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이 문제”…‘잘 참는 교사’가 ‘성난 사람’ 됐다
“저희는 그저 잘 참는 사람들로 정평이 나 있었을 뿐입니다!”
2023년 9월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무대에 오른 한 교사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국회 앞 대로를 메운 교사들이 우렁찬 동조의 박수를 보냈다. 검은 티를 입고 무표정하게, 혹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무대를 주시하던 교사들은 지나칠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다. 인도 곳곳에는 팻말을 들고 통행로가 엉키지 않게 방향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있었고, 국회 앞부터 여의도공원까지 교사 5만여 명은 바둑알처럼 열을 맞췄다. 서이초 교사의 사십구재를 추모하는 ‘공교육 멈춤(정상화)의 날’조차 각 잡힌 모습은, 그 자체로 이들이 얼마나 ‘잘 참는 사람들’인지 보여줬다. ‘잘 참는 사람들’은 이날 그들이 참아왔던 내용이 무엇인지,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를 떨며 말하기 시작했다.
질서정연한 분노, 조용한 울분
“저는 유아교육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교사는 유치원의 부속품이었다. 아이가 바깥놀이 싫어하니 바깥놀이 하지 말라는 양육자! 아이가 결석한 날에 왜 요리활동 했냐는 양육자! 스트레스받으니 끝말잇기놀이 하지 말라는 양육자! 시간에 맞춰 약도 아닌 유산균을 먹여달라는 양육자! 우리 아이는 <캐치! 티니핑>(애니메이션) 본 적 없는데 왜 알고 있냐며 관리 제대로 하라는 양육자!”(공립유치원 교사)
“6년 전 운동장 수업 중 학부모가 난입해 아이들을 혼내고 ‘미친×이 담임이다’라며 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사과 없이 계속해서 민원을 넣어 결국 학교에 교권보호회를 열어달라 요청했다. 도교육청은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수반돼도 곧바로 교권침해로 볼 수 없다며 위원회를 열지도 않은 채 각하처분 공문을 내렸다. 서이초 소식을 듣던 날 6년 전이 떠올라 많이 아팠다. 체육관을 지나며 ‘어디서 죽어야 이 억울함을 알아줄까’ 생각했다.”(20년차 초등학교 교사)
“(생활기록부를) 이렇게 써달라, 저렇게 써달라. 왜 이렇게 썼냐 책임져라. 저는 작년 총 아홉 반을 가르쳤다. 270명의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을 한 학생당 500자씩 써야 했다. 여기에 담임 학급 학생, 동아리 학생들 것까지 합치면 약 15만 자에 달하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야 한다. ‘내가 영문과 교수인데’라며 복수정답이 인정될 때까지 민원 넣는 학부모, 성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도 ‘왜 우리 애를 성범죄자 취급하냐. 선생님이 애 인생 책임질 거냐’ 고성 지르는 학부모….”(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냐, 초등학교 교사냐, 중·고등학교 교사냐에 따라 참아온 내용은 달랐지만 한 가지는 공통적이었다. 사례 속 학부모들은 더는 교사를 자녀를 교육할 ‘선생님’으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부모의 태도는 ‘세금 냈으니 정당한 교육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소비자의 태도에 가까웠다. 학교는 이제 ‘교육’의 장이 아니다. 어린이가 정서적 안정감 속에서 사회성을 배워나가는 출발점이 돼야 할 유치원·초등학교는 ‘보육 서비스의 장’으로,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의 토론·탐구의 장이 돼야 할 중·고등학교는 ‘대입 준비 서비스의 장’으로 전락했다.
‘교육 서비스 소비자’ 같은 학부모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에 이어 서울 양천구, 전북 군산, 경기 용인에서 교사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모두 ‘학부모 민원’ 등 학교 내 문제로 단정할 순 없지만 지난 6년 동안(2018년∼2023년 6월 말) 초·중·고 교사 100여 명이 목숨을 끊었다는 통계는 서이초 교사의 비극이 예외적 사례가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녹색병원과 함께 실시한 ‘2023 교사 직무 관련 마음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울 증상을 보이는 교사는 응답자(유·초·중·고교 및 특수교사 등 3505명 답변 분석)의 63.2%였고, 특히 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38.3%에 이르렀다.
