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뿌리고 존엄하게 떠날 수 있다면

한겨레 2023. 9. 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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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병남의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한겨레S] 이병남의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
41살 평화운동가의 죽음

바르고 단단하고 따뜻했던 그
가족·지인, 성심으로 치유 기원
20년간 ‘할 일’ 다 하고 하늘로
생의 마지막, 편히 가게 도와야
일러스트 장광석

가까이 지내던 한 사람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2년 동안 암 투병을 하다가 남편과 9살 딸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불과 41살입니다.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남편과 함께 평화운동가로 일했던 그녀는 바르고, 단단하고, 따뜻하며, 몸과 마음이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연명장치를 제거하고도 의식 없이 며칠째 자가 호흡을 하던 그녀를 병실에서 잠깐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쌕쌕’ 숨 쉬고 있는 얼굴은 평소처럼 맑고 윤기가 흘렀습니다.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소리 내 인사를 건네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은 살면서도 주변에 자신을 나누더니, 이젠 호흡을 통해 몸 세포를 마지막까지 다 태우고 가볍게 훨훨 하늘로 올라가려나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의 마지막 투병 모습은 참 특별했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는 동안 지인들은 교대로 문병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의 아이를 돌보고 처리해야 할 일을 도왔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소위 ‘간병부축단’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면회조차 되지 않던 열흘 동안 병원 로비 한쪽에서 날마다 대기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모았습니다. 이는 2년여 동안 아내를 초인적인 힘과 지극정성으로 간병해온 그녀의 남편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내의 상태를 종종 알렸고 때론 자신의 힘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사진과 함께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치유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를 청했습니다. 그 메시지를 본 지인들은 일제히 밤 9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다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형식은 가족장, 내용은 사회장

이 과정을 함께하면서 저는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표현하고 나누며 이어진 마음들에 마음을 포개니 새로운 기운이 생성됐습니다. 이렇게 흐르기 시작한 에너지는 대단한 치유력을 발휘했습니다. 저 자신도 치유됐습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생명의 나무 아래에서 서로 어깨를 겯고 진행하는 영적 의식이 떠올랐습니다.

장례 과정도 특별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큰 병원, 가장 큰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장례 기간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고인과 그의 남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형식은 가족장이었지만 내용은 사회장이었습니다. 유족과 함께 애타고 절절한 슬픔을 나누는 조문객은 그 자체로 유족이었습니다. 저는 3일장이 아닌, 최소 30일장을 다 함께 치른 느낌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마지막을 이렇게 떠나보낼 수 있다니요. 인생 첫 경험이었습니다.

장례가 끝난 이틀 뒤에 저는 제주에 갔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에 들렀습니다. 제주도의 동쪽, 제주올레 3코스 김영갑 갤러리 부근에 있는 ‘삼달다방’입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 그리고 활동가들이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숙소와 책으로 가득 찬 카페 공간, 무를 재배하는 밭이 있는 곳이지요. 얼마 전 한겨레 토요판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다방이란 이름은 사람들이 차 한잔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란 뜻일 뿐, 실제 다과를 팔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방문객에게는 후원자들이 보내 오는 맛난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를 공짜로 주지요. 주인 부부 중 남편은 ‘무심’, 아내는 ‘오케이’란 이름을 씁니다. 삼달다방을 찾는 모든 이들과 사회적 지위·나이 등과 무관하게 편히 지내기 위해 별명을 지어 부른다고 합니다. 저도 실은 다른 모임에서 ‘테라’라는 별명을 쓰고 있어, 금방 편해졌습니다.

무심은 서울에서 오랫동안 건설회사에서 홍보마케팅 업무를 했고, 오케이는 장애인 권리 운동을 했습니다. 이들은 9년 전 퇴직금을 털고 서울 집을 팔아서 제주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뚜렷한 수익사업도 없이 그저 마음 부자로 사는 삶입니다. 그들과 마주 앉아 처음 나눈 대화가 네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서로의 공통 지인이 많았던 것이지요. 서울에서 장례를 치른 그 평화운동가 부부와도 무심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자연스레 우린 그 부부와의 인연을 나누고 함께 애도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무심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사니 참 행복합니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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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남은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평화운동가 부부도, 삼달다방 주인 내외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바닷가에 있는 동네 식당에서 우럭매운탕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 또 바다목장 옆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숲과 바다를 즐겼습니다.

무심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난 그녀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저는 41살에 겨우 세상살이를 제대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저는 시장 시스템에서 기업도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했고 나름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삶에 비하면 참 느슨하고, 미미했다는 느낌입니다. 평화운동가인 그녀는 20대부터 시작해서 20년간 선한 영향력을 엄청나게 높은 강도와 밀도로 세상에 뿌렸습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다 했기에 편히 쉬러 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쪽 지방 어느 산줄기 아래 기슭에는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스님이 한분 계십니다. 얼마 전, 그분이 연꽃 사진 한장을 보내셨습니다. 참으로 고왔습니다. 연꽃을 피워 올린 건 연못의 황톳빛 흙탕물입니다. 흙탕물에 좋은 유기물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탁해서 보이지 않는 연못 바닥에는 깨끗한 물줄기가 흐르면서 산소를 공급한다고 합니다. 그 덕에 우아한 연꽃이 피어난다는 것이지요. 스님은 오갈 데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이 마치 도둑맞듯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벗고 평화롭고 새롭게 생명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얘기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이 사회에서 사는 이들의 마음을 정한다고 하십니다.

생의 마지막에 존엄성을 가지고 편히 가도록 돕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덜 불안할 것입니다. ‘나도 저런 대접 받으면서 가게 될 거야’라고 안도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주검이 내팽개쳐지는 사회에 사는 사람은 내심 불안할 겁니다. 경계심을 늦출 수 없고, 결코 평화로울 수도 없을 것입니다. 스님은 수명이 길어진 지금이야말로 호스피스 의료가 더욱 필요한데,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고 한숨을 쉽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십년 동안 암 환자의 마지막을 돌보는 스님은 연못 바닥에 흐르는 깨끗한 물줄기이자, 한 송이 연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 연못 바닥에 흐르는 작은 물길 하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한 물줄기 하나. 생명의 근원은 물이고 물의 본질은 흐르는 것이지요.

삶을 배우는 사람

2016년 엘지(LG) 인화원장으로 퇴임한 뒤 삶의 방향을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로 바꿨다. 은퇴와 노화를 함께 겪으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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