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야,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울진 죽변항 어민들[포토다큐]
항구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바다와 하늘을 희미하게 갈라놓고 있었다. 짙은 바닷냄새가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지난달 29일 경북 울진 죽변항에서 새벽 경매를 기다리다 눈이 감겼다.
새벽 5시, 귀청을 울리는 호각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적막했던 항구는 수산물 경매 준비로 활기가 넘쳤다. 항구의 배들은 불을 밝혔다. 선원들은 잡은 물고기를 상자에 담아 부두에 깔았다. 붉은색 모자를 쓴 경매인들은 호각을 입에 문 채 빠른 걸음으로 물고기 상자 쪽으로 향했다. 하얀색 모자의 중매인들과 상인들은 경매인의 뒤를 따랐다. 중매인들은 손바닥만 한 나무판에 가격을 적어 경매인에게 전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매인은 중매인들 모자에 쓰인 번호와 가격을 뜻하는 숫자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어민들은 배에 앉아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낙찰이 끝나자, 경매인은 다시 호각을 입에 물고 다음 물고기 상자로 이동했다.
동이 틀 무렵, 호각 소리가 뜸해졌다. 경매가 끝났구나 싶었는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선 한 척의 입항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고깃배가 이내 부두에 정박했다. 그리고 다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경매인의 호각 소리! 항구엔 다시 활력이 돌았다. 낙찰이 끝나자, 상인들은 수산물이 담긴 상자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수레에 문어를 실은 한 할머니는 “천천히 가면 얘들이 (문어) 다 도망가”라고 말하며 서둘러 이동했다. 가게 상인들은 낙찰받은 생선을 손질하느라 분주했다.
한차례 폭풍 같은 아침이 지나고 항구엔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어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봉지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울진을 대표하는 죽변항은 오징어와 대게 등 다양한 어종과 풍성한 어획량으로 호황을 누렸던 항구다. 오징어 단일 어종으로도 국내 최대를 자랑했다. “예전에는 어마어마했지, 전국에서 활어차들 다 모여들고, 오징어 내다 말리고, 바다만 나가면 만선에….” 어민들은 저마다 지난날을 떠올렸다. “저 바다를 봐, 얼마나 좋아! 아무것도 안 하다가 때 돼서 나가면 물고기 주지, 그 돈으로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여태껏 살았는데…. 고맙지 뭐.” 40여 년을 바다와 함께 한 선장 김모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민들 삶 그 자체인 바다가 변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변화는 어종과 어획량에 영향을 주고 있다. 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어민들 어깨를 더 무겁게 했다.
“사람도 몸에 좋다는 거 아무리 먹어도 늙으면 죽는데, 맨날 뉴스에서 북극이 녹는다느니, 바다가 오염이라고 하면서, 거기다 좋은 걸 뿌린 것도 아니고, 오염수인데 좋을 리가 있겠어요. 우린 다 늙었고, 손주 세대들이 걱정이지.” 부두에서 만난 이모씨가 안타까워했다. “괜찮고 안 괜찮고를 떠나서,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수산물 먹는 걸 꺼리는데, 단가에도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해요. 바다에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바다를 오염시키고, 괜찮다고 하는게 말이 되나!” 선장 김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 전모씨는 “정부랑 과학자들도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은가보다 라고, 믿어야지”라며 “너무 겁먹지 말고, 많이 와서 해산물도 먹고 사가고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횟집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정부 발표는 믿어요. 하지만, 친척들도 (횟집 운영) 괜찮냐는 연락이 올 때면 앞으로가 걱정이 되긴 합니다.”
사진·글 문재원 기자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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