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효과는 미지수인데…늘어나는 흉악범죄 대처 '어쩌나'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안녕하십니까. 이광빈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이 풀어갈 이슈,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우리나라에선 사형제는 유지되고 있고, 사형 선고도 이뤄지고 있으나 집행은 유예되고 있습니다. 사형제 존폐와 사형 집행 여부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계속돼 왔는데요. 사형제 폐지 입장은 생명권을 존중해야 하고 범죄 예방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사형제 유지 입장은 잔혹범죄에 대한 응보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형제를 둘러싼 여론은 잔혹 범죄 발생 여부 등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양상인데요. 최근 무차별 흉기 살인과 잔혹한 성범죄까지 강력 범죄들이 잇따르면서 다시 사형제 존폐 및 집행 여부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선 현재 사형제의 합헌을 놓고 세번째 심리가 진행 중인데요.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소재형 기자입니다.
[잇따른 강력범죄…사형제 논란 재점화 / 소재형 기자]
[기자]
지난 1997년, 23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차례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유영철과 강호순 등 흉악 연쇄살인범의 등장에 사형제 존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지만, 헌법재판소는 현재까지 모두 두 차례 사형제가 헌법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우리나라를 실질적인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강력범죄들이 잇따르면서 미뤄뒀던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단, 인명경시 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범죄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엄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지우 / 서울시 관악구> "가벼운 처벌 때문에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는 거 같아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예림 / 서울시 관악구> "사람들이 너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없지 않나 싶어서. 사형제도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지 않을까 해서."
실제 연합뉴스TV와 연합뉴스의 공동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사형 집행 재개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잇따른 강력범죄에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진 겁니다.
하지만, 사형이 복수의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오심이 있을 수 있다며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박유림 / 서울시 관악구>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집행까지 당하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해도 충분히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 아닌가."
실제, 현재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가 사형제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대법원은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논의해야 한다며 사실상 현 단계에서는 반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사형제의 합헌성을 두고 세 번째 판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론이 사형집행 재개 쪽으로 기울고 있는 만큼, 헌재가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판단을 내릴 지 주목됩니다.
연합뉴스TV 소재형입니다.
#사형제 #종신형 #폐지 #논란
[이광빈 기자]
20세기 들어 인권 의식이 강화되면서 많은 국가에서 사형제가 폐지됐는데요.
사형제를 법정 최고형으로 명시하고, 실제로 형을 집행하는 국가들은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데요, 이준삼 기자입니다.
[EU "사형제 절대 거부"…미·일 "흉악범죄 억제"/ 이준삼 기자]
[기자]
뜨거운 '존폐 논란' 속에서도 사형제 폐지 추세는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12곳으로, 10년 만에 14곳이 늘었습니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세 배 가까이로 증가했습니다.
일찌감치 사형제를 폐지한 대표적인 지역은 유럽연합(EU)입니다.
기본권 헌장에 '그 누구도 사형 선고를 받거나 사형이 집행될 수 없다'고 명시했고, 이를 EU 가입 조건으로 못박았습니다.
<슈테펜 세이버트 / 2016년 당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대변인)> "이 문제에서 독일과 EU 회원국들의 입장은 아주 명확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사형을 거부하며, 사형제를 가진 나라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87개 국가가 여전히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형이 수시로 집행돼 '인권탄압국'으로 지탄받는 중국이나 이란, 북한 등의 권위주의 국가들 뿐 아니라,
이웃 나라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도 흉악 범죄 등에 대한 사형제의 예방 효과를 확신하는 국가들로 꼽힙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에도 "흉악한 살인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며 유럽 국가 등의 사형제 폐지 요구를 일축했습니다.
일본은 작년 7월, 2008년 도쿄 도심에서 행인 7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기결수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서, 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 수준인 26개 주에서 사형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2003년 중단됐던 연방정부의 사형집행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20년 7월, 17년 만에 재개됐다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무기한 중단됐습니다.
사형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미국 내에서도 첨예하게 맞서 있습니다.
<개빈 뉴섬 /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2019년 3월 '사형집행 중단' 행정명령)> "진짜 문제는 우리에게 과연 누군가를 죽일 권한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오하고도 실존적인 질문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그런 권한이 없다고 믿습니다."
<론 해링톤 / 미 연쇄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2019년 4월)> "정말 잔인하고 끔찍한 범죄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고인에게) 사형 선고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흉악범죄 예방이냐, 생명권의 존중이냐.
이 오래된 도덕적 딜레마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연합뉴스 이준삼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사형 집행 통계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실시하는 나라 중에서 지난해 가장 많이 집행이 이뤄진 곳은 어디일까요.
