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사명감으로 혼자 견디려 했나봐요”…수백명 울음바다된 초등학교

강정의 기자 2023. 9. 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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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역 교사와 학부모 등이 9일 대전 한 초등학교에 도착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교사의 운구차를 보며 오열을 하고 있다. 강정의 기자
극단적 선택한 교사 A씨 발인식
동기들 “가장 지혜로웠던 친구”
근무 학교에 교사 등 수백명 모여

“교사에 대한 사명감이 너무 커 혼자 견디려다가 이러한 비극이 발생한 것 같아요.”

9일 오전 대전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대전 한 초등학교 교사 A씨(40대)의 빈소에서 만난 친구 김모씨와 B씨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김씨와 B씨 또한 현재 경기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A씨의 장례식장이 마련되자마자 경기지역에서 내려와 사흘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빈소에 마련된 영정에는 A씨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수년간 학부모 등으로부터 악성민원에 시달려온 A씨는 지난 5일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이틀뒤 결국 숨졌다.

A씨의 빈소 앞에는 친구들과 A씨가 근무했던 학교 등 지역 교육계에서 보낸 근조화환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A씨의 친척들과 친구들은 빈소 인근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서로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교사의 유족이 9일 A씨의 영정을 들고 A씨가 근무했던 학교에 들어서고 있다. 강정의 기자

이들은 “A씨와는 대학교 동기 사이로 대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 8명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지난달 모임에서도 얼굴을 봤다”라며 “A씨는 모범생이면서 지혜로운 친구였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A씨가 학부모 민원과 관련해서는 지나가는 얘기처럼 언급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지는 친한 친구들도 알지 못했다”라며 “자존감과 교사에 대한 사명감이 너무 커서 친구가 더 많이 힘들어 했을 것 같다. 어찌보면 우리는 운이 좋아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들은 “친구가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추락한 교권의 현실을 알렸다는 게 너무 억울하기만 하다”라며 “현재 교단에서 선생님들이 학생을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러한 희생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교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얼른 마련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교사의 유족이 9일 A씨의 영정을 들고 발인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강정의 기자

장례식장을 떠난 A씨의 운구차는 A씨가 최근까지 근무해왔던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는 지역 교사와 학부모 등 수백명이 A씨의 운구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A씨의 운구차가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불쌍해서 어떡해” “먼저 가버리면 어떡해”라고 절규했다. 운동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한 교사는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라며 “A씨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했던 선생님이었다”라고 말했다.

학교 내에는 A씨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추모 공간에서는 지역 교사와 학부모들이 자녀의 손을 잡은 채 추모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학교 정문 앞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교사들이 ‘위기 교원 보호하시겠다구요? 너무 늦었잖아요’ 등의 피켓을 들고 서있었으며, 교문 앞에는 A씨를 추모하는 근조화환들이 세워져 있었다.

대전 시민이 9일 대전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강정의 기자

대전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20년째 교사로 일해온 A씨는 약 4년간 학부모의 악성민원에 시달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2019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은 바 있다.

교사노조 관계자는 “A씨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 중에 교사 지시를 무시하거나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등의 행동을 하는 학생이 몇명 있었다”면서 “이러한 학생들을 훈육하고 지도했는데, 한 학부모 측이 ‘왜 아이를 망신 주느냐’면서 학교와 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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