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비밀’로 광명·시흥 땅 투기한 전 LH 직원 [민경진의 판례 읽기]

2023. 9. 1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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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내용 듣고 지인들과 25억원에 개발 예정지 부동산 매입
징역 2년 확정

[법알못 판례 읽기]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공개 개발 정보를 이용해 지인들과 부동산 투기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 직원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피고인들이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개발 정보를 이용해 총 25억원을 들여 사들인 토지의 시가는 개발 계획이 발표된 이후 약 5배 급등했다. 그런데도 1심 법원은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미공개 개발 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취득했다는 행위에 대한 검찰의 위법성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공소장을 다시 쓴 끝에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최종 유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1심 “공소 사실, 유죄 입증하기에 부족”

대법원 1부는 2023년 9월 5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LH 전 직원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A 씨의 지인 법무사 B 씨와 매제 C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6월,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도 그대로 유지했다. 이들이 개발 정보를 이용해 취득한 땅도 모두 몰수됐다.

A 씨는 2017년 1월부터 LH 광명·시흥 사업본부 단지사업 1부에 근무하며 특별관리지역 내 취락정비사업 및 연계 개발 후보지 발굴·선정 등의 업무를 맡았다. 그는 같은 해 2월 LH 본사에서 열린 ‘광명·시흥 해제지역의 계획적 관리를 위한 TF 킥오프 회의’에 직접 참석해 기존 사업 방식과 달리 LH가 직접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취락정비사업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A 씨는 LH 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관리하고 있던 특별관리지역 내 취락정비사업 우선 추진 후보지 구역 위치 정보를 활용해 인근에 있는 임야·농지·맹지 등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부동산을 사들여 시세 차익을 내거나 토지 보상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이어 B·C 씨에게 해당 미공개 정보를 전달해 부동산을 공동 매수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2017년 3월~2018년 12월 경기 광명 노온사동 일대 부동산 1만7000㎡를 25억원에 매입했다. 부동산을 취득한 명의는 B·C 씨와 가족·지인 명의를 사용했다. 이후 광명·시흥 일대는 2021년 2월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로 지정됐다. A 씨 등이 매입한 토지는 2022년 4월 기준 시가가 100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A 씨 등 피고들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A 씨가 2017년 2월 LH 본사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 ‘LH가 직접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취락 정비사업을 진행한다’는 내부 정보를 취득했다는 점을 근거로 기소했는데 1심 재판부는 해당 정보를 취득한 사실만으로는 유죄를 증명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은 검사 측 항소로 2심으로 이어졌다.
 

 검찰, 2심에서 ‘예비적 공소 사실’ 추가

검찰은 2심에서 ‘예비적 공소 사실’을 추가한 공소장을 다시 제출했다. 1심의 공소장이 ‘취락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사정을 A 씨가 알게 됐다’고 기재한 데 그치지 않고 ‘취락정비구역뿐만 아니라 (일부) 유보지를 포함한 특별관리지역 전체에 대한 통합 개발이 추진될 것이라는 사정을 알게 됐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또 1심 공소장에서 ‘특별관리지역 내 취락정비사업 우선 추진 후보지 구역 위치 정보를 활용했다’는 내용 대신 ‘취락정비구역뿐만 아니라 (일부) 유보지를 포함한 특별관리지역 전체에 대한 통합 개발 추진 계획을 활용해 특별관리지역에 있는 개발 가능지’ 정보를 활용했다고 기재했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예비적 공소 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고 A 씨 등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가 늦어도 킥오프 회의 무렵에 이 사건 예비적 정보를 알게 됐다고 봤다. 해당 예비적 정보는 미리 알려지면 지가 상승을 유발해 사업 계획의 실행을 어렵게 하는 등 LH 측에서 ‘업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할 당시 A 씨가 담당한 업무, 부동산 취득 명의자와의 관계, 각 부동산의 위치, 매입 자금의 출처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들은 A 씨가 킥오프 회의 무렵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피고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예비적 공소 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 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부패방지권익위법에서의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의 이용’, ‘재물 취득’과의 인과 관계, 공소 사실의 특정, 증명 책임, 명확성의 원칙, 몰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제2 LH 사태’ 막자…이해충돌방지법 8년 만에 통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21년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이 수도권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 일대에 100억원대의 토지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매입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이후 수사 기관의 조사 결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들의 투기 행위가 여러 건 드러나면서 해당 사건은 이른바 ‘LH 사태’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LH 직원들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플랫폼에 ‘LH 직원들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나’라는 글을 올리는 등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여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LH 전·현직 직원 등의 투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후 약 1년 만인 2022년 3월 발표된 수사 결과에 따르면 합수본이 LH 사태와 관련해 수사한 부동산 투기 사범은 총 6081명으로, 이 중 4251명은 검찰에 송치됐고 64명은 구속됐다.

검찰로 넘어간 피의자 중 정치인과 공직자는 327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LH 사태에 직접 연관된 전·현직 LH 임직원은 총 98명이 수사를 받아 61명이 송치됐다. 이 중 10명이 구속됐다.

LH 직원의 첫 유죄 선고는 LH 전북본부에서 나왔다. 2021년 10월 18일 전주지법 형사 제4단독은 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LH 전북본부 직원 D 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LH 전북본부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D 씨는 전북 완주 삼봉 공공주택지구 조성 사업 관련 지구변경계획안을 수립하면서 2015년 3월 인근 토지 1332㎡(400평)를 지인 2명과 함께 부인 명의로 매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계획은 2015년 10월에 공개됐지만 A 씨가 토지를 매입한 시점은 그로부터 약 7개월 전인 2015년 3월이었다. 재판부는 D 씨가 LH 담당 직원만 접근할 수 있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취득했다고 봤다.

또 제삼자 명의로 토지를 매입한 점을 근거로 D 씨가 해당 행위의 위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도 이 같은 판결이 정당하다고 보고 실형을 확정했다.

LH 사태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도 속속 진행됐다. LH 사태 직후인 2021년 5월 제정돼 이듬해 5월부터 시행된 이해충돌방지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이 충돌할 때 사적 이익 추구를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2013년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일부로 국회에 제출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8년간 표류했다. 그러다가 LH 사태를 계기로 재조명받고 법제화됐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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