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에 다시 복잡해진 전기요금 셈법… “물가냐, 정상화냐”
이달 말 ‘4분기 전기 요금’ 결정에 촉각
방문규 새 수장 체제 첫 전기요금 결정
전기료 따라 갈릴 ‘연말 물가’ 우선하나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한국전력공사의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달 말 4분기의 전기요금을 결정해야 하는 정부는 난감해졌다. 4분기 전기요금이 연말까지 정부가 생각하는 물가 경로가 맞는지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서다.
정부 입장에선 선뜻 ‘인상’을 내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전의 불어나는 부채 상황을 고려하면, 비싼 값에 사와 싸게 파는 역마진 상태를 한시라도 빨리 막기 위해 전기료를 인상하는 게 시급하다. 한전의 부채가 더 늘어나는 것은 곤란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새 산업통상자원부 수장 체제의 에너지당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1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최근 배럴당 90달러선을 돌파했다. 국내로 들여오는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지난 6일(현지 시각) 배럴당 90.58달러까지 올라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3월 70달러선까지 내려오며 진정되는 듯했던 국제유가는 7월 80달러를 넘기더니 어느새 100달러까지 넘보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결정이 속속 이어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 “역마진 구조 회귀?” 더욱 커지는 전기료 인상 압박
국제유가의 가파른 오름세는 한전 실적에 분명한 악재다. 통상 유가 흐름은 6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전력 도매 가격에 반영된다. 최근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 급등세는 내년도 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전의 재무 부담을 키우는 일이기에 당장 전기요금 인상의 압력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게다가 지난 5·6월 겨우 해소한 듯했던 한전의 역마진 구조는 이미 다시 복구될 위기다. 단순히 한전의 월별 전력 판매단가와 구입단가만을 놓고 살펴보면, 2021년 10월 이후 단 한 차례(2022년 6월)를 제외하고 매달 역마진 형태(구입단가가 판매단가보다 더 비쌈)였다.
그러다 지난 5월 전력 판매단가가 킬로와트시(㎾h)당 138.83원, 구입단가가 132.43원을 기록해 간신히 6.4원 마진이 남는 형태로 돌아섰고, 6월에도 각각 160.98원, 129.83원을 기록해 31.15원 마진을 남겼다. 당시 국제유가가 누그러진 가운데, 지난해부터 올해 2분기까지 전기요금도 꾸준히 인상해온 덕이다.
7월 한전의 판매·구입단가 기록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역마진 우려를 높이는 신호가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집계하는 ‘평균 정산단가’(한전이 전력거래소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도매시장 가격)가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는 지난 5월 ㎾h당 118원까지 떨어졌는데, 6월과 7월엔 각각 126원, 145.6원까지 올랐다. 한편 판매 가격을 좌우할 전기요금은 3분기(7~9월) 동결된 바 있다.
한전 관계자는 “구입 단가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 가격이나 원·달러 환율이 올라서 다시 역마진으로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 “물가 우선하면 인상 못해”… 새 수장에 쏠린 우려 시선
이제 이달 말 결정될 4분기 전기요금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오는 13일 마무리된 후 대통령의 임명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지면, 이번 전기요금 결정은 산업부 수장으로서의 그의 첫 정책 결정이 될 전망이다.
방 후보자는 지난달 24일 전기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필요한 부분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전의 추가 쇄신책을 추진하겠다”고 대답하며 전기료 인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일각에선 방 후보자가 기재부 출신 관료의 시각으로 전기요금 문제에 접근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물가 문제를 고려하면 그가 요금 인상론에 적극적으로 힘을 싣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제유가 흐름과 전기요금 인상은 연말 소비자물가 진정세를 좌우할 주요 재료로 꼽히고 있다.
박창현 한국은행 조사국 물가고용부 물가동향팀장은 지난 5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 관련 설명에서 “지난해 10월 전기·도시가스요금이 인상됐는데 올해 추가 인상이 없다면 기저효과로 작용하면서 물가를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4분기 중에는 소비자물가가 3%대 내외에서 등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무적 관점에서도 전기료 인상 카드는 제시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생에 민감한 에너지 가격을 올리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전기 사용량이 역대 여름 최고 수준을 기록한 탓에 벌써 8월 ‘냉방비 폭탄’을 걱정하는 여론도 감지된다.
지난달 전력거래소에서 이뤄진 전기 거래량은 약 5만1000기가와트시(GWh)로 잠정 집계됐다. 누진제를 적용하는 전기요금 부과 방식에 따라, 가정과 소상공인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이 전반적으로 불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 “부채 누증, 한전채도 한계… 한시라도 빨리 올려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요금을 올려야 할 명분이 곳곳에 산적한 상황이다.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한전의 총부채는 201조3500억원을 기록했다. 첫 200조원 돌파다. 올 상반기 일평균 이자액은 74억5000만원으로 뛰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면서 운전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한전채 발행량도 한계에 다다랐다. 지난 7일까지 발행된 한전채는 79조7000억원 규모로 발행 한도액(104조6000억원)의 80%에 육박한다.
부채가 누증되고 한전채 발행 한도가 줄어들 것이 뻔한 앞으로는 더욱 문제다. 한전채는 직전 해 실적을 기준으로 자본금·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만 발행할 수 있다. 시장에선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이 7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발행 한도는 대폭 쪼그라들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창의융합대학 학장)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47조원에 이르는 한전 누적 적자 규모는 더욱 커지며 여기에 붙는 이자도 너무 많아진다. 지금 누적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놔야 한다”며 “또 전통적으로 4분기엔 북반구 난방이 시작되면서 유가가 뛰는데, 이렇게 되면 한전의 전력 구입비 지출은 더 크게 늘어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1월 한전채 발행 한도가 (올해 실적에 따라) 크게 줄면, 한전은 더 이상 채권도 발행하지 못하는 비상 상황이 된다”며 “지금 요금이 어느 정도 조정이 돼야 한전이 적자를 더 늘리지 않고 그나마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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