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기록 뒤지고 삭제된 기사 찾아 '오염수 국제기준' 허상 짚다

김예리 기자 2023. 9. 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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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염수 방류, 숨은 쟁점' 기획연재하는 이승훈 민중의소리 기자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삼중수소가 바나나보다 안전하다.” 2021년 월성원전 삼중수소 논란 당시 핵과학자들이 파다하게 했던 주장이다. 이승훈 민중의소리 기자는 그해부터 핵발전 문제를 취재했다. 그는 “원전 이슈가 터질 때마다 매번 과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 화가 났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사고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 해이기도 하다. 이 주장은 최근 정부 카드뉴스에도 등장한다. “오염수 내 삼중수소는 커피 바나나보다 훨씬 적다.”

오염수를 다루는 언론이 검증의 칼날을 들이대야 할 주장은 많다. 이 기자는 그 중 대표적인 주장이 “국제기준”이라고 말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일본 정부, 한국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강조하는 단어다. 이 기자는 지난 4월부터 오염수 방류의 숨은 쟁점을 기획연재로 10건째 해부하고 있다.

▲4월27일 민중의소리 보도 갈무리

'숨은 쟁점'은 언론과 정치권의 '따옴표'에 가려져 있지만 검증이 필요한 쟁점을 뜻한다. 일본은 오염수를 740배의 바닷물로 희석한다는데, 원래 오염수의 방사성 농도는 얼마일까. 일본 정부는 이를 밝히긴 했을까. 희석한 농도가 기준치 밑이니 괜찮다면, 못 버릴 방사성 폐기물은 있을까. IAEA는 이를 고려했을까.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무단 방류한 오염수 양은 얼마나 될까.

이들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다. 관련 기관에 물어도 시원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쓰는 기자가 드문 만큼 확인을 거쳐도 안심하기 어렵다. 이 기자는 다수의 전문가 조언을 적극 구한다. 삭제된 아사히신문 기사가 인용한 자료를 찾아 IAEA 홈페이지를 뒤졌다. 3년치 보고서를 모조리 다운 받아 봤다. 그는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에게 이번 오염수 방류가 '국내 기준에도 어긋나지 않느냐'고 물었다가 “인류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 기존 절차와 비교하기 어렵다”는 반박을 들었다고 한다.

지난 4일 만난 이승훈 기자는 중요한 건 '앞으로'라고 강조했다. “핵발전을 하는 모든 국가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는 최대의 난제다. 일본이 '희석해서 버리면 된다'며 방류할 수 있게 한다면, 비용을 들여 같은 방식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ALPS(농도저감설비)를 거친 오염수 방류 강행을 발판으로 주민들이 반대하던 재처리시설도 오는 2024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일본 정부가 무단으로 방류해온 막대한 양의 오염수도 숨겨진 쟁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승훈 민중의 소리 기자.

방류 권고한 기관에 검토 맡기는 '쇼'

- 오염수 문제에 어떻게 관심 갖고 보도하게 됐나.

“편집국장의 권유로 2021년부터 핵발전 취재를 담당하게 됐다. 처음엔 핵발전 문제가 전문영역이고 함부로 뛰어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 (심리적) 벽을 뒀다. 아마 많은 기자들도 그럴 거 같다. 취재를 계속한 건 원전 이슈가 터질 때마다 핵공학자들이 한 주장 때문이다. 매번 '삼중수소보다 바나나가 위험하다'는 말을 했다. 당시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다루는 연구자와 자료가 많이 나올 때였다. 그런 연구는 언급하지 않고 삼중수소가 마치 우리 주위에 파다하고 안전한 것처럼 얘기했다. 그때부터 핵과학자들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결국 열 받아서다(웃음).”

▲윤석열 정부의 오염수 홍보 자료 ⓒ윤석열 정부

- 단독보도 가운데 하나는 '오염수 방류 검토에 나선다는 IAEA가 이미 2015년에 오염수 해양방류를 권고했다'는 기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앞서 IAEA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해, 제3기관으로서 이를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미 바다 방류를 권고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3기관이라면 다양한 대안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당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미 방류를 권고한 기관에 검토를 맡기는 건 일종의 '쇼'로 보였다.

