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좋은 선생님 못 될 것 같다" 숨진 대전 교사, 고군분투 2년의 기록

허진실 기자 2023. 9. 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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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고소 당한 후 무혐의 처분…"어떤 노력도 부메랑 될 것이라는 공포"
"3년동안 정신과 치료 받으며 다독였지만 서이초 교사 사건 보고 울기만 했다"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가운데 8일 재직했던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초등학교 정문에 고인을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 있다. 2023.9.8/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대전=뉴스1) 허진실 기자 = 지난 7일 대전에서 극단 선택으로 숨진 초등학교 교사가 생전에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고 무혐의 처분를 받기까지 홀로 고군분투했던 2년여간의 과정이 9일 공개됐다.

숨진 A교사는 기록을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어이없는 결정을 경험했다. 그들은 교육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지난 7월 실시한 초등교사노조의 교권침해 사례 모집에서 A교사는 자신의 경험을 작성해 전달했다.

글에는 A교사가 2019년 3월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은 뒤 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은 교권침해 내용과 아동학대 고소건이 자세히 기술돼 있었다.

신학기가 시작된 3월 학생은 수업 태도가 불량해 여러 번의 지도를 받았고 특히 팔로 다른 친구의 목을 졸라 학부모에게 가정 지도를 부탁했다.

이후 4월에는 수업 중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다른 학생을 발로 차거나 꼬집어 학부모 상담을 진행했으나 학부모로부터 ‘아이가 교사를 무서워해 학교 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월에는 급식실 바닥에 누운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지도하자 학부모로부터 ‘전교생 앞에서 지도해 불쾌하다’는 전화 민원을 받았으며 6~8월에도 수업 중 지우개를 씹거나 색종이를 접고, 친구를 꼬집거나 발로 차는 시늉을 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학생의 폭력 수위는 계속 높아졌고 2학기가 시작되고부터는 친구의 배를 발로 차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11월 해당 학생이 다른 학생의 얼굴까지 때리자 A교사는 본인 혼자서는 지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아이를 교장실로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학부모는 교무실을 직접 찾아와 A교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A교사는 “같은 자리에 교장, 교감이 있었지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지도하려 했을 뿐 마음의 상처를 주고자 한 게 아니었다고 학부모에게 이야기했다”고 적었다.

이후 A교사는 병가를 냈으나 학부모는 국민신문고, 경찰에 아동학대로 A교사를 신고했다.

시교육청에서 나온 장학사는 조사후 ‘혐의 없음’으로 결론내렸다.

학교폭력위원회도 열려 해당 학생에게는 학내외 전문가에게 심리상담 및 조언을 받는 1호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내린 결과는 정반대였다.

2020년 2월 이 기관은 A교사가 학생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며 아동학대사례로 판단했다.

이후 사건은 경찰로 넘어갔고 A교사는 같은해 10월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이 나기까지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A교사의 남편에 따르면 A교사는 어떤 기관에서도 법률적 도움을 받지 못해 홀로 변호사를 찾았다.

4월에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6월에는 사건이 검찰로 송치돼 검찰 조사가 이어졌다.

최종적으로는 신고 후 10개월이 지난 10월20일이 되어서야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론이 나왔다.

지난 7일 대전에서 극단선택으로 숨진 초등학교 교사가 지난 7월 실시한 초등교사노조의 교권침해 사례 모집에 전달한 글 일부분.(대전교사노조 제공)/뉴스1

A교사는 남기는 말에 “이 기간 동안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잃고 우울증 약을 먹게 됐다”며 “3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서울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보고 공포가 되살아나 울기만 했다”고 적었다.

이어 “저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며 “어떤 노력도 제게는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어이없는 결정을 경험했다. 그들은 교육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교사가 보호받을 수 없는 교육현장에 대해 지적했다.

글 말미에는 "서울 서이초 선생님의 사망사건 등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A교사는 글을 작성하고 약 한 달 반 뒤인 지난 7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zzonehjsi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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