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현의 人터뷰] 8. 시골 어르신들의 건강 책임지는 우리동네 주치의 ‘창촌의원’
환자들한테 좋은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아
정확한 진료로 환자들의 골든타임 확보
환자들의 속사정까지 챙기는 정이 넘치는 동네 사랑방
“환자들한테 좋은 일이잖아.”
홍천군은 군민이 지역내 병원을 이용하면 몇 가지 진료에 한해 일부 금액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운영하는데 병원입장에선 처리해야 할 서류들도 많고, 여간 귀찮은 일임에도 윤성호 원장은 나서서 그 제도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귀찮게 굳이 그 일까지 신경을 쓰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환자들한테 좋은 일이잖아.”
홍천 내면 작은마을 창촌에 시골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우리동네 주치의 윤성호(57) 의사, 김미선(56) 간호사를 만났다.
둘은 부부다. 인근에 스키장이 생긴다는 풍문을 듣고, 1995년 홍천군 내면 창촌에 자리잡았다.
스키장이 들어서면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고, 근처에 병원이 꼭 필요할 거란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이듬해 모두가 알다시피 IMF가 터졌고, 스키장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평창올림픽 당시 슬로프 몇 개를 인근에 설치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상지로 거론되던 부지에 세계적인 보호림이 있어 이 역시 무산됐다.
속초가 고향인 윤성호(57) 의사는 원광대 의대를 졸업 후 속초로 돌아와 한 병원에서 일하다가 30대 초반 지금의 배우자인 김미선(56) 간호사를 만났다.
결혼 후 홍천으로 이사와 지금의 창촌의원을 열었다. 자리잡을 생각으로 건물을 새로 짓고, 꽤 규모 있는 병원으로 세웠다. 지금도 의원이라고 하기엔 꽤 큰 80여평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인근에 병원이라곤 창촌의원 뿐이라 산모로부터 아이를 직접 받기도 하고, 교통사고 환자 응급처지 후 큰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내면 창촌, 인근 마을의 1차 진료를 다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는 수술보단 진료를 위주로 약 처방을 하고 있다. 창촌의원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운영한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들 걱정에 쉬는 날 없이 운영했다.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마다않고 병원 문을 열었다. 작은 마을에 병원이라곤 하나뿐이니 알게 모르게 책임감이 생겨서였다. 그러다 윤 원장의 건강이 악화돼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과부하가 걸려 몸을 돌보기 위해 지금은 시간을 정해 운영하고 있다.
“시내까지 갈 수 없는 시골 곳곳에서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헛걸음 치면 얼마나 힘들까 그 생각에 병원 문을 못 닫았아요.”
김미선 간호사의 마을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이다. 실제로 취재차 약 1시간 정도 머무는 동안 병원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번에 옥수수 농사는 잘 됐어?”, “아이 참 그 병은 좀 쉬어야 낫는다니까”, “맨날 지어가는 약? 몸은 좀 어떠셔?” 등을 ‘000아줌마, 000아저씨’ 이렇게 살갑게 이름을 불러가며 챙긴다. 이미 찾아오는 환자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이다.
창촌의원은 인근지역 사망자의 검안 역시 담당하고 있다. 독거 노인들이 많은데 홀로 집에서 돌아가시는 경우 다른 병원에서는 자신들의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인을 잘 모르지만 창촌의원은 의원 역할을 넘어 동네 사랑방으로 주민들의 병력, 속 사정 등을 더 자세히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배경지식으로 유가족이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돕는다. 윤 원장은 의사로써 힘든 일이지만 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창촌의원 의사라 사명감을 갖고 하고 있다. 심지어 홍천 서석면까지 요청을 받고, 출장 검안을 나갈 정도다.
처음엔 인터뷰를 고사할 정도로 말수가 적고, 조용한 윤 원장은 환자가 찾아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인터뷰 하는 동안 10여명의 환자들이 찾아왔는데 ‘00아저씨, 00아줌마’라고 살갑게 부르며 근황토크를 시전한다. 윤 원장은 수다쟁이가 돼 웃고 떠들면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진찰을 마친다.
윤 원장의 진찰은 정확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여기서 수술이나 시술은 이제 하지 않지만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료로 ‘어느 병원으로 가라, 어느 검사를 해봐라’라고 조언해주면 그 조언이 정확이 들어맞아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 조언 덕에 병이 나은 환자들은 고맙다며 다시 창촌의원을 찾는다.
도로가 좋지 않던 시절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많이 났는데 한번은 교통사고 환자가 찾아왔고, 겉으로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말을 할 수록 상태가 온전치 못한 것을 알아챈 윤 원장은 비장파열이 의심된다며 빨리 큰 병원으로 이송했다. 실제로 비장파열이었고, 윤 원장의 정확한 진단 덕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그 환자는 살 수 있었다.
기계를 신뢰하기보다 정확한 촉진 등 의술을 단련해 온 윤원장은 창촌의원이 위치한 시골 마을에 꼭 필요한 의사다. 좋은 의료기기, 첨단 장비는 없지만 정확한 진단으로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김 간호사는 배우자인 윤원장의 말을 신뢰하는 환자들을 볼 때 이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인근 초중고 학생, 마을 어르신, 관광객 등 창촌의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진료를 보고 간다. 그만큼 병원은 어디든 꼭 필요한 곳이다. 윤 원장은 “월세가 아니고, 병원을 직접 지어 들어온거라 어디 나가지도 못한다”며 우스개 소리로 말하지만, 실은 홍천 내면 작은 시골마을 창촌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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