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현‧이정현, 소노판 ‘트윈테러’로 뜰까?
지난 시즌 가장 빛났던 토종 선수는 단연 정규리그 MVP 김선형(35‧187cm)이다. 중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발톱을 꺼내든 그는 ‘슬래셔형 1번으로서 한계가 있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정면으로 반박하듯 여전한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보여줬다. 거기에 노련함까지 더해지자 상대 수비 입장에서는 감당하기가 더 어려웠다는 평가다.
플레이오프에서의 김선형은 더욱 무서웠다. ‘여전하다’를 넘어 ‘제2의 전성기가 찾아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전방위로 위력을 과시했다. 자신만의 리듬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돌파를 성공시켰는데 상황에 맞게 핑거롤, 플로터, 더블클러치 등 여러 가지 기술을 구사하며 수비를 괴롭혔다.
지지난 시즌 김선형은 잘하기는 했지만 언터처블이라는 느낌은 주지않았다. 하지만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한 마리 ‘폭염룡(爆炎龍)’을 보는 듯 했다. 안영준, 최준용 등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봉인시켜놓았던 공격 본능을 해제한 이유가 컸다. 그는 외국인선수 자밀 워니와 함께 상대 진영을 맹폭격했고 그로인해 SK는 예상을 깨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시즌 내내는 아니었지만 김선형에 필적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도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전성현(32‧188.6cm)과 이정현(24‧187cm)이다. 발동은 전성현이 먼저 걸었다. 지난 시즌 중반까지만해도 가장 유력한 MVP 후보로는 전성현이 꼽혔다. 그만큼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농구는 림에서 가까워질수록 유리한 스포츠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으니 이른바 슈터라고 불리는 선수들이다. 아마시절부터 3점슛 라인밖에서 슛을 던지는데 익숙한지라 외려 림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있어야 편안함을 느끼기도한다.
전성현은 그러한 KBL의 많은 슈터중 가장 정점에 서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이른바 탑 궁수다. 평소에는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을 주지않지만 빈틈이 보였다싶은 순간에는 민첩하게 빈공간을 선점한후 다양한 화살을 뽑아들어 시위에 건다. 워낙 동작이 빠르고 간결한데다 뱃심까지 두둑한지라 어지간한 압박이나 방해 정도는 신경쓰지않고 정확하게 림을 명중시킨다.
안양 KGC(현 정관장)시절부터 최고 슈터로 급부상했던 그는 새로운 무대 고양으로 둥지를 옮기고나서는 더더욱 높아진 화력을 뽐냈다. 50경기에서 평균 17.62득점(전체 7위, 국내 2위), 2.62어시스트, 1.94리바운드, 1.06스틸을 기록했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경기당 3점슛 3개 이상(3.42개)을 성공시켰으며 성공률 역시 37.50%에 달했다.
달팽이관 이상에 따른 돌발성 난청으로 인해 후반기 페이스가 급락하지 않았다면 더 나은 성적도 가능했을 것이 분명하다. 정규시즌 중반기까지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자신에게 온통 수비가 집중된 상황에서 역대급 3점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는 점이다.
모든 상대팀이 대놓고 자신을 막는 상황에서도 더블팀, 트리플팀을 뚫고 터프샷을 던질 때가 많았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한때 외국인선수 포함 득점 2위까지 치고올라간 적도 있다. 아쉬운 것은 당시만해도 이정현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규리그 52경기에서 평균 15.02득점, 4.23어시스트, 2.60리바운드, 1.69스틸을 올리며 준수한 성적표를 기록했으나 에이스로서 상대에게 주는 압박감은 김선형, 전성현 등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정현의 진짜 가치는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났다. 정규시즌같은 경우 전성현에게 다소 의지(=양보)하는 모습도 있었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알을 깨고 튀어나가기 시작한다. 전성현이 건강 이상으로 제대로 뛰지못하게된 상태에서의 플레이오프 전술은 단순했다. 이정현과 외국인선수 디드릭 로슨(26‧201cm)에게 대부분의 공격이 집중되는 가운데 남은 선수들은 수비 등 궂은 일에 집중하면서 외곽에서 찬스가 나면 3점슛을 던졌다.
특별할 것 없는 수였지만 6강전에서 현대모비스는 알면서도 당했다. KGC 또한 단단히 준비했음에도 한경기를 내준 바 있다. 팀 성적으로 인해 갈렸을 뿐 플레이오프 모드 이정현은 김선형 못지않았다. 틈만나면 돌파를 시도하며 수비를 찢었고 자신과 사이즈가 비슷한 선수와 매치업이 되면 탄탄한 몸을 앞세운 포스트업으로 밀어붙였다.
조금의 빈틈만 보이면 망설이지않고 미드레인지, 3점슛을 꽃아넣었으며 그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질좋은 패스까지 뿌려주었다. 속공상황에서 일부러 스피드를 늦춰서 뒤늦게 달려오는 수비자와 충돌 상황을 만든후 바스켓 카운트를 유도하는 모습에서는 만화 ‘슬램덩크’에서의 윤대협이 연상됐다.
돌파시 상대 빅맨과 마주하게되면 피하기는 커녕 몸을 최대한 붙여서 파울을 만들어내던가 역으로 슛공간을 동시에 확보하는 플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전력차가 너무 컸던 관계로 KGC를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고양팬들은 이정현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다. 업그레이드된 이정현에 건강하게 돌아올 전성현의 1, 2번 라인이라면 10개구단 최강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올시즌 고양팬들은 전성현, 이정현에게서 소노판 ‘트윈테러’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윈테러는 1990년대 후반 NBA 뉴욕 닉스의 돌풍을 일으켰던 앨런 휴스턴(52‧198cm)과 라트렐 스프리웰(53‧196cm) 콤비가 원조다. 빠르고 운동능력좋은 슬래셔 스프리웰이 내외곽을 오가며 상대 수비를 흔들고 외곽에서는 정통 슈터 휴스턴의 외곽슛이 불을 뿜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확실한 기량을 자랑했던지라 시너지 효과도 높았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1998-99시즌에는 소속팀 뉴욕을 파이널까지 진출시키며 농구팬들을 열광시켰다. 동부 컨퍼런스에서 8번시드로 힘겹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마이애미 히트, 애틀랜타 호크스, 인디애나 페이서스 등 강호들을 줄줄이 무너뜨렸다.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가 하필이면 역대급 전력의 샌안토니오 스퍼스였던지라 돌풍이 멈추고 말았지만 예상치못한 언더독의 반란에 많은 팬들이 열광했다. 당시 트윈테러를 소노에 대입해보면 전성현이 휴스턴, 이정현은 스프리웰이다. 둘의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될 경우 어떤팀도 그들을 쉽게 보지못할 것이 확실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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