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합작 글로벌 K팝 그룹, 세계시장에서도 통할까
시장 주도했던 영미권에서 K팝의 기술과 노하우 인정 의미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하이브는 최근 미국 현지 음반사인 게펜 레코드와 손잡고 글로벌 K팝 그룹을 론칭하는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The Debut: Dream Academy)》라는 서바이벌 오디션이 그것이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이미 예선을 치렀고, 최종 20인의 멤버가 공개된 상태다. 9월7일 방영된 첫 미션을 시작으로 3개월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미션 수행-전문가 평가-시청자 투표'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11월 중순에는 새 걸그룹에 포함될 모든 멤버가 선발될 예정이다.
이미 진행 중인 프로그램도 있다. JYP가 리퍼블릭 레코드와 손잡고 추진 중인 《A2K》라는 프로그램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1차로 선발된 멤버들이 방송 오디션을 거쳐 한국으로 오고, 마침내 JYP 본사에서 최종 오디션을 통해 멤버를 확정 짓는 구성이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1차 오디션 과정이 방송을 완료한 상태로 한국적 오디션 문화에 적응하는 외국인 참가자들의 모습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미국 자본 빌려 K팝 '원천기술' 세계에 전파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미국 자본을 활용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더 데뷔》에서 하이브 측의 파트너는 미국 최대 음악 회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산하의 게펜 레코드다. 게펜은 과거 건스앤로지스, 에어로스미스, 너바나 등 전설적인 록그룹들을 모두 보유했던 전설적인 레이블이다. 《A2K》는 리퍼블릭 레코드와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역시 유니버설 산하 그룹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리아나 그란데 등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를 다수 보유한 회사다. 리퍼블릭은 이미 JYP 소속 아티스트들, 대표적으로 트와이스의 미국 진출을 돕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같은 방식의 협업을 두고 'K팝 아티스트들의 미국 주류 시장 안착'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다소 이른감이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소극적인 방식으로 참여하거나 방관해 왔던 미국 주류 팝음악계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그들의 자본을 통해 본질적으로는 외국 음악인 K팝 가수 만들기에 참여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미국 팝음악 역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봐도 과장은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 프로젝트들은 철저하게 한국과 미국 양쪽 회사들의 분업을 통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 분업의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음악 제작의 핵심이 되는, 그러니까 K팝 만들기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는 선발, 훈련, 제작, 소통 등 일련의 과정은 철저히 K팝 회사들의 역량에 의존하며, 그룹 결성 및 음악 제작 이후의 일들, 그러니까 방송 및 투어를 포함한 마케팅과 프로모션 등의 작업이나 유통은 막강한 자본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미국 측에서 도맡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의 자본을 빌려 한국의 K팝 '원천기술'이 세계시장을 공략하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이 같은 협업의 방식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5년 이상 K팝은 유사한 일들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한국에서 이미 완성된 그룹을 가지고 단순히 미국에 마케팅과 홍보만 의뢰해 현지화하는 방식이 그것이었는데, 캐피톨 레코드와 협업한 슈퍼엠(SuperM)이 그랬고, 방탄소년단이나 NCT 등의 그룹 역시 미국 음악 회사들에 유통을 맡겨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과거와 달리 미국 시장 진출이 기본 옵션이 된 현재, K팝에 전 세계 공략의 가장 중요한 관문은 역시 미국 시장이다. 세계적으로는 인디 레이블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한 K팝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 음악시장 진출을 위해선 현지 회사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최근에 한미 합작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인 없는 K팝 아이돌 그룹 출현, 멀지 않았다
한국이 주도하는 한미 합작 글로벌 K팝 그룹이라는 도전이 가능한 것,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이 K팝 프로젝트에 숟가락을 얹고자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K팝 아이돌 산업에 이 분야 원조인 미국이 동참해 음악 산업의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2018년을 전후로 방탄소년단이 세계 최고 그룹으로 떠오르게 된 맥락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를 중심으로 영국과 호주 등이 포함되는 영미권 대중음악계는 2010년대 이후 이렇다 할 틴에이저 아이돌 그룹을 내놓지 못하는 일종의 '아이돌 그룹 기근' 상태에 처해 있다. 서구의 아이돌은 대개 저스틴 비버,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등 솔로 가수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그들이 발굴한 가장 대표적인 스타인 올리비아 로드리고도 그렇다. 그에 반해 K팝은 철저히 그룹 위주의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자체적인 그룹을 키워내는 것보다는 K팝과 협업해 그들 산업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보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가능케 하는 모든 노하우와 기술이 이제 한국의 것이라는 점이다. 서구 음악계에서는 지난 몇 년간 K팝과 유사한 그룹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소위 '아이돌'을 만드는 경험과 기술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현재 아이돌 그룹의 성패는 좋은 음악과 콘셉트뿐 아니라 그 재능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훈련시키는가, 나아가서는 어떤 방식으로 팬덤을 구축하고 관리할 것인가에서 결정된다. 이 부분에 대해 대중음악의 첨단인 미국이나 영국조차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해진 시점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문화적 아웃소싱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그래서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많은 상상이 가능해진다. 아이돌을 꿈꾸는 전 세계의 재능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K팝 산업으로 몰리게 될 수도 있다. 꿈에 그리던 서구 주류 시장 정복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뤄지게 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한국이 만든 K팝, 한국과 미국이 합작한 K팝, 한국인이 없는 K팝, K팝을 모방한 외국 음악이 빌보드 차트에서 함께 경쟁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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