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 어머니 마리아여, 거룩하게 부도덕하여라
‘사회적 표준’에서 엇나간 인물들의 사랑과 혐오, 모성애 등 인간 복합성과 극단성을 종교 매개로 보여줘 마스크걸>
*이 글은 <마스크걸>의 주요 장면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랑유치원 김모미(이하린) 어린이는 “꿈이 뭐예요?”라는 사회자의 말에 당차게 대답한다. 그러나 모미의 꿈은 모미를 미워하는 엄마에 의해 좌절된다. “그 얼굴로 가수를 한다고? 꿈 깨라.” 엄마뿐 아니라 모미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못생겼다고 놀림받고 성인이 돼서는 누구와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존재감 없이 사회생활을 한다. 그런 그를 인정해주는 공간은 온라인뿐이다. 모미는 “끝내주게 못생겼”지만 “끝내주게 좋은 몸매”를 가진 덕분에 자신의 끼와 몸매를 이용해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룬다. 마스크를 쓴 채로.
‘전형적 피해자’ 아닌 복합적 인물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모미가 얼굴을 가린 채 ‘마스크걸’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방송 비제이(BJ·인터넷 방송인을 지칭하는 약어)로 활동하다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어린 모미에서부터 성인이 된 모미(이한별)에 이르기까지 순전히 외모 때문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차별당하는 모미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런 차별로 모미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팀장 박기훈(최다니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망상에 빠지거나, 자신의 망상에 동의하지 않는 인터넷방송 구독자들을 ‘강퇴’시키거나, 기훈의 불륜 사실을 알고 좌절해 폭음한 뒤 충동적으로 나체 방송을 하는 등 편협하고 기괴한 면을 가진 인물이 된다. 게다가 불순한 목적으로 자신을 만난 팬 ‘핸섬스님’이 뱉은 “못생긴 주제에”라는 말에 격분해 그에게 잔혹한 폭력을 행사한 것을 계기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악인이기도 하다. 즉, 드라마가 그린 모미는 전형적인 피해자이기보다는 조금 더 복합적인 인간이다.
모미뿐 아니라 <마스크걸>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나름 제공되지만 전적인 이해와 연민이 어려울 정도로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다. 성형수술을 한 뒤 모미(나나)가 일하게 된 유흥업소 동료 김춘애(한재이)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아이돌 지망생 최부용(이준영)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껴 그의 과거를 인터넷에 폭로해 몰락하게 한 뒤 성형을 한다. “예뻐지고 싶었어요. 제 인생의 목표는 그것뿐이었죠.” 춘애의 이 말에는 외모 탓에 차별당한 설움과 비뚤어진 욕망이 모두 담겨 있다. 그 후 춘애는 부용과 다시 만나 동거하며 희열을 느끼며 생의 의욕을 찾는다.
모미가 운영하는 인터넷방송 시청자이자 그의 직장 동료인 주오남(안재홍)도 비슷하다. 가난하고 억척스러운 엄마의 통제 아래 자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를 가진 남자아이는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자존감이 낮은 인물로 자라 성인물을 즐겨보며 ‘리얼돌’과 함께 생활하는 성인이 된다. 그는 ‘마스크걸’을 향한 집착에 가까운 연애 감정을 가지고 모미를 성폭행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소위 사회적 표준 혹은 정상성에서 엇나간 인물들을 통해 만화평론가 조경숙의 말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물론이고 혐오스럽고 더러우며 숭고하고 아름다운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혼돈 그 자체의 존재”로서 인간을 보여준다.
‘여적여’ 대신 ‘여돕여’ 관계로
이들은 저마다 복합적인 면을 가진 동시에 서로를 닮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된 모미는 자신의 이름을 ‘아름’이라 소개하는데 아름은 모미의 전 직장 동료이자 자신이 짝사랑했던 기훈의 불륜 상대 여성의 이름이다. 모미에게는 기훈과 연애하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아름과 같아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셈이다. 또한 유흥업소에서 만난 동갑내기 모미와 춘애는 외모 탓에 차별당한 경험이나 아름다워지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성형수술로 실현했다는 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래서 두 여성은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 구도를 넘어 우정을 나누며 서로 돕는 관계로 그려진다. 춘애는 모미를 추적하는 김경자(염혜란)로부터 모미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하고, 두 사람은 부용을 함께 살해하고 도망친다. 그러다 경자에게 붙잡히자 춘애는 “모미를 지켜주는 게 꼭 나를 지키는 것 같았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듯 모미를 지키다가 경자가 쏜 총에 맞고 죽는다.
모미의 딸인 미모(신예서)와 미모가 전학 간 학교의 동급생 김예춘(김민서)의 관계도 그렇다. 예춘은 미모와 친해지고 싶어서 자신도 (미모와 같이) 불행한 것처럼 거짓말한다. 경자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미(고현정) 또한 자기 자식을 위해 남의 생명을 함부로 짓밟는다는 면에서 서로를 닮아간다.
