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쩜오 설움’에도 “난 꺾이지 않아”…결국 전설이 된 이 와인 [전형민의 와인프릭]
샤또 무똥 로칠드의 파란만장한 역사
와인 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5대 샤또(Chateau)가 있습니다. 프랑스어 샤또는 영어로는 성(Castle) 입니다. 봉건제 시대, 봉건 영주들이 자신들의 영지에 쌓았던 성들이 근현대에 이르러 지역을 가르는 기준점이 됐습니다. 성을 가진 소유주가 거대한 포도밭을 소유하고 그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면서, 현재는 포도밭의 소유권을 나누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와인을 잘 모르는 와린이부터 애호가까지 보르도의 5대 샤또 이야기는 단골 주제입니다. 프랑스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자국 와인을 자랑하기 위해 보르도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던 61개의 와인을 1등급부터 5등급까지 구분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이 구분법에 따라 구분한 5곳 샤또의 1등급 와인을 ‘5대 샤또’라고 부릅니다.
당연하게도 5대 샤또는 매우 비쌉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병당 100만원을 호가하죠. 만약 시음 적기에 들어선 올드 빈티지거나 특별히 좋았던 해의 와인이라면 가격은 수백만원까지 치솟기도 합니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죽기 전 5대 샤또를 모두 마셔보는 게 버킷 리스트’라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5대 샤또들의 이름을 하나씩 보다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독 2곳 샤또의 끝단어가 같은데요. 바로 샤또 라피트 로칠드(Ch. Lafite-Rothschild)와 샤또 무똥 로칠드(Ch. Mouton-Rothschild) 입니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두 샤또는 로칠드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입니다. 라피트와 무똥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요?
로칠드 가문이 한창 잘 나가던 1853년, 가문의 일원인 나다니엘 드 로칠드는 파리의 한 은행가로부터 보르도 뽀이약(Pauillac) 마을의 65에이커(26만㎡) 규모 와이너리를 인수합니다. 그리고 브랑 무똥(Brane-Mouton)이라는 기존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무똥 로칠드(Mouton-Rothschild)로 바꿉니다. 이렇게 로칠드 가문의 첫 와이너리가 탄생합니다.
불과 2년 뒤 보르도상공회의소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와인을 출품하기 위해 등급을 매기겠다고 하는데요. 나다니엘은 무똥이 당연히 최고 등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와인에 큰 자부심이 있었고 비록 인수한지는 2년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샤또 무똥 로칠드는 보르도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떼루아(terroir)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똥이 1등급이 아닌 2등급에 배정되면서 그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충격을 받은 나다니엘은 이렇게 외칩니다. “1등급은 되지 못했고, 2등급은 되지 않겠다. 나는 무똥이다.(First I cannot be, second I do not choose to be, Mouton I am.)”라고요. 나다니엘의 국적이 영국이었기 때문에 콧대 높은 프랑스인들이 일부러 1등급을 주지 않았다는 설도 존재합니다.
그 넓은 보르도 지방에 그 많은 와이너리 중 바로 옆을 사들인 것도 모자라 이름도 똑같이 바꾼 것인데, 1등만 기억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2등급인 무똥 로칠드보다 1등급인 라피트 로칠드만 기억에 남겠죠.
사촌보다 13년이나 먼저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공식적인 판정패를 하게 된 나다니엘의 속이 얼마나 쓰렸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지난 겨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떠올려보면, 이들의 경쟁이 단순한 자존심 싸움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무똥은 이후 자신만의 길을 걸어나갑니다. 1855년 나다니엘이 “나는 무똥이다”라고 외친 것처럼 등급제에 연연하기보다,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1등급 샤또들과의 교류마저 줄어들게 되면서 보르도의 고독한 외톨이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수십년이 흘렀고 가문의 주인 역시 할아버지에서 증손자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무똥은 1등급 와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22년 약관(20살)에 불과한 젊은 피 필립 드 로칠드가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무똥에, 아니 보르도 전체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옵니다.
필립이 현대 와인 생산 방식의 큰 틀을 바꾼 것도 있습니다. 바로 병입(甁入)입니다. 와인은 오크통 숙성과 병 숙성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당시에는 양조가 끝난 와인을 통에 담아 중개상에게 판매하고, 중개상이 이를 숙성시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와인 시장이 형성됐는데요.
