간도 12개월로 늘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4월 '바바김밥'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지난 7일 '바바김밥'을 구매해 맛봤다. 냉동 상태로 배송된 김밥은 전자레인지에 2분 10초간 돌리면 갓 싼 김밥처럼 윤이 난다. 맛은 자극적이기보다 다소 슴슴한 편이다. 담백하면서 고소한 김과 적당히 찰기가 도는 밥알의 조화가 느껴졌다. 김밥 종류별로 우엉, 단무지, 당근, 참기름, 깻잎 등 각종 재료를 가득 넣었지만 한 입 크기로 먹기 편하게 잘라 만든 점도 인상 깊었다. 양은 230g, 칼로리는 368㎉였다. 포장 용기가 3칸으로 나눠져 있어 해동과 보관도 쉽다.
미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유부 우엉 김밥'을 비롯한 냉동 김밥 10여 종은 쿠팡 등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아 구하기가 어렵다.
"육류 수출 어려워 채식으로"… '건강식' 통했다
한국 김밥의 미국 입성은 쉬운 게 아니었다. 미국 시장을 개척한 이 식품업체 관계자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김밥이 미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렇게 대박이 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제품 선정에서부터 품질 인증, 심사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느라 수출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미국에 육류를 수출하는 데 제약이 있어 소고기 대신 유부와 우엉을 넣은 김밥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노선을 바꾸기로 한 선택이 전화위복이 됐다. 육류를 뺀 '비건 김밥'이 되면서 건강을 위해 채식이나 '글루텐 프리(Gluten-Free)' 음식을 찾는 미국 현지인의 눈길을 사로잡게 됐다. 게다가 지난해 방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이 즐겨 먹는 김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영향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판매 허가는 떨어졌지만 현지 유통업체를 찾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이 업체는 트레이더 조에 입점하기 위해 현지 유통업체에 수차례 견적서를 보내고 김밥을 홍보했다. 1년여 만에 계약이 성사됐다. 초도 물량은 250톤 규모, 김밥 약 100만 줄. 이 업체 관계자는 "냉동 컨테이너 하나당 김밥 5만 개씩 실어 바다 건너편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한국 김밥 뭐길래"…유럽도 진출한다
미국에서 한국 김밥 열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진출에 성공한 이 업체 직원들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당장 다음 달 말 미국에 보낼 김밥을 생산해야 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이전에는 하루에 김밥 3만 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면 유통기한 등을 고려해 30~40% 정도만 생산했는데, 지금은 라인까지 늘려 공장을 '풀 가동'하고 있다"면서 "생산량을 3~4배 늘린 셈"이라고 했다.
유럽과 오세아니아 등 해외 수출 문의도 폭주하고 있다. 해당 업체는 다음 달 열리는 독일 식품박람회에서 냉동 김밥을 선보이며 유럽 시장 진출도 꾀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영양과 맛, 편의성 3박자를 고루 갖춘 한국 김밥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제품 개발과 수출 경로 마련 등을 통해 김밥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NBC방송은 "한국 문화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와 소셜미디어가 맞물리면서 김밥을 비롯해 미국에서 'K컬처'가 빠르게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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