경자와 모미. 두 사람이 공유하는 가장 큰 정서는 ‘모성애’다. 이들이 잔혹한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모성애 때문이다. 심지어 모미를 싫어하던 엄마 신영희(문숙)까지 손녀인 미모를 구하다가 죽는다. 특이하게도 <마스크걸>이 그린 모성애는 ‘개신교’로 대표되는 종교와 연결된다. 경자는 중매로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의 외도로 3년 만에 이혼하고 억척스럽게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아들 하나만을 보며 살아간다. 그런 경자에게 오남은 인생 전부인 것을 넘어 신앙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경자의 모성애는 신앙하는 대상을 향한 추앙에 가깝다. 물론 그 추앙은 숭고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남을 향한 경자의 사랑은 일방적이고 맹목적이다. 경자는 오남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를 통제한다. ‘엄마 역할 자체’에 지나치게 몰입하느라 아들의 생일을 놓칠 정도다. 이런 그의 맹목성은 편협함과도 연결된다. 오남이 실종된 뒤 오남의 집에서 발견된 신원을 알 수 없는 토막 시체가 오남이 아니라는 소식을 접하고 신에게 감사하며 이렇게 외친다. “우리 아들만 아니면 돼야 버렸어.” 이 말은 아들이 살아 있기만을 절박하게 바라는 엄마의 말이기보다는 내 자식만 아니면 된다는 편협한 말에 가깝다.
모성애와 종교의 공통분모
이런 경자의 맹목성과 편협함은 폭력적으로 발현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자신의 신과 같은 아들을 잃어버리자 경자는 폭주한다. 그에게 아들을 죽인 모미는 반드시 죽여야 할 ‘마귀 년’이 된다. 신앙인에게 ‘마귀’란 이해와 화해의 대상이 아니라 박멸해야 할 악이다. 그렇기에 경자는 모미를 추적해 죽이는 일에 자신의 신앙과 인생을 건다. 자기 아들을 잃은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죽여도 된다는 뜻은 아닐 텐데 경자는 모미를 비롯해 다른 이들을 죽이는 행위의 정당성을 종교의 언어로 표현한다. 천박함과 숭고함, 신실함과 맹목성이 공존하고, 자신이 믿는 대상(혹은 세계)을 위협하는 존재에게는 지극히 편협하고 폭력적이라는 면에서 경자의 모성애는 종교적 실천과 닮았다.
이런 면은 모미(고현정)에게도 나타난다. 모미는 자신의 딸, 미모가 경자에 의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탈옥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종교를 활용한다. 독실한 개신교인인 교도소장 오애자(이선희)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개신교에 귀의한 척하다가 기회를 틈타 탈주해 미모를 구하러 간다. 이 과정에서 모미가 정말 신앙을 가지게 됐는지 탈옥하기 위해 그런 척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두 경우 모두 모성애의 종교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이렇게 <마스크걸>의 모성애(들)는 서로를 적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닮아 있고,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자식을 위해 ‘죽임’과 ‘죽음’도 불사한다는 면에서 처절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어디 모성애만 그럴까? 드라마가 그린 인간은 복합적이다. 단지 외적인 조건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혐오할 수 있고, 모미처럼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면서 동시에 그것의 숭배자일 수 있고, 경자처럼 신앙생활에 열심인 교회 집사이지만 누군가를 혐오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일에 헌신할 수도 있고, “어떤 죄를 지었건 다 똑같은 주님의 자녀”라며 선량한 얼굴로 재소자를 대하지만 실상은 악랄한 교도소장처럼 거룩하게 부도덕할 수 있는 법이다. 드라마는 이렇게 사랑과 혐오, 모성애 등 인간의 복합성을 ‘종교’라는 매개를 통해 보여준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 아니어도
<마스크걸>은 모미가 성폭행당하는 과정에서 생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점이나, ‘엄마들’이 폭주하는 이유를 ‘모성애’로만 이해하게 한 점은 결정적 한계로 여겨진다. 회차를 늘리더라도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조금 더 드러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마스크걸>은 의미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뒀다고 생각한다. 온전하게 공감하기도, 그렇다고 완전하게 내치기도 어려운 전형적인 선악 구도를 벗어난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복합성을 보여주려 했다는 면에서 흥미로웠다. 모미와 춘애, 미모와 예춘을 통해 여성 간의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의미 있었다. 결말 부분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복수하려다 사살되는 경자와, 끝내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미모에게 밝히지 않고 죽는 모미를 통해 인간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염치와 윤리에 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고도 보았다. 드라마는 이렇게 모미의 꿈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될 수 없더라도 한계와 가능성이라는 복잡한 지형에서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구성됐다.
<마스크걸>은 미모가 모미의 어린 시절이 담긴 동영상을 보는 데서 멈춘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 미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비록 트라우마로 남을 끔찍한 상황을 경험했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꿈과 상관없이 미모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미의 삶이 끝나고, 미모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질문해본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