와인 품질의 완벽성에 공을 들였던 필립은 중개상의 숙성 창고 상황에 따라 같은 와인이더라도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양조와 오크 숙성까지 끝낸 와인을 직접 병입한 후에야 판매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와이너리 입장에서는 비용과 시간이 더 필요하고, 재고가 생겨 원활한 자금 융통이 어려워질 수 있으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방법이죠. 여기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프랑스산 와인의 병이나 코르크에서 볼 수 있는 Mis en boutteilles au Chateau(샤토에서 병입했다)는 문구가 탄생합니다.
특히 1945년은 근 백년래 최고의 빈티지로 불리는데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해이기도 하죠. 이 특별한 와인에 시장은 열광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무똥은 꾸준히 라벨에 당대 최고 예술가의 작품을 담아내면서 예술작품 같은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습니다.
그러나 필립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똥 로칠드는 여전히 1등급에 오르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라피트의 집요한 견제도 한몫을 했습니다. 라피트는 1953년 필립이 만든 5인회에서 무똥을 1등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출시켜 버렸습니다.
두 샤또 간 엉 프리메르(En Primeur·와인 선물 거래)에서의 가격 신경전도 잘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 보르도 최고급 와인들은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거래되는데요. 결과물을 보지도 않고 사고 파는 선매입니다.
포도를 수확 후 짜서 발효시키고 숙성한 다음 병에 담아 소비자에게 판매하기까지 어림잡아 2년 이상 소요되지만, 샤또들은 한창 숙성이 진행 중인 이듬해 봄에 중개상들에게 완성될 와인을 미리 팔아 자금을 융통하는 겁니다. 시장의 신뢰가 확실한 최고급 샤또만 가능한 방법이죠.
이때 가격은 샤또와 중개상들이 의논해 결정하는데, 라피트와 무똥은 상대의 가격을 곁눈질하며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무똥은 2등급이면서도 늘 라피트와 비슷하거나 더 비싸게 출시하려고 애썼고, 라피트는 매년 무똥을 따돌릴 방책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필립은 무똥의 1등급 상향이 결정되곤, 과거 120여년 전 할아버지의 외침을 변형해 “나는 1등급이다. 나는 2등급이었다. 무똥은 변하지 않는다.(Primier Je Suis, Second Je Fus, Mouton ne change.)”라는 승급 소감을 레이블에 남겼습니다. 1등급이 됐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이며, 원래 2등급 품질도 아니었다는 겸손함과 자부심을 겸비한 명언입니다.
여담이지만, 1973년 무똥의 레이블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피카소가 그렸습니다. 그리고 1855년 작성된 보르도 와인의 등급표가 바뀐 것은 현재까지 무똥의 1등급 승급이 유일합니다.
이렇게 라피트와 무똥 간의 등급 경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두 샤또는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산지에 경쟁적으로 진출하는 등 여전히 선의의 경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와인 업계에서 신세계로 분류되는 미국에는 무똥이 먼저, 칠레에는 라피트가 먼저 진출하며 서로 경쟁 중 입니다.
친척 사이인 두 샤또 주인 간의 은근한 신경전도 마찬가지 입니다. 1999년 12월31일 새 천년의 시작을 앞두고 무똥의 주인인 필리핀(필립의 딸)이 라피트의 주인인 에릭을 초대해 1899 빈티지 무똥을 대접하자, 이튿날인 2000년 1월1일에는 에릭이 필리핀을 초대해 1799 빈티지 라피트를 대접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죠.
우리는 살면서 남의 평가에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긍정적인 평가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들때면 아무리 그렇지 않은 척 하려해도 1855년 나다니엘의 마음처럼 억울하고 속이 쓰리겠죠.
그러나 무똥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다니엘은 120년 전 외침을 통해 1등을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겸손함과 2등은 하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보였습니다. 나는 무똥이라며 자부심도 챙겼고요. 그리고 스스로의 생애는 물론, 그 후손들까지 100년을 훌쩍 넘기는 기간동안 수십차례 좌절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했고 변화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결국 1973년 증손자인 필립에 이르러 결실을 맺었습니다. 필립 역시 선조들로부터 이어진 노력을 통해 1등급이라는 결과를 이뤄낸 자부심, 2등급이었다는 고백을 통한 겸손함, 무똥은 변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을 소감으로 보여줬습니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과 진정한 나의 실력, 늘 최선을 다하는 것라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삶의 자세가 숨겨져있는 것은 아닐까요. 남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기보다 꿈을 가지고 겸손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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