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샀다, 충전하다 날새겠네…전기차 날벼락, 하이브리드 횡재수 [세상만車]
묘수 뒀던 테슬라, 꼼수 승부수
‘대마불사’ HV, 다시 주목받아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두 바둑 용어입니다.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새옹지마와 희노애락이 교차합니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 부르며 경제용어나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바둑 용어는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친환경 자동차시장을 분석할 때도 딱 들어맞습니다. 친환경차 ‘국면전환’을 설명할 때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1973∼1974년 중동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는 정책은 1차 석유파동을, 1978~1980년 이란혁명으로 발생한 석유 생산 대폭 감축은 2차 석유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석유파동으로 기름을 덜 먹는 ‘작은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 만든 자동차 브랜드인 도요타와 혼다가 글로벌 영향력을 키울 호재였습니다.
도요타와 혼다는 연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가성비(가격대비성능) 높은 차량으로 미국과 유럽을 공략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도요타는 내친김에 ‘탈석유’를 승부수로 결정했습니다. 기존 내연기관만으로는 연료 절감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죠.
다만 석유파동이 끝난 뒤 다시 원기 회복한 내연기관 차량과 배터리 한계 때문에 20년간 바둑판 한 구석에서 잊힌 포석으로 존재했습니다.
내연기관의 주도 속에서 한 수 한 수 빈 공간에 돌을 놓던 HV는 환경오염 문제가 다시 글로벌 자동차시장 화두로 대두된 20년 뒤 호기를 맞이했습니다.
도요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석들을 활용했습니다. HV 콘셉트카가 첫선을 보였던 그 자리에 HV 양산차를 등장시켰습니다. ‘HV 원조’ 도요타 프리우스입니다.
세단 형태인 1세대 프리우스는 동급 세단보다 비싼 가격에 처음에는 판매가 부진했습니다. 첫해 판매대수는 318대에 불과했죠. 일본에서만 판매된 것도 한계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점차 판매대수가 늘어났습니다. 2000년에는 누적 판매대수 5만대를 돌파했습니다. 2003년 단종될 때까지 총 12만대가 판매됐죠.
2003년 등장한 2세대 프리우스는 HV 가치를 높여준 모델입니다. 일본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 북미·유럽 시장에도 진출했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차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환경주의자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해리슨 포드, 카메론 디아즈, 줄리아 로버츠, 브래드 피트 등 헐리웃 톱스타들이 고급차가 아닌 프리우스를 잇따라 샀죠.
헐리웃이 자리잡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로 선정되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2006년에는 누적판매대수 50만대, 2008년엔 100만대를 각각 돌파했죠.
2010년대 중반 힘 좋고 깨끗한 ‘클린 디젤차’가 HV를 잠시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친환경차 주도권을 빨리 잡고 싶은 마음에 ‘무리수’를 둔데다 배출가스 조작이라는 ‘꼼수’까지 들켰습니다. 디젤 게이트는 내연기관차에는 ‘악수’가 됐습니다.
위기를 넘긴 것은 물론 ‘불계승’ 기회까지 잡은 HV는 ‘미생’을 넘어 ‘완생’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대마불사’. 자신감이 넘친 HV는 전기차(EV)가 포석을 둘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EV는 사실 HV가 먼저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술을 발전시키고 시장을 키웠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죠.
‘HV 제왕’ 도요타는 EV가 언젠가는 친환경차 대세가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EV가 대세가 되기 위해서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리잡은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데 적어도 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여겼습니다.
20년 동안은 HV가 내연기관 차량에서 EV로 ‘서서히’ 전환되는 과정에서 다리 역할을 하면서 수익성 좋은 차로 존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EV로 친환경차 관심이 높아지면 오히려 HV 판매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EV는 ‘위수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행거리와 충전시스템 부족으로 관심 외 대상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습니다.
서서히 다가오던 EV 시대를 급속도로 앞당겼습니다. 테슬라 투자 열풍을 일으켰고 덩달아 ‘테슬람’(테슬라+이슬람)이라는 충성파까지 만들었습니다.
돌풍을 넘어 태풍으로 위력을 키운 모델3에 자극받아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볼보, 포르쉐,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폴스타, 폭스바겐, MINI 등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서둘러 진출했습니다.
이제는 EV의 꽃놀이패가 시작됐습니다. 반대로 HV는 한물 간 친환경차로 전락했죠.
빨리 먹으면 체합니다. HV와의 ‘수 싸움’에서 예상보다 급하게 앞당겨진 EV 시대는 충전 시스템 부족, 화재 발생, 전기료 인상 등 암초를 만났습니다.
충전 인프라스트럭처를 판매대수에 맞게 갖추고 배터리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수순’을 거치지 않으면서 부작용이 속출했습니다. “전기차 충전하려다 살인나겠다”는 비명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EV에 좀 더 가까운 HV인 플로그인 하이브리드(PHEV)도 가세하면서 생존 기간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더 나아가 충전·안전 기술이 발전되기까지 다시 ‘대세 친환경차’ 역할도 맡게 됐습니다. 판매대수도 증가추세입니다.
글로벌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HV 시장규모는 지난해보다 19.2% 성장한 2718억달러(360조원)로 예상됩니다.
연평균 7.3% 성장해 오는 2030년에는 4439억1000만달러(약 588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HV는 15만1108대 판매됐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42.9% 판매가 늘었습니다.
EV는 전년동기보다 13.7% 늘어난 7만8466대 팔렸죠. 하이브리드카가 전기차보다 두배 가까이 많이 팔리고 판매증가세도 더 높았습니다.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는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14.3%와 63.8% 각각 늘었습니다. 올들어 하이브리드카의 증가세가 가팔라졌습니다.
현대차 그랜저, 기아 쏘렌토, 렉서스 ES 등이 하이브리드 인기를 주도했습니다.
EV 대세가 타격을 받자 연거푸 가격인상으로 수익성을 챙겼던 머스크는 ‘가격인하’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전기차를 새로 사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묘수’로 환영받을 일입니다. 반대로 기존에 “지금 사는 게 가장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계속 가격이 오르면서 비싼 값에 산 구매자들에게는 ‘꼼수’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신차 가격인하는 중고차 가치하락으로 이어집니다. 비싼 값에 구입했던 소비자는 두 번 피해를 보는 ‘호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완생처럼 여겨지는 HV도, 완생을 향해 질주하던 EV도 여전히 거듭 발전해야 하는 미생입니다.
무엇보다 EV는 충전·안전·비용 측면에서 산적한 일들이 아직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쉽살재빙’이라는 말이 요즘 유행한다고 합니다. 노래 ‘사계’와 ‘비행기’로 유명했던 그룹 거북이의 노래 ‘빙고’에서 나온 후렴구를 줄인 말입니다. “쉽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라는 뜻이죠.
차도 쉽게 뚝딱뚝딱 만들면 “그러다 재미없을 줄 알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 생명을 지키는 안전에는 쉬운 길이 없습니다.
100년 넘게 자동차시장을 주도해 완생처럼 여겨졌던 내연기관차도 안전 분야에서는 미생입니다.
요즘 EV를 보면 안전보다는 더 스마트하고 더 폼나게 만드는 데 더 공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처럼 말이죠.
가격 경쟁력을 높여 더 많이 판매하려고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하는 ‘꼼수’를 쓰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생깁니다.
차는 사람 생명을 지켜주기도 위협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과 달리 혁신보다는 안전이 우선입니다.
갈 길이 좀 늘어난 게 어찌 보면 다행입니다. ‘복기’하면서 HV도 EV도 다음 대국에서는 더 나은 ‘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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