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100만부 ‘부풀리기’ 맞지만 ‘조작’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수 없는 공사 결과를 버젓이 발표하게 되었다.”
2020년 11월 신문·잡지 부수공사기구 한국ABC협회 내부 관계자들이 “ABC협회 부수 공사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낸 진정서는 충격적이었다. 2020년(2019년도분) 공사 결과 <조선일보> 유가율은 95.94%. 100부를 발송하면 96부는 돈 내고 보는 배달 부수라는 의미였다.
95.94% 유가율 점검 결과 67.24%로 낮아져
2021년 3월, ‘부수 조작’은 명확해 보였다. 문체부의 12개 신문지국 현장점검 결과 <조선일보> 유가율은 67.24%였다. 신문지국 성실률(신문사가 밝힌 유료부수 대비 현장 실사로 인증한 유료부수 비율)은 더 격차가 컸다. ABC협회가 내놓은 <조선일보> 성실률은 98.09%였으나 문체부 조사에선 55.36%였다. ‘100만 유료부수’를 자랑하던 ‘1등 신문’의 자존심이 반토막 난 순간이었다. 문체부는 이런 내용의 사무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ABC협회의 “총체적 부실”을 지적했고, 그해 7월 ABC협회 부수 공사의 정책적 활용까지 중단했다.
2021년 3월 더불어민주당 의원 30여 명은 <조선일보>와 ABC협회 등을 사기·업무방해, 국가 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같은 해 11월 <조선일보>를 유통하는 신문지국 6곳과 수도권 폐지업체들을 압수수색하고, 이듬해인 2022년 7월엔 <조선일보>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논란이 있은 지 약 2년10개월 만인 2023년 8월 이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서울경찰청은 수사 결과 통지서에서 “<조선일보>가 ABC협회 부수 공사 규정에 따른 유료부수 보고가 아니라 전국 지국에 판매한 지대 부수를 토대로 산출한 내역을 유료부수 현황으로 보고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했지만 “<조선일보> 본사 및 지국 등으로부터 압수한 자료를 분석했으나 유료부수를 조작한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는 “부수 부풀리기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도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고발이 이뤄진 후 2년 5개월간 무엇을 수사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비닐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전세계로 헐값에 폐지가 되어 수출되는 ‘계란판 신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이렇게 조작된 신문 부수를 근거로 정부 광고비를 산출하고 각종 보조금을 타온 언론사 부조리를 바로잡을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고 했다. 이어 “규정과 다르게 결과를 산출해 보고한 것을 우리는 조작이라고 한다. 경찰은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고의로 발견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수사 비협조’ 지시 등 증거인멸 가능성도
왜 수사 결론은 ‘무혐의’였을까.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문체부 사무감사에 협조했던 신문지국장들이 수사가 시작되며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무감사) 이후 경찰 수사에서는 나올 자료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무감사 대상 신문지국이 노출되면서 ‘협조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신문지국들이 관련 증거자료를 전부 교체하고 답변을 거부하며 증거나 증언이 나올 수 없었다는 것. 더욱이 신문지국장 대부분은 수사에 따른 파지 수입 감소도 원치 않았다.
문체부 역시 사무감사 발표 이후 신문지국 수십 곳을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벌였으나 신문사·신문지국의 비협조로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본사가 신문지국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비협조’를 지시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시 한 신문지국장은 “조선·동아일보 본사에서 지국장들에게 (문체부와 경찰) 조사에 응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부수 조작을 의제화했던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수사 결과를 두고 “고발 시점에서 8개월이 지난 2021년 11월에야 본격적인 압수수색이 시작됐고 이 기간 동안 <조선일보>가 각 신문지국 자료를 파기하고 허위·조작 정보로 교체했다는 제보가 지속적으로 들어왔다”며 증거인멸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가 2021년 6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유가부수가 허위였다면 분명히 신문고시 위반”이라며 “공정위에 명확한 처리 절차를 주문하겠다”고 말했으나, 끝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지 않았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시 공정거래위가 부수 조작을 ‘부당 고객 유인’으로 판단했다면 <조선일보>는 최대 과징금이 6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2023년 7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국회에서 “ABC 제도가 우리 지적대로 좀더 보완·정비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ABC 지표를 다시 사용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행’의 움직임 속, 문체부 진정서 제출을 주도하며 신문업계에 만연한 ‘독자 기만’을 고발했던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은 직장을 잃고 ABC협회 쪽과의 소송만 남았다. 이런 가운데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도권 지역 한 신문지국장은 8월4일 “본사에서 100부가 오면 최소 50부는 파지”라고 했다.
신문업계 ‘이유 있는 침묵’이 만든 ‘무혐의’
부수 조작 논란이 무혐의로 끝난 데는 신문업계의 ‘이유 있는 침묵’도 한몫했다. 한국신문협회는 문체부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했고, 오직 <한겨레>만 “발송 부수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내부 혁신에 나서겠다”며 사과문을 낸 정도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비정상적인 수익 구조로 신문산업은 자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고 부수 조작을 공모하는 처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했고, 한국기자협회는 “부수 부풀리기는 곪을 대로 곪았던 부끄러운 비밀이다. 신문업계의 자성이 필수”라고 강조했지만, 그뿐이었다.
정철운 <미디어오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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