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품은 과일’ 무화과…맛·영양도 품었네 [철들었는과(果)?]
[편집자 주] ‘먹는 방송’의 줄임말인 먹방은 영어로도 먹방(Mukbang)입니다. 한국에서 시작된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먹거리에 진심인 우리지만, 정작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단맛·짠맛·매운맛·기름진맛 등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지는 요즘, 건강한 식재료를 생각합니다. ‘철들었는과(果)?’에서 이맘때 먹으면 좋을 제철과일을 소개합니다.
‘꽃이 피지 않고도 열매를 맺는 이상한 나무 한그루를 보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중국 기행문집 ‘열하일기’에서 무화과를 이렇게 언급한다. 무화과(無花果)를 그대로 풀이하면 ‘꽃이 없는 과일’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 무화과에도 꽃이 있다. 열매 안에 있는 작은 융털들이 그것이다. 무화과 껍질인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비대해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꽃자루 속으로 들어가 열매가 된 것이다. 무화과는 그 자체로 꽃이자 열매인 셈이다. 그래서 시인 김지하는 이렇게 썼다.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 그게 무화과 아닌가’.
‘속꽃 피는’ 무화과를 자세히 알면 ‘속 깊은’ 과일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부드럽고 맛도 좋지만 단백질·비타민·폴리페놀 등 영양소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늦여름부터 11월까지 나오는 무화과는 지금이 제철이다. 그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일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사신을 따라 중국 하북성에 갔던 때가 18세기 무렵이다. 그는 이때 무화과를 처음 봤다. 그 이전엔 무화과가 들어오지 않았던 걸까?
사실 그보다 앞선 시대에 ‘무화과’를 언급한 기록물들이 있다.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무화과를 "맛이 달고 음식을 잘 먹게 하며 설사를 멎게 한다"고 소개했다. 조선 중종 때 1521~1567년간 간행된 ‘식물본초’에선 ‘꽃 없는 과일’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연암이 무화과를 몰랐다고 한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당시 흔한 과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도 무화과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겨울철에도 온난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아열대 과일이라, 재배지역이 한정돼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된다. 무화과가 과수로서 우리나라에 재배되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다. 1960년대 들어서야 제주도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재배됐다.
우리와는 인연이 그리 깊지 않은 과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포도, 석류와 함께 가장 오랜 재배 역사를 가진 과일 중 하나다. 원산지는 오늘날 튀르키예가 위치한 소아시아의 카리카(Carica) 지방이라고 전해진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과일을 따 먹은 뒤 자신들의 치부를 가렸던 나뭇잎도 무화과잎이었다고 알려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무화과는 크게 4가지 계열로 구분된다. ▲건과용으로 적합한 수미르나계, ▲서남아시아 야생종인 카프리계, ▲여름과일(하과) 전용 품종인 산페드로계, 그리고 ▲보통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무화과 대부분은 보통계 품종이다. ‘재래종’으로 불리는 <봉래시>, 일본에서 들여온 <승정도후인>, 청무화과인 <바나네>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은 <승정도후인>이다. <승정도후인>은 1개당 80~100g 정도로 과실이 더 크고 진한 자줏빛이 돈다. <봉래시>는 1개당 무게가 60g 정도이며, <바나네>는 길다란 모양의 계란형으로 껍질이 녹색을 띤다.
우리나라 무화과 최대 주산지는 전남 영암이다. 전체 생산량 기준 70% 정도를 차지한다. 겨울에도 따뜻한 영암은 아열대 과일인 무화과의 재배적지였다. 최근엔 농업기술의 발달과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재배지역이 확대됐다. 충북 충주 등에서도 무화과를 재배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반한 ‘여왕의 과일’…소화촉진·피부미용
① 소화 촉진과 변비개선=무화과를 먹다가 혀가 쓰리거나 얼얼하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무화과 유액에 있는 ‘피신’ 성분 때문이다. 피신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다. 무화과에는 이 같은 성질이 있어 육질이 질긴 고기를 재울 때 사용되기도 한다. 육식을 즐기고 싶지만 소화하기가 버겁다면 무화과를 ‘짝꿍 음식’으로 곁들여 먹는 편이 좋다.
무화과엔 식이섬유도 풍부해 변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제학술지 ‘익스플로어’에 2018년 게재된 이란 연구진의 실험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변비를 동반한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 150명을 대상으로 4개월간 매일 말린 무화과 4개(45g)를 먹게 했다. 분석결과, 무화과 섭취 그룹은 미섭취 그룹에 비해 통증 빈도, 복부 팽만감, 배변 빈도 등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상이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도 유사한 연구결과가 있다. 전북대학교 연구진은 무화과 추출물의 효능을 알아보기 위해 40명에게 8주간 매일 약 300g 무화과 추출물을 주고 대조군과 비교했다. 그 결과, 무화과 추출물을 섭취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변비 증상이 현저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16년 ‘아시아 태평양 임상 영양 저널’에 실렸다.