악성 민원에 분노한 교사들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교사들을 또 한번 좌절하게 했다. ‘불법집회’ ‘징계’ ‘엄정대응’ 등 엄포를 놓던 교육부는 국민 여론이 악화하자 교사들의 단체행동을 징계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 가운데 나온 발언은 정부의 교사에 대한 생각을 짐작게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9월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에 참여하신 교사분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정부에 관용적 입장을 취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여한 한 교사는 인터뷰 중 이렇게 비꼬았다. “높은 분들 하시는데 저 같은 말단 공무원이 뭘 알겠어요.”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진보 정치’ 탓으로 돌리며 학생인권조례 재검토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 교사들의 진심이 담긴 성토를 보면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한 탓에 학교가 망가졌다’는 주장이 현실과 어떻게 어긋났는지 알 수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집회에 참석하러 온 25년 경력의 ㄱ교사는 “10년 전쯤부터는 상황이 점점 더 악화했다. 학생 인권은 보장해야 한다. 체벌 금지도 해야 한다. 그런데 체벌을 금지하면서 대신하는 제도를 도입했더니 학부모들이 ‘하지 마라, 학대다’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체벌 대신 상벌점 제도로 유도했더니 ‘학대다’ 해서 벌점을 빼고 상점 제도만 했다. 그랬더니 ‘못 받은 애한테 학대했다. 하지 마라’ 했다. 그 가운데 학교가 대안을 찾지 못하니 이 지경이 된 거”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온 저연차 교사도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사실 95%의 학생과 학부모는 정말 교사를 존중해준다. 소수 5%의 악성 민원이 문제인데, 지금 여기서 선생님을 막아줄 방어막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무대에 선 어느 교사가 “저는 감히 교육자의 양심으로 학생 인권은 더 신장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활기록부 기재를 빌미로 권력자라도 된 양 학생들의 영혼 없는 복종을 받겠다고 했나요?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즐겁고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원합니다”라고 외치자 수많은 교사 사이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악성 민원 소수여도 ‘방어막’ 없으니
실제로 2010년 도입된 학생인권조례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6곳이 시행 중이며, 그나마도 학교 내에서 학칙이 우선되기 때문에 엄격하게 실현된 적도 없다. 정치권의 주장이 맞으려면, 전국 시도교육청 중 6곳에서만 교사들의 불만이 나왔어야 한다. 또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해 만들어진 학생인권조례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조례가 아니다. 교사가 학생을 감정적으로 체벌하고 대입을 준비하는 교사들이 촌지를 받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면서 만들어진 인권조례로, 선진국이라면 어느 나라든 학생 인권의 중요성과 교육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사태의 본질은 아이의 인권 핑계를 대며 ‘아동학대·소송’ 같은 단어로 교사를 겁박하는 학부모, 가정에서 학부모로부터 이런 태도를 교육받는 학생의 문제에 가깝다.
교육부는 서이초 사건 이후 현장 간담회,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책도 발표했다. 8월23일 발표한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보면, 앞으로는 학부모가 교원 개인의 휴대전화로 민원을 제기할 수 없고, 단순 민원은 인공지능(AI) 챗봇으로 처리하게 한다. 학교장 책임 아래 민원대응팀도 구성한다. 또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면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휴대전화도 압수할 수 있다. 특히 중대한 교권 침해 사항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다. 교육부가 이런 교권 회복 방안을 내놓았는데 교사들은 왜 9월4일 8번째 집회를 진행했을까?
“현장을 모르니까 이렇게 답답한 거예요. (교육부에서) 뭘 해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나왔어요. 그렇게 하면 그다음에 파생되는 일이 있을 거잖아요? 예상되는 그다음 상황에 대한 대책이 없잖아요. 예를 들면 (교권 침해 학생을) 즉시 분리해라. 근데 분리한 다음엔 어떻게 할 건데요? 분리한 아이는 어떻게 교육할 건데요? (그 아이는 교육을 못 받게 되는 건데) 그럼 또 부모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부모님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않아요. 아이는 6시간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에 속상했던 일을 한두 줄 말하는 거예요. 적어도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화를 내도 내고 신고를 해도 해야죠.”(전남 광양에서 집회에 참석하러 온 ㅅ교사)
‘탁상행정’ 정부 대책 허술해
교사들은 분리된 학생의 학습권 또한 보장될 수 있길 바랐다. 분리 장소, 지도 방법, (분쟁 발생시) 책임 소재 등이 포함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한다. 또 학부모로부터 당한 모욕을 ‘민원대응업무 담당자’란 이름의 교육공무직이 대신 당하는 상황에도 우려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내쫓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가르치고’ 싶어 한다. 정부가 교육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고, 억울한 아동학대 낙인과 악성 민원으로부터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내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방침으로 끝나는 식의 대책은 교육적으로도, 학부모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교사들에겐 ‘엄벌’이 아니라 학부모·학생·교사 모두가 행복할 ‘교육 대안’이 필요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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