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마가 산업이라고? 안동 헴프 규제자유특구 가봤더니

안동(경북)=최영찬 기자 2023. 9. 1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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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대마의 변신은 '무죄'③] 실증사업 종료까지 1년… 여전히 규제에 묶인 헴프산업

[편집자주]마약으로 불리는 대마가 변신하고 있다. 대마에서 추출되는 CBD(칸나비디올) 성분 덕분이다. CBD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뇌전증,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서 약효를 입증하고 있다. 대마씨앗은 단백질과 비타민 등 식품 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대마에 대한 산업적 활용도가 커지면서 관련 시장은 2025년이면 20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 세계 각국이 빗장을 풀고 있는 대마 산업을 살펴봤다.

노수향 농부심보 대표가 재배 중인 헴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 대표는 내년 11월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 실증사업 기간이 종료되는 것에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사진=최영찬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마리화나? 마약류 대마를 먹고 바른다
②의료용 대마 사용, 해외선 합법 vs 국내는 불법
③[르포] 대마가 산업이라고? 안동 헴프 규제자유특구 가봤더니

눅진하고 퀴퀴한 냄새가 가득해 속이 메스껍고 불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경북 안동시 임하면에서 대마를 재배하는 시설에 들어갔을 때의 기분이다. 대마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마약으로 분류돼 있는데 이곳에서는 어떻게 재배하는 걸까.

안동은 전국에서 생산되는 대마의 약 90%가 나오는 지역으로 대마를 활용한 안동포를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두고 있다. 이런 점이 2020년 8월 대마의 의료적 활용에 대한 부분적 실증특례를 부여받아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특구)로 선정된 배경 중의 하나다. 헴프는 대마의 영어식 표현이다.

특구에서는 규제로 인해 활용하지 못했던 헴프의 미수정암꽃과 잎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CBD(칸나비디올)의 추출과 제조, 헴프 관리에 대해 실증특례를 받고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다.

기자가 찾은 대마 재배시설은 헴프 재배 실증사업이 이뤄지는 농부심보의 시설이다. 외부 공기 유입을 일체 차단해 대마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이 냄새가 낯설어 연신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노수향 농부심보 대표도 초기에 이 냄새에 익숙하지 않아 숨쉬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고 귀띔했다.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스마트경험디자인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노 대표는 수경재배에 활용하는 수경기를 연구하다 실증사업에 참여함으로써 헴프 재배에 도전했다. 그는 "국내서 헴프 사용이 합법화되면 시장 규모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당장 수익을 올릴 수 없음에도 헴프 재배 실증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마가 마약류인 만큼 재배 과정에서 도난·유출 등을 방지하기 위한 보안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마 줄기별로 식별번호를 매긴 QR코드를 부착해 관리하고 있으며 대마가 있는 공간에 드나들 때마다 출입대장을 작성해야 한다. 대마 꽃, 잎 등을 외부로 반출할 수 없도록 주머니없는 방진복을 착용해야 한다. 여기에다가 재배 공간 곳곳에 CCTV(폐쇄회로TV)를 설치해 물샐 틈 없는 보안이 이뤄지고 있다. 24시간 CCTV영상을 관제하는 기술을 실증 중인 우경정보기술의 이용준 이사는 "국내 최초로 전주기 헴프 이력관리 시스템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헴프 재배 특구사업자가 수확한 잎과 미수정암꽃은 CBD 제조 및 의료목적 제품을 연구하는 기업에 보내진다. 이 과정에서 환각성분이 0.3% 이상 함유된 잎과 미수정암꽃은 저울로 무게를 측정한 이후 지자체 담당 공무원, 안전관리 특구사업자 입회 하에 소각된다.

유한건강생활 연구소는 헴프에서 의료목적의 CBD를 제조하고 의료목적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초임계유체추출기술과 정제기술을 실증 중이다. 안선미 유한건강생활 천연물연구 2팀 박사에 따르면 초임계유체추출기술은 용매를 사용하지 않고 산업계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대마에서 CBD를 추출하는 기술이어서 환경친화적이다.

안 박사는 "고순도의 CBD를 만드는 기술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추출한 액체 상태의 CBD를 정제한 뒤 나오는 CBD 파우더는 현재 연구소 한쪽의 창고 속 냉장고에서 나올 수 없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CBD가 국내서는 마약으로 분류돼 있어 활용할 수 없어서다.

연구소 내 헴프 관련 보안도 철저했다. 우선 연구원의 연구복에는 주머니가 없다. 주머니에 몰래 넣고 외부로 반출할 위험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개발 과정 중 나오는 폐기물도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 폐기물의 무게, 발생일 등을 기록해 보관해야 하고 폐기물을 보관하는 창고도 지문을 스캔해야만 드나들 수 있었다. 폐기시에는 특구 안전점검위원회 위원이 보는 앞에서 소각하고 있다.

최정두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헴프천연물 연구센터장이 헴프산업 합법화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헴프산업 불확실성이 두렵다


노 대표와 안 박사 모두 헴프 실증사업의 지속성이 불확실한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실증사업 연장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11월 특구의 실증사업 기간은 종료할 수밖에 없어서다. 실증사업이 종료되면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특구에 들어온 업체들도 사업 지속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었다.

안 박사는 CBD 수출길도 막혀있다고 토로했다. 국내서 CBD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산과 사용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안 박사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미국 대마 전문기업 KRTL홀딩그룹과 MOU를 체결하며 CBD 수출 판로를 확보해 뒀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와 CBD 수출을 놓고 논의 중인데 규제가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구의 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의 최정두 헴프천연물 연구센터장은 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 최 센터장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속담을 인용해 헴프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센터장은 "현재 안동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에는 국내 특구 중 가장 많은 업체인 34곳이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며 "참여 의향을 내비친 기업만 총 78곳에 이르렀을 정도다"고 강조했다. 헴프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헴프 사용이 합법화된다면 보다 많은 기업이 참여할 공산이 큰 셈이다.

최 센터장은 "오는 11월 중소기벤처기업부의 최종 승인을 통해 기업 3곳이 추가로 들어올 예정인데 사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한 탓에 많은 기업들이 헴프산업 진입을 주저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각에서 헴프산업을 합법화한다면 대마의 마약 사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데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CBD 성분을 함유한 고가의 의약품을 국산화하기 위해서는 헴프의 산업적 활용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최 센터장은 "대마의 불법적 사용에 대해서는 처벌을 한층 강화하는 등 단호히 대처하는 동시에 국제적 추세인 헴프산업화 길을 여는 투트랙 전략도 고민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용준 우경정보기술 이사가 헴프 규제자유특구에서 실증 중인 CCTV(폐쇄회로TV)를 활용한 통합관제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안동(경북)=최영찬 기자 0chan1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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