② 고혈압 예방=무화과를 꾸준히 먹으면 혈압과 혈중지방 수치를 개선하고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칼슘·칼륨 성분 등이 혈중 노폐물을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이다. 국가표준식품성분표(2021년)에 따르면 무화과 생것 100g 기준 칼슘 함량은 36~41㎎, 칼륨은 176㎎ 수준이다. 실제 2016년 국제학술지 '약학생물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무화과 추출물은 고혈압이 있는 쥐의 혈압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화과 잎도 버릴 게 없다. 2017년 국제학술지 ‘약용식물 요법 연구(Phytotherapy Research)’에선 비만과 고지혈증이 있는 수컷 쥐를 대상으로 6주간 무화과 잎 추출물을 먹인 결과, 총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개선됐다. ‘좋은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고밀도(HDL) 콜레스테롤 수치도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③ 혈당조절=당뇨걱정을 덜 수 있는 달달한 간식을 먹고 싶다면 무화과를 가까이 해보자. 꾸준히 먹으면 오히려 당뇨를 예방할 수 있다. 2019년 국제학술지 ‘영양소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에선 무화과 열매 추출물을 다량 함유한 음료가 그렇지 않은 음료보다 혈당 지수(GI)가 낮아 혈당 수치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페인 연구진도 1998년 '국제당뇨병연맹학술지'에 유사한 연구결과를 실었다. 1형 당뇨병 환자 10명에게 아침식사 때마다 무화과 잎을 우려낸 차를 마시게 한 결과, 그 전과 비교했을 때 한달치 인슐린 투여량이 12% 감소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과식은 금물이다. 모든 과일이 그렇듯 포도당과 과당이 혈당수치를 높일 수 있다. 무화과 생것 100g 기준으로 포도당이 5.6g, 과당이 5.2 g 이 함유돼 있다. 당뇨병이 있거나 이미 혈당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④피부건강=노화 방지에 탁월한 무화과는 클레오파트라가 즐겨먹었다고 전해져 ‘여왕의 과일’이라고 불린다. 무화과에 풍부한 폴리페놀이 강한 항산화 작용으로 피부노화를 막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폴리페놀 함량은 품종마다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보건환경연구원 식품약품분석과 연구진이 2013년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에 발표한 분석결과에 따르면 <승정도후인>이 198.91~261.64 ㎎/㎏, <봉래시>가 169.90~174.33 ㎎/㎏, <바나네>는 211.07 ㎎/㎏ 수준이다.
알레르기성 피부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무화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17년 국제학술지 ‘대체의학회지(Complementary Therapies in Medicine)’에 따르면 피부염이 있는 어린이 45명에게 무화과 열매 추출물로 만든 크림을 2주간 매일 2회 바르게 한 결과, 표준 치료법인 '하이드로코르티손' 성분이 든 크림보다 피부염 증상을 더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입요령과 보관법
무화과는 잘 익을수록 향기가 진하다. 붉은색이 전체적으로 균일한 것을 고르는 편이 좋다. 표면에 상처가 없이 둥글고 물방울 모양으로 잘 부풀어 오른 것이 좋다. 특히 꼭지 반대쪽이 꽃잎 모양으로 선명하게 갈라지고, 진한 붉은색을 보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청무화과인 <바나네> 는 완전히 익더라도 연녹색을 띠기 때문에 품종을 잘 알고 골라야 한다.
무화과는 저장성이 좋은 과일은 아니다. 껍질이 얇고 과육이 쉽게 물러져 장기간 보관하는 것이 어렵다. 만졌을 때 너무 말랑하지 않고 어느 정도 단단한 것을 고르도록 하자. 가급적이면 구입 후에 바로 먹는 편이 좋다. 일반적으로 최대 5일까지 보관할 수 있다. 보관할 땐 키친타월로 감싼 후 지퍼백 또는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고(1∼5℃)에 둔다.
무화과는 껍질째 먹어도 되는 과일이다. 약제를 치지 않고 재배하기 때문에 꼼꼼하게 세척하기만 한다면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얼려서 먹는 것도 방법이다. 식감이 샤베트처럼 변해 디저트나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이런 사람’은 조심
무화과를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설사로 고생할 수 있어 과식하지 않도록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
혈액응고를 막는 약제인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다면 섭취에 주의가 필요하다. 와파린은 혈전과 색전 형성을 방지하는 데 사용되는 약제인데 뇌졸중·심근경색·심정맥혈전증 환자 등이 복용한다. 무화과에 있는 비타민K는 와파린과 같은 혈액 희석제의 항응고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
무화과에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피신은 소화를 돕지만, 많이 먹으면 입안이 얼얼할 수도 있다. 입이 잘 허는 사람들도 섭취량을 조절하는 편이 좋다. 무화과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과일을 먹었을 때 재채기나 기침이 나오거나 두드러기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먹는 것을 바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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