국제엠네스티는 중국을 꼽았습니다. 중국의 사형 건수는 국가 기밀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는데, 국제엠네스티는 수천건의 사형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에선 지난달 한국인 마약사범 한명이 사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북한 등 사형 집행 통계가 발표되지 않는 국가를 제외하고, 지난해에만 20개국에서 883건의 사형이 이뤄졌습니다. 전년도 579건에 비해 53%나 늘어났는데요. 지난 5년간 국제엠네스티가 집계한 사형 집행 건수 중 가장 많은 수치이기도 합니다.
사형 집행 건수가 파악된 국가 중에는 이란에서 가장 많은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최소 576건으로 추정됐는데요. 전년에 비해 무려 83%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로 196건입니다. 이어 이집트에서 24건, 미국에서 18건의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미국은 미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형이 집행되는 국가입니다. 대부분 국가가 사형제로부터 자유로워진 유럽에서도 사형이 집행된 국가가 있는데요. 바로 벨라루스입니다.
국제엠네스티는 북한과 베트남에서도 사형이 광범위하게 집행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 베트남의 통계가 정확히 반영되면 전 세계 사형 집행 건수는 크게 늘어나겠죠.
사형 실시가 유보됐다가 재개된 국가들도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쿠웨이트, 미얀마, 팔레스타인, 싱가포르 등 5개국입니다. 애초 사형을 집행해온 보츠와나와 아랍에미리트, 오만은 지난해에는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사형 선고의 경우, 지난해에는 52개국에서 2천16건이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도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파푸아뉴기니, 시에라리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입니다.
최근 잇따른 흉악 범죄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정부여당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인데요. 법원은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논의돼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고, 야당도 부정적 반응입니다. 찬반양론 상황, 신현정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정부, 형법 개정 시사…'가석방 없는 종신형' 대안될까/ 신현정 기자]
[기자]
사형제 부활을 찬성하는 여론이 고개를 들면서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법무부는 최근 사형 집행시설을 점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997년 이후 25년가량 방치됐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동훈 / 법무부 장관(지난달 30일)> "일부 사형 확정자들이 교도관 폭행하는 등 수형 행태가 문란하다는 지적들이 있어왔습니다. 사형을 형벌로 유지하는 이상 법 집행 시설을 적정하게 관리, 유지하는 것은 법무부의 임무…"
사형제가 사실상 이름만 남게 되면서 엄벌주의가 약해졌다는 인식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국민 법 감정이 거세졌다고 하더라도, 사형제를 곧장 부활시키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국회에서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15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9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상임위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여당은 당정협의회를 통해 정부입법을 지지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정점식 / 국민의힘 의원> "이른바 묻지마 흉악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상당합니다. 당 의원들과 법무부 추진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처벌 강화에도 야당과 힘을 합쳐…"
사형과 종신형 간 형량 차이가 사실상 없어진 만큼, 새로운 형벌의 종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박형수 / 국민의힘 의원> "흉악한 범죄인 경우에 사형이 선고돼야 되고 그것보다 덜한 경우에 무기징역이 선고돼야 되지 않습니까? 지금 법원의 행태를 보면 법관의 개인적인 소신에 따라서 그것을 결정하는 경향이…"
야당은 가석방 제도가 도입된 취지를 이유로 들어 신중론을 펼칩니다.
<김영배 /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는 거거든요. 인권 존엄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도…"
<박범계 /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간은 교정하면 교정할 수 있다는 그러한 철학에서 기초하는 거거든요. 자칫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도가 가석방제도 자체의 가치를 폄훼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도 흉악범죄 처벌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 정부가 국민 법 감정과 양형기준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연합뉴스TV 신현정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2010년에 개봉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 입니다. 한 남자가 약혼녀를 살해한 살인자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복수하는 내용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서사구조입니다.
영화 '아저씨'도 마찬가지로, 잔혹한 사적 복수를 가하는 스토리는 대중에게 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악마를 보았다' 결말에서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은 새벽 거리에서 허탈한 울음을 터뜨립니다. 복수에 성공했다고 해서 약혼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이런 방식의 복수가 옳은 것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국민사형투표'가 화제인데요. 드라마에서는 악질범을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가 불법으로 진행됩니다. 찬성 결과가 나오면 사형을 집행하는 정체 미상의 개탈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재판 없이 여론이 원하는 대로 살인이 이뤄지는 셈인데요.
최근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형집행에 대해 찬성 여론이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흉악범죄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잔혹한 범죄자들은 죄의 대가를 엄정하게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고 차분하게 범죄가 발생한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시정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형제 존폐와 집행 재개 여부 문제, 시민들의 생각은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논란과 갈등은 필연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흉악 범죄자가 자라나는 토양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재발을 막기 위한 처벌 등 제도적 장치는 어떤 게 필요한 지. 다함께 숙고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요.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형제도 #사형집행 #흉악범죄
PD 김선호 AD 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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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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