그린피스 보고서를 읽다 'IAEA가 바다에 후쿠시마 방사성 물을 방류하는 것을 권고하다'란 제목의 아사히신문을 인용한 주석을 봤다. 관련 기사 원문을 찾아봤지만 관련 기사가 모두 삭제돼 있었다. 2013~2015년 IAEA에 게재된 모든 기록물을 모두 내려받아 뒤졌다. 2015년 아마노 유키야 IAEA 총장 이름으로 사실상 방류를 권고한 문서가 있었다. 정확한 표현은 '방류 등을 고려하라'였는데, 다양한 대안 가운데 가장 손쉽고 저렴한 방식을 콕 집어 제시한 거다.”

[ 관련 기사 : [단독]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알고 보니 IAEA가 2015년에 권고 / 민중의 소리 ]

원안위 측 허탈한 답변 '전례 없어 현 기준과 비교 어려워'

- ALPS를 거친, 바닷물 희석 전 방사성 물질 농도가 허용기준의 2.6배가량이라고 처음 보도하기도 했다. 희석 전 농도가 왜 중요한가.

“일본 정부는 ALPS 처리한 오염수 농도가 기준치를 넘는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이준택 건국대 물리학 명예교수가 일본 정부가 밟는 희석 절차가 이상하다고 알려왔다. 도쿄전력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허용기준 농도를 '1'로 봤을 때, 740배의 바닷물로 희석한 뒤 30개 방사성 핵종 농도가 0.0036이라고 적시했다. 이 수치를 역으로 추적하면, 희석 전(처리 후) 오염수 농도는 허용기준보다 2.6배 높다.

[ 관련 기사 : 일본이 오염수를 '740배'로 희석해 바다에 버리는 이유 / 민중의 소리 ]

방사성폐기물 전문가에 따르면 통상 액체 방사성 폐기물이 희석하기 전 기준치 이하 농도임을 확인한 뒤 방류를 결정한다. 그런데 도쿄전력은 농도를 밝히지 않다가 희석한 뒤 그 결과물이 기준치 이하인지를 알린 것이다. '희석 뒤엔 기준치 이하이니 괜찮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독극물이든 방사성 폐기물이든 방류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런데 IAEA, 일본 정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나와 이번 방류가 '국제기준'에 따랐다고 말한다. 원안위에 '이렇게 희석하는 건 액체폐기물 통상 처리절차와도 다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인류 역사상 이런 사고와 이런 방식은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라 (통상 절차) 이런 것과 비교하는 것과 맞지 않다, 기존에 전례가 없어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없다'고 말하더라.”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월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ALPS 처리 뒤, 희석 전 오염수 내 방사성 물질의 양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수력원자력이 냉각수 등 배수되는 물의 방사능 농도를 '리터당 13Bq(베크렐)로 배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일본은 740배의 바닷물로 희석해 내보낸다는 농도가 리터당 1500Bq이다. (한국 원전의 냉각수 배출 농도와) 엄청난 차이이다. 일본의 허용 기준은 (삼중수소 기준) 6만 Bq이니, 도쿄전력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희석 전 농도는 2배인 12만 Bq를 넘는다.”

선례 될 것…오염수 못 버릴 국가는 없다는 신호

- 오염수가 수산물이나 생활에 당장 미칠 영향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방류를 시작했으니 해산물과 소금을 먹지 못한다고 보진 않는다. 당장 바다가 엄청난 수준으로 오염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건 이것이 선례가 되리라는 점이다. 핵발전을 하는 모든 국가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는 최대의 난제다. 일본이 '희석해서 버리면 된다'며 이렇게 방류해 버렸다. 다들 같은 방식으로 버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왜 돈을 써서 폐기물을 방류 금지하고 규제하겠나.”

