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매직’ 필리핀을 강타하다! 돈치치, 취재하기 정말 어렵네요! [마닐라통신]
[OSEN=마닐라(필리핀), 서정환 기자] ‘루카 매직’이 필리핀을 강타했다.
슬로베니아는 9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에서 개최된 ‘FIBA 농구월드컵 2023 7-8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89-85로 이겼다. 슬로베니아(5승 3패)는 최종 7위로 대회를 마쳤다.
‘NBA 슈퍼스타’ 루카 돈치치(24, 댈러스 매버릭스)의 월드컵 마지막 무대였다. 현지시간 오후 4시 45분에 경기가 시작됐다. 토요일을 맞아 2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이 5층까지 가득찼다. 돈치치는 성적과 상관없이 월드컵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다. 필리핀 팬들은 돈치치가 자유투를 쏠 때 “루카! 아이 러브 유!”를 외쳤다.
한 필리핀 부부는 “루카! 당신을 보고 내 아들 이름을 루카라고 지었어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응원했다. 전광판에 이들이 소개되자 팬들 전체가 열광했다. 농구경기보다는 돈치치가 주인공인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였다.
돈치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비싼 입장권 가격을 충분히 뽑았다. 돈치치 자체가 그냥 NBA였다. 그는 201cm/104kg의 거구지만 날렵한 움직임과 기술로 상대를 제압했다. 스텝백 점프슛과 유로스텝 등 그가 구사하는 고급기술은 현대농구의 교과서였다. 필리핀 팬들은 미국에 가지 않아도 안방에서 NBA 퍼스트팀 가드의 묘기를 볼 수 있으니 엄청난 이득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돈치치가 느끼는 압박감은 대단했다. 매 경기마다 최고의 수비수들이 돈치치에게 이중 삼중으로 달려들었다. 돈치치는 거친 파울로 견제를 당하지만 파울도 많이 불리지 않는다. 리투아니아전에서 돈치치는 요나스 발렌츄나스의 팔꿈치에 코뼈를 얻어맞았다. 에이스의 숙명이다.
상업적인 흥행이 목적인 NBA에서는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있다. 하지만 FIBA에서는 어림없는 소리였다. 돈치치가 아무리 스타라도 일방적인 홈콜은 없었다. 심판이 파울을 불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 돈치치는 결국 캐나다와 8강전에서 폭발했다. 심판에게 트래쉬토크를 하고 퇴장을 당했다.
8강전 퇴장 후 돈치치는 공식기자회견에서 “심판이 파울을 불어주지 않았다.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뛸 때 파울을 불어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며 공개적으로 심판을 저격했다.
이탈리아전도 마찬가지였다. 속공에 나선 돈치치가 블록슛을 맞고 넘어졌다. 돈치치는 단지 미소를 지었을 뿐인데 심판이 테크니컬 파울을 줬다. 심판저격 사건 후 더 단단하게 심판에게 찍힌 돈치치다.
설상가상 슬로베니아 동료들은 돈치치의 기량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 돈치치에게 몰리는 수비를 분산시켜 줄만한 또 다른 스타가 없다. 센터 마이크 토비는 늘 상대센터의 먹이값이다. 발렌츄나스는 그를 상대로 24점, 12리바운드, 2블록슛을 몰아쳤다. 돈치치는 댈러스에서나 국가대표에서나 늘 소년가장이다.
슬로베니아 감독은 “루카는 항상 공을 만지고 상대의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루카가 아주 특별한 것이다. 어떤 리그에서 뛰든 아주 좋은 선수고 막기 힘든 선수 인것”이라고 돈치치를 감쌌다.
돈치치는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능력까지 120%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다. 돈치치는 신기에 가까운 패스로 동료들에게 슛기회를 창출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패스를 보내는 능력은 그야말로 ‘매직’이었다.
이탈리아전에서 돈치치의 패스가 유난히 돋보였다. 평범한 선수들도 돈치치의 패스를 받으니 득점력이 폭발했다. 3쿼터 막판 돈치치의 버저비터 3점슛이 터지면서 슬로베니아는 70-60으로 앞서 승기를 잡았다.
종료 40초를 남기고 돈치치의 패스를 받은 제이콥 세바세크가 86-85로 뒤집는 역전 3점슛을 꽂았다. 마지막 자유투 4구를 모두 넣은 슬로베니아가 결국 승리를 거뒀다. 돈치치는 29점, 10리바운드, 8어시스트, 3스틸의 놀라운 기록으로 대회를 마쳤다. 턴오버가 9개나 나왔지만 승리 앞에 모든 것이 행복했다.
경기 후 돈치치에게 한마디를 듣기 위해 공동취재구역에 수많은 취재진이 진을 치고 기다렸다. 슬로베니아 방송국도 3곳이나 왔다. 국가영웅이나 다름없는 돈치치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돈치치는 대회 내내 한 번도 믹스트존 인터뷰에 임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슬로베니아의 승리로 내심 돈치치가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해주길 기대했지만 돈치치는 동료들이 인터뷰하는 사이로 그대로 지나쳤다. 아쉽지만 돈치치의 소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쉬운대로 동료들에게 돈치치의 영향력을 물었다. 토비는 “월드컵이 끝났으니 이제 밤낮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돈치치는 한 농구선수가 아니라 국가적인 영웅”이라고 설명했다.
베테랑 가드 조란 드라기치 역시 “루카는 우리의 원더보이다. 이렇게 잘하는 선수가 아직 24살이라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내가 24살 때 얼마나 농구를 못했는지 생각하면 더 놀랍다. 하하. 팀의 고참으로서 그에게 지워진 부담을 덜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알렉산데르 세쿨리치 슬로베니아 감독은 “우리는 겨우 인구 200만 명인 나라다. 우리는 루카를 가진 장점을 톡톡히 누렸다. 우리가 바라던대로 토너먼트에서 이겼다. 루카 같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감독인 내게도 축복이다. 7위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루카 같은 선수가 팀에 있다면 더 큰 목표를 잡아야 한다. 월드컵에서 놀라운 팀들을 상대했다. 필리핀 팬들의 성원에도 감사드린다”고 총평했다.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돈치치는 경기당 27점을 쏟아내 득점 전체 1위에 등극했다. 돈치치는 대회에서 총 216점을 올려 '월드컵 한 대회 200점 클럽'에도 가입했다. 돈치치의 216점은 역대 8위의 대기록이다. 그리스 전설 니코 갈리스가 1986년 대회서 337점을 올려 역대 1위다. 한국의 전설적 슈터 신동파는 1970년 세계선수권에서 총 261점을 올려 당당히 역대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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