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PADO]

윤경희 문학평론가 2023. 9.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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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PADO는 국제정세 뿐만 아니라 해외 문학 소개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현대 영미시, 에세이에 이어 해외 주요 작가 인터뷰의 소개를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는 윤경희 문학평론가·번역가의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인터뷰 번역·소개입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2017년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의 가즈오 이시구로. /사진제공=Frankie Fouganthin (CC BY-SA 4.0)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한 일본계 영국 소설가이다. 대학 시절에 문학, 철학,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1982년 첫 소설 『창백한 언덕 위의 풍경』을 출간했다. 2023년 현재까지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 『클라라와 태양』 등 장편 여덟 권과 단편집 한 권을 출간했고, 201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 외에 가사와 시나리오를 쓰면서 타 장르 예술가들과 협업하기를 즐긴다.

아래 인터뷰는 2005년 여섯 번째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출간한 지 2년 후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대화의 기록이다. 인터뷰에서 이시구로는 소설 창작에 있어서 시점, 목소리, 시대와 장소 같은 형식적 요소들에 관한 주관을 밝히며, 또한 국가와 공동체가 역사를 인식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작가가 갖추어야 할 책임 의식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낭독회와 인터뷰 같은 창작 외 활동에서 느끼는 감정, 노래 작사와 영화 시나리오 쓰기 같은 다른 예술 장르에 참여할 때의 즐거움과 유익함에 대해서도 소탈하게 풀어놓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이르는 글쓰기, 말할 것이 없는 순간에 이르는 말하기, 종국에는 그것을 말하는 대화의 기록이다.


션 매슈스: 최근 몇 년 동안 동시대 작가들의 경험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는, "작가 행사"와 "작가 인터뷰"의 폭발적 증가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새로운 "작가 숭배" 유형의 대두라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이처럼 낭독회, 대화, 이력 관리가 맞물리는 회로에 점점 더 편입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셨을 텐데요. 『남아 있는 나날』의 출간 시기를 전후하여 세계 전역에서 엄청난 횟수의 공개 행사를 치르셨지요. 피로하고 심지어 트라우마가 생겼다고도 하셨고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의 주인공 역시 여러모로 여행하는 예술가의 악몽에 옥죄어 있는데요. 작가로서 겪는 이런 삶의 양상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 행사는 "낭독회"라 불리지만 점점 더 전혀 낭독회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낭독회에 처음 나갔을 무렵, 사람들이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저 자기 작품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르자 토론과 질의응답 세션도 바라게 되었어요. 작가 행사는 독자적인 예술 형식으로 변모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책은 완전히 제쳐놓는 지점까지 이르고 있지요. 작가 행사에 참여하기만 해도 실제로 문학계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집니다. 책과 전혀 조우하지 않고도, 어떤 노고를 들이지 않고도, 작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어요. 물론 과장이긴 합니다만, 그 때문에 심란합니다. 이런 현상에는 건전한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작가들이 과도하게 내향적인 상태에 빠져 지내는 것을 막음으로써,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실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점을 상기시키지요. 그렇더라도 더 문제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책을 판촉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외국 독자들에 다소간 지나치게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이틀을 보낸 적이 있는데요, 제 작품에 나오는 특정한 문화적 참조점들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았지요. 그러다 보니, 이제 서재에서 글을 쓰는데, 머릿속에서 특정 노르웨이인에게 말을 걸 때가 종종 생기더라고요. 노르웨이인들에게는 이 책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할 거라고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노르웨이어로 번역하면 문화적 참조점의 상당수가 살아남지 않는 상황에서요. 그래서, 노르웨이인들을 응대하며 꼬박 이틀을 보낸 결과, 서재의 고독으로 돌아오자 이제 그들은 제 어깨 너머로 내려다봅니다. 세계화가 작가에게 와닿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일본 독자들에게도 설명하고, 미국 중서부의 농부들에게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 정체성의 모든 감각을 상실하게 되어요. 자기 언어와의 접촉도 실제로 상실할 것입니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지요. 독자들 중 어떤 분들은 제 개인사에 의거해서 제가 쓴 것의 의미를 추측하시는데요, 특히 저와 일본의 관계 및 아웃사이더 같은 인물의 수적 우세를 주제로요. 거기에 깊은 연관이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말만큼 제 인물들이 정말 아웃사이더인지도 확실하지 않고요. 두 번째 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주인공 같은 자는 자기 사회와 세대의 본질적 구성원이고, 어느 정도는 그것이 바로 그의 비극이고, 전쟁기에 그 세대와 시기의 바깥에 나와 설 만큼 탁월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수에 따라 휩쓸릴 뿐이지요. 『나를 보내지 마』에도 어느 정도 유사한 상황이 있습니다. 인물들은 다소 기이한 공동체에 소속되었는데, 어찌 되었든 그 공동체에 통합되어 있고, 그 바깥에서는 견뎌낼 수 없어요. 하라고 하는 것에 그들이 그토록 수동적으로 따르는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 바깥에 개별자로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제 인물 상당수는 흘러가는 대로 가는 경향이 있고, 『남아 있는 나날』의 스티븐스 같은 아웃사이더 역시 어느 정도는 아웃사이더가 아닙니다. 그는 본원적으로 자기 계급의 일원처럼 생각하는 자이고 거기서 탈피하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 어떤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집사라는 의구심 때문에 『남아 있는 나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층위에서 우리 대부분은 집사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 환경의 바깥에 나와 서서 그것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멈춰 봐, 대신 이렇게 할 거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직무를 이행하고, 위계에서 우리의 위치에 수긍하고, 우리의 충직성에 효용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마치 그 집사처럼요. 그러므로 제 인물들이 개인적으로 외로운 자일 수는 있겠지만, 제가 창조하려는 것은 장삼이사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개인적으로 저는 저 역시 아웃사이더 부류라 여기지 않아요.

그러한 추측에 근거한 전기비평적인 독법에 학자, 문학평론가, 교사들은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겠어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상상 세계를 탐구하는 법 이야기를 하면서 급료를 받는 분들이요. 이처럼 "전문적인" 독자들 역시, 선생님의 표현대로, 선생님이 글을 쓰시는 동안 어깨에서 서성이나요?

많은 작가들처럼 저도 도서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꽤 신경을 씁니다. 책을 출간하고 어디선가 서평이 나오면, 득달같이 읽고 평에 따라 침을 뱉기도 해요. 대학에서 저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에는 그런 식으로 신경쓰지 않아요. 때때로 그런 게 눈과 귀에 들어오는데, 보통은 그 모든 사람들이 제 작품을 이렇게나 진지하게 여긴다는 데 그저 마음속 깊이 우쭐해지지요.

(계속)

PADO 웹사이트(https://www.pado.kr)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윤경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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