-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짜 문제, 10년째 방사성 물질 새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미 방류해온 오염수 이야기는 10여년째 얘기가 되지 않고 있다. 일본이 그동안 방류된 방사성 오염수의 총량을 한 번도 제대로 조사해 밝힌 적 없지만 최대한 기록들을 찾아 추정해본 기사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1~4호기가 잇달아 폭발하면서 공중으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 가운데 세슘의 80%는 바다에 내려앉았다는 게 UN 추정이다. 대량으로 발생한 지하수, 빗물, 원전에 원자로를 식히려 투입한 바닷물 냉각수 일부를 끌어올렸는데, 사고 초기 저장탱크가 충분히 없을 때 어느 날 갑자기 1만 톤 이상의 고농도 오염수를 무단 방류했다. 그 뒤로도 통제되지 않는 오염수가 계속 누출됐다. 후쿠시마와 우리나라 앞바다의 표층해수 농도의 차이는 지금도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바닷물은 순환하기 때문에, 누출이 멈췄다면 농도가 같아져야 한다.”

- 정부여당은 '(오염) 처리수'로 용어 변경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월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질의하며 했던 말이다. 이 장관이 처리수라 쓰는 게 맞다는 취지로 답하자 신 의원이 오염수란 말은 '북한식 용어혼란전술'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한 시점이 중요하다. 조선일보가 3월23일 '북한이 후쿠시마 괴담을 퍼뜨려 반일감정 자극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보도한 뒤 신 의원의 '북한 전술' 주장이 나온 것이다. 마치 오염수라 칭하면 특정 이념에 매몰된 것처럼 몰아가는 행태다. 그러나 오히려 처리수란 말이 진실을 흐린다. 일본 정부도 밝혔듯 오염수에서 삼중수소와 탄소-14 등 방사성 물질은 전혀 제거할 수 없으며 그 양도 어마어마하다.”

정부의 '겁주기', 적극 취재 막아

- 그밖에 추천할 기사는.

“얼마 전 미국 메사추세츠주 정부가 필그림 원전에서 나온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금지했고, 뉴욕주도 인디언포인트 원전 냉각수 방류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인디언포인트는 폐쇄된 원전인데, 액체 방사성 폐기물을 허드슨강물에 방류하려 하자 여야 상·하원 의원이 전부 달려들어 금지 법안을 제정했다. 뉴욕주의 보도자료를 보니 공화당 의원이 “난 처음부터 반대운동을 했고 법안 통과를 환영한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썼더라. 이 사안이 여야 정치 사안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태평양 건너 일본 오염수 방류 계획에는 지지 입장을 냈다. 한국 정부여당은 이를 토대로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가 과민반응이라는 취지로 얘기한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핵연료와 직접 닿아 압도적으로 위험한데, 뉴욕주에선 직접 닿지 않은 냉각수 방류에 반대하는 운동이 주 전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관련 기사 : 일본 오염수 방류 지지한 미국, 허드슨강 원전 냉각수 방류는 금지 / 민중의 소리 ]

▲윤석열 정부가 배포한 오염수 홍보 자료 ⓒ윤석열 정부

- 오염수 방류를 두고 정치권 공방이 관심을 받지만 오염수를 포함한 핵발전 문제를 취재하는 언론은 적다고 느꼈을 것 같다.

“당초 원전 문제가 전문영역이라는 장벽이 있어 기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도 없지 않겠지만 정부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방류에 대해 우려하면 '가짜뉴스'이자 '괴담 선동'이라고 규정하며 계속 겁을 주지 않나. 전문가인 서균렬 교수(서울대 원자핵공학과)는 실제 자기가 아는 지식을 최대한 얘기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전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 고소고발이 들어오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 방출이 시작된 현 시점에서 언론의 주목이 필요한 부분은?

“이번 오염수 방류가 선례가 되리라는 우려의 연장선에서, 일본이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을 내년에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의 엄청난 반대로 몇 차례 공사가 미뤄졌었다. 대다수 전문가는 여기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영국과 프랑스 재처리 시설을 보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영국의 셀라필드 재처리시설은 '살아있는 체르노빌'이라고 불린다. 또한 앞서 밝힌 오염수 방출 절차 문제가 다방면으로 취재됐으면 좋겠다. 일본과 한국정부가 국제기준을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희석하면 괜찮은 것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속이고 있다는 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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