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현의 재난백서] 유리창에 가로 막힌 탈출

강세현 2023. 9. 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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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 화재로 10명 숨져
비상 탈출 어려워 큰 피해
비상문 설치와 사용법 안내 의무화 목소리
사고가 난 뒤 불탄 버스 (연합뉴스)

2016년 10월 13일 밤, 대구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버스엔 승객 18명과 여행가이드 1명 그리고 버스 기사가 타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울산의 한 석유화학업체의 퇴직자 부부들로 중국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중국 공항에서 비행기가 늦게 떠오르며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습니다. 오후 10시 11분쯤, 언양분기점을 앞둔 버스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로 옆에 콘크리트로 만든 방호벽을 들이박은 겁니다. 버스는 방호벽과 3차례 충돌하며 100m 넘게 앞으로 나간 뒤에야 멈췄습니다.

급작스러운 사고에 승객들이 혼란에 빠진 순간 버스에서 커다란 불꽃이 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삽시간에 검은 연기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승객들은 문으로 탈출하려고 했지만 문이 방호벽에 막혀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욱한 연기에 비상탈출망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버스 기사와 몇몇 승객들은 소화기로 겨우 버스 창문을 깨고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버스 안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었습니다. 탈출한 승객과 주변 운전자가 이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버스는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결국 불은 소방대원이 출동하고 나서야 꺼졌고 새까맣게 타버린 버스엔 빠져나오지 못한 10명의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사고 모습이 찍힌 CCTV (연합뉴스)
탈출구가 없었다

커다란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나섰습니다. 버스에서 탈출한 버스 기사는 조사 초기 갑자기 바퀴가 터지며 버스를 조종할 수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버스 바퀴는 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얼마 안 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과속에 무리한 끼어들기였습니다. 사고가 난 버스는 1차로로 달리다 울산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분기점을 앞두고 다른 버스 2대 사이로 급하게 끼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버스는 중심을 잃고 방호벽과 부딪했고 충돌 사고는 화재로 이어졌습니다. 바퀴 역시 방화벽에 충돌한 충격으로 터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버스 기사는 재판에 남겨졌고 재판에 선 기사는 방청석에 있는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사는 금고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화재가 커다란 인명 피해로 이어진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탈출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버스가 방호벽과 딱 붙어 멈춘 탓에 승객들은 승강구를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창문을 깨고 탈출하려고 했지만 비상탈출망치가 보이지 않았고 이를 찾지 못한 승객들은 삽시간에 번진 연기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버스에서 탈출한 한 생존자는 "차 환기구와 창문을 깨고 나왔는데 버스 안에 연기가 가득 차 망치를 찾기 어려웠다"며 "사고 직후 버스 안에는 비명과 함께 '비상망치가 어디있느냐'는 외침이 가득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버스 비상문 (현대자동차 유니버스 홈페이지)
법 개정에 나선 정부

버스 화재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법 개정에 나섰습니다. 16인승 이상 승합차에 승강구 외에도 위급 상황 시 탈출할 수 있는 비상문을 만들도록 한 겁니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별표>
비상탈출장치는 승강구를 2개 이상 설치하거나 승강구와 비상문을 각각 1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승강구가 벽이나 다른 차량에 막혀 이용할 수 없는 경우에 다른 방향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개정안의 시행으로 2019년부터 신규 승합차 모델은 비상문을 설치해야만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상문는 위에 보이는 사진처럼 생겼습니다. 비행기에 있는 비상 탈출문과 비슷한데, 평소엔 차량 외벽처럼 생겼지만 비상시 레버를 돌려 문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사용법을 모르는 승객

버스에 비상문이 설치되기 시작한 건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버스가 안전한 건 아닙니다. 버스의 내구 연한은 10년 정도로 아직도 법령이 시행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버스도 도로를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많은 버스에 비상문이 없어 위급 상황 시 비상망치로 창문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위 사고에서 봤던 것처럼 화재가 나면 순식간에 연기가 가득 차기 때문에 작은 망치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치를 표시해주는 야광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해도 자욱한 연기 속에선 잘 안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커튼에 가려 망치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버스를 탈 때 미리 비상망치의 위치를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상문 역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열쇠가 아닙니다. 바로 사용법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가운데 버스 비상문을 여는 방법을 아는 분이 있을까요? 아마 드무실 겁니다. 사실 비상문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비상문 옆엔 사용법이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불이 나고 연기가 가득 차는 순간에 침착하게 사용법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버스기사가 사용법을 안다고 해도, 다쳐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 출발 전 의무적으로 승객들에게 비상문의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주는 안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저도 사용법이 궁금해 유튜브를 찾아봤습니다. 먼저 비상문으로 나갈 수 있도록 비상문 바로 옆에 있는 좌석을 앞으로 넘깁니다. 이후 레버를 가린 박스를 열고 레버를 돌리고 문을 엽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직접 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습니다. 버스를 탔을 때 꼭 승객들에게 사용법을 영상으로 알려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을에 접어들고 날씨가 선선해지며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또 곧 많은 분들이 버스를 타고 고향을 찾는 추석 연휴가 다가오고 있죠. 교통사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옵니다. 앞으로 버스를 탈 때 비상망치 위치와 비상문 사용법을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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