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여성작가가 본 '붕괴의 힘'…"시인의 책무, 변화의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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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노들섬에서는 한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문인 둘이 각자의 문학과 삶에 있어 파괴와 창조적 삶에 대해 대담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진은영은 고통받는 존재들의 상실에 공명하며 사랑과 치유의 대화를 모색해온 시인으로, 안온한 일상에 숨겨져 있는 타인들의 고통과 세월호 참사 이후 글 쓰는 자의 책무를 진지한 어조로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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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저는 명료한 언어로 고통을 전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시인이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군가의 고통을 명료한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작가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진은영)
"기존의 것들, 흔히 정상적이라 하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에 사회적 압박을 가하고 붕괴시키는 것, 그런 힘으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지요."(버나딘 에바리스토)
9일 오후 서울 노들섬에서는 한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문인 둘이 각자의 문학과 삶에 있어 파괴와 창조적 삶에 대해 대담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노들섬 일원에서 8일부터 열리고 있는 '2023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주요 코너 '작가, 마주보다'의 첫 주인공은 한국의 진은영(53) 시인과 영국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64).
진은영은 고통받는 존재들의 상실에 공명하며 사랑과 치유의 대화를 모색해온 시인으로, 안온한 일상에 숨겨져 있는 타인들의 고통과 세월호 참사 이후 글 쓰는 자의 책무를 진지한 어조로 들려줬다.
2019년 흑인 여성 최초로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에바리스토는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로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를 자양분 삼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대담은 두 작가의 배경과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붕괴한 삶을 딛고 일어서려는 작은 목소리들에 공명하려는 두 여성 문인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시도였다.
진은영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났을 때 내 존재가 무너져서 다른 삶으로 시작되는 느낌"과 같은 붕괴의 아름다움도 있다면서도 "최근 들어 붕괴하면 안 되는 삶의 환경들이 붕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빵공장 사고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은 일들을 언급하면서는 "조금의 인건비로 많은 시간 노동자를 일하게 하고 안전에 투자도 안 하는 상황이라면 평온한 우리의 일상은 결국 (누군가의) 무너진 삶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피에 젖은 빵을 먹고, 피에 젖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쓰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해 내놓은 자신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에 대해선 세월호 참사 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붕괴한 자리에서 살아가는가를 강제로 직면해야 하는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차별과 편견의 틀을 깨고 쟁취해야 할 창조적 삶의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
그는 자신의 부커상 수상작인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의 등장인물 중 1980년대 런던에서 연기 수업을 받은 적 없는 두 흑인 여성이 극단을 만드는 얘기를 예로 들며 '우리 방식대로 스스로 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런던에서 흑인들은 일자리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 소설 속 두 인물은 극단을 만들기로 결심하죠. 이들처럼 창작하는 사람들은 우리 목소리로 우리 방식대로 세상을 탐험한다는 것을 모토로 삼아야 해요. 규범이나 윗사람들의 지시에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지문을 찍으며 나아가야 해요."
진은영도 에바리스토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그는 "정상적 삶의 행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경험을 해도 인생이 붕괴한다면 그건 정상성 안에 갇히는 것"이라며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경험이 문학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오는 13일까지 이어진다. 은희경·앤드루 포터의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10일), 김금희·마르타 바탈랴의 '돌봄과 연대의 상상' 대담 등 참가 작가들의 강연과 대화, 융복합공연 등이 진행된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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