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엔 드 쿠닝의 130억원짜리 작품, 한남동엔 2000억원 규모 크리스티 전시품

엄태근 아트컨설턴트·크리에이티브 리소스 대표 2023. 9. 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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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바꾼 강남·북 거리들의 풍경
국내 토종 ‘키아프’와 공동 개최…이미래·강서경 등 작품 등도 선봬

(시사저널=엄태근 아트컨설턴트·크리에이티브 리소스 대표)

초가을로 접어드는 9월 서울의 길거리 곳곳에서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외국인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열리고 있는 '키아프리즈' 즉, 런던에서 시작된 프리즈(Frieze)와 국내 토종 키아프(Kiaf) 아트페어의 공동 개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이다. 두 페어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5년간 페어를 공동 개최하기로 협약을 맺었으며, 페어는 작년부터 매해 9월에 열리고 있다. 지난해 방문객 약 7만 명, 매출 규모 6500억원의 뜨거운 기록을 세웠던 만큼 올해도 그 열기가 지속될지 많은 미술 관계자를 비롯해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올해 프리즈와 키아프에는 아시아, 유럽, 미주 등 다양한 대륙에서 수백 개 갤러리와 한국 갤러리들이 참가했다. 다양한 해외 유명 갤러리가 가져오는 오래된 명작부터 작지만 알찬 갤러리가 가져오는 현대미술품까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독자 여러분을 흥미로운 갤러리로 안내해 보겠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토요일 밤》 ⓒChristie's Images Limited 2023 제공
윌렘 드 쿠닝의 《무제(Untitled)》 ⓒChristie's Images Limited 2023 제공

서울 삼청동·인사동·한남동·청담동에 갤러리 몰려

뉴욕에 베이스를 둔 티나 킴(Tina Kim) 갤러리의 부스는 젊은 한국 여성 작가들로 부스를 기획했다. 최근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설치 작업으로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이미래의 작품부터 한국적 디아스포라적 경험을 페인팅으로 시각화한 마이아 루스 리(Maia Ruth Lee)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미국 LA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랑수아 게발리(Francois Ghebaly) 갤러리는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신디 지혜 킴(Cindy Jihye Kim)의 신작만으로 솔로 부스를 기획했다. 브라질의 멘데스 우드 DM(Mendes Wood DM) 갤러리는 일상적 오브제를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양혜규의 설치 및 종이 작품을 부스에 선보였다.

또한,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를 열고 있는 강서경 작가의 작품을 프리즈 내 여러 부스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조각, 회화, 설치 등 여러 미술 장르의 경계를 한국 전통적 미감으로 재해석하는 강서경의 작업은 한국의 국제 갤러리, 교포들이 운영하는 미국 LA의 커먼웰스 앤 카운실(Commonwealth & Council) 갤러리, 뉴욕의 티나 킴(Tina Kim) 갤러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시장이 위치한 삼성동 코엑스 주변은 물론 서울 내 국내 및 해외 유명 갤러리들의 분점들까지 북적거리고 있다. 한국의 전통 갤러리들은 주로 종로구 삼청동, 인사동 지역에 많이 분포했으나, 최근 해외 갤러리들이 서울에 분점을 오픈하면서부터 갤러리 지형이 다양해지고 있다. 해외 갤러리들은 대부분 용산구 한남동, 강남구 청담동에 분점을 냈다.

한남동에 위치한 뉴욕의 페이스(Pace) 갤러리는 블루칩 작가인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의 드로잉, 세라믹 작업과 떠오르는 신진 작가 로버트 나바(Robert Nava)의 신작 페인팅을 선보였다.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나바는 어린아이가 장난스럽게 그린 그림같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비판 의식이 깔려 있다. 세계 최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Christie's) 또한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바스키아&워홀' 전시를 개막했다. 팝아트의 거장으로 여겨지는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이 10여 점 설치돼 있다. 총 작품 가격은 2000억원에 달한다.

다시 삼성동 코엑스로 돌아가자. 페어 내 갤러리 부스엔 '서울'의 지역성을 고려해 선정된 아시아 작가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명작이라고 일컫는 작품도 다수 볼 수 있다. 미국 뉴욕 상류층이 거주하고 있는 어퍼이스트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스칼스뎃(Skarstedt) 갤러리는 이번 페어에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후반기 작업인 1980년대 페인팅을 주요 작품으로 가져왔다. 드 쿠닝의 후반기 작업은 파랑, 빨강, 흰색의 면과 선으로만 구성된 추상 회화가 시그니처로서 잘 알려져 있다. 마치 사람이 춤추는 듯한 자유로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멀리서도 빛이 났다. 미국의 20세기 중반 경제 호황기를 반영하듯, 이 시대의 추상 표현주의 미술은 아직도 미국의 국력을 상징한다. 이 드 쿠닝의 작업은 약 130억원이다.

유럽에 기반을 둔 하우저 앤 벌스(Hauser & Wirth) 갤러리는 페어에서 주요 작품으로 필립 거스통(Philip Guston)의 1970년대 후반 작업인 '전투 I (Combat I)'을 가져왔다. 만화적 요소가 가미된 구상 회화로 유명한 거스통의 작업은 그가 사망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저평가되어 왔다는 미술계 평이 다분하다. 거스통의 작업은 앞서 언급한 드 쿠닝의 작업과 연관 지어볼 수 있다. 1950~60년대 추상 표현주의가 성행하던 시기에 추상적인 작품 외에 다른 스타일의 작업은 당대 미술계에서 멸시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거스통은 1970년대 미국 내 정치적 불안감으로 조성된 사회적 긴장감을 추상적 표현으로 담아내는 데 한계를 느꼈고, 독자적인 구상 회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당시 컬렉터와 비평가들의 반응은 싸늘했고, 전시에서도 단 한 점의 그림만 판매되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거스통 그림이 재평가되고 있다. 미국 휴스턴, 워싱턴 회고전에 이어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는 올해 10월부터 전시가 준비되어 있다.

앤디 워홀의 《마이클 잭슨》 ⓒ크리에이티브 리소스 제공

글로벌 미술시장, 합리적 가격으로 작품 구입할 기회

장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글로벌 미술시장은 오히려 합리적인 가격에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작년이 유독 비정상적으로 시장이 좋았던 것이고, 올해는 다시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시장이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울에서 프리즈와 키아프가 공동 개최하는 아트페어는 한국 미술 발전에 긍정적인 신호임이 틀림없다. 물론 많은 해외 작가와 작품의 유입으로 오히려 국내 미술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오히려 이는 공정한 경쟁을 유발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미술계에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줄 것이다. 미술품은 타 예술 장르와 달리 자산으로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국내 작가, 작품, 더 나아가 한국 미술이 성장하는 것은 국력 향상에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인 가치보다도 예술을 통해 파생할 수 있는 문화경제적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우리나라는 앞서 음악, 무용,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세계 무대에서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을 목격해 왔다. 이제는 한국 미술계에도 좋은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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