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생생한…찬란한 ‘금빛 낚기’의 기억 [ESC]
깨끗한 강에 사는 민물고기
남한강서 첫 도전…낚시 성공
힘겨루기 끝 다리 풀려 ‘털썩’
사위가 적막하다. 들리는 거라곤 오직 풀벌레 소리와 흐르는 물소리뿐. 허리춤까지 올라온 강물이 차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이 어두운 밤에 흐르는 강물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둠에 눈이 익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듬성듬성 박힌 호박돌. 강변에 앉아 있는 왜가리. 산그늘마다 작은 새들인지 다람쥐인지 사람만 없었을 뿐 수많은 생명들이 속닥거리며 살고 있었다. 그 때 조용히 반딧불이들이 수면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늘엔 달무리가 지고 있었고, 강에는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우리에게 낚시를 가르쳐준 펜션 사장님. 그렇게 세명만 있었다. 나는 그 날의 풍경이 잘 안 잊힌다. 10여년 전 이맘때, 충북 단양 가곡면 남한강 여울. 대략 밤 9시가 넘었던 시각.
쏘가리 있는 곳 찾아가는 것부터
사람들은 보통 낚시가 굉장히 한가로운 취미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찌만 바라보고 미동 없이 앉아있어서 그렇지, 낚시꾼은 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취미 중에 굳이 비유하자면 체스와 비슷할지도. 물고기와 사람 간의 두뇌 싸움. 영장류와 어류의 두뇌 싸움이라니 인간에게 너무 유리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대부분 인간이 지는 싸움이다. 자연과 싸워서 이긴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경험한 어류 중 가장 어려운 상대는 쏘가리였다. 금린어(금빛 비늘의 물고기), 민물고기의 여왕이라고 칭하는 쏘가리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만 존재하는 아주 귀한 어종이다. 낮에는 돌 틈에서 쉬고, 밤에 나와 먹이를 구한다. 물살이 만드는 풍부한 산소가 필요하고, 먹이가 될 작은 물고기들이 풍부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어야 쏘가리가 많다. 그래서 쏘가리가 주로 잡히는 강들은 아름답다. 섬진강, 경호강, 금강, 남한강, 임진강과 한탄강 수계 중 유속이 빠른 여울과, 유속이 느린 소가 많이 발달한 상류의 숨겨진 비경 속으로 들어가서 낚시를 준비해야 한다.
쏘가리 낚시는 더위가 한풀 꺾인 늦여름부터 동면에 들어가기 전인 11월까지가 절정이다. 야행성이기 때문에 해거름의 아름다운 시간부터 시작해야 한다. 강물 속 듬성듬성 박힌 호박돌 사이에서 어디에 쏘가리들이 은신해 있을지 살핀다. 이 과정을 통해 쏘가리가 숨어 있을 물속의 지형을 상상한다. 쏘가리의 서식 환경을 찾는 일부터가 평소에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많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세차게 흐르는 아름다운 강의 한가운데 서서 풍경을 보고 있으면 물고기는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이게 이 어려운 낚시를 하는 첫번째 이유이다.
쏘가리가 있을 법한 곳에 근접했다면 진짜 물고기와 닮은 인조 미끼(루어)로 쏘가리를 꾀어내야 한다. 강물 속에서 그 목표를 이뤘을 때 느껴지는 단 몇 초의 쾌감이란…. 몇 년 동안 낚시 친구들에게 자랑할 그 순간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과정 전체를 낚시의 재미로 보는 게 맞다. 나는 쏘가리 낚시를 배운 첫날 쏘가리를 잡았는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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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의 말은 대부분 거짓말
남한강변 펜션 사장님은 1시간 정도 우리에게 낚시를 가르쳐줬고 다른 손님들을 살피러 펜션으로 들어가셨다. 풍경이 아름답긴 했지만, 그것도 오래 보면 지겨워질 때쯤 친구가 투덜대기 시작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하염없이 루어를 던지고 있는데, 고기라고는 한 마리도 안 잡히는 스트레스의 순간. “야 방에 들어가서 삼겹살을 굽든지, 텔레비전을 보든지 하자. 이게 뭐하는 짓이고!” 사실 낚시는 친구가 더 잘했는데, 친구는 물도 허리밖에 오지 않고, 맑디맑은 이 얕은 강에 그렇게 커다란 물고기가 산다는 걸 믿지 못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아니, 난 들어간다.” 친구는 급기야 숙소로 돌아갔고, 진짜 강에는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그제야 별의별 무서운 생각이 다 들었다. 물안개가 살짝 낀 아름답고 서정적인 풍경은 어느새 스산하고 음침한 풍경으로 변해 있었고, 건너편에서 우는 왜가리 소리는 왜 그렇게 무서운지. 나무가 푸드덕 흔들리면 멧돼지가 강을 건너 나에게 뛰어오는 게 아닌지. 온 신경이 소리 하나에도 집중되고,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눈길이 가던 그 순간. 무언가 나의 루어를 콱 물었다.
붕어처럼 살짝살짝 간을 보다가 쏘옥 집어넣는 우아한 입질이 아니고, 볼락이나 꺽지처럼 작은 어체의 탈탈거리는 손맛이 아니라, 분명히 내 루어를 커다란 입으로 집어삼킨 것 같은 강렬한 느낌. 쏘가리였다. 극한의 긴장감과 놓치면 안 된다는 사냥 본능이 온몸을 지배하는 아주 짧은 순간. 급류를 타고 이리저리 힘을 쓰는 쏘가리는 물의 저항 때문에 훨씬 더 큰 괴어를 상상하게 했다. 마침내 힘겨루기가 끝나자 검은 물속에서 희뿌옇게 떠오르는 황금색 어체. 나는 고기를 들고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아마도 평생 기억될 강렬한 기억. 이전에도 이후에도 낚시를 꽤 다녔지만, 이렇게까지 긴장했던 순간은 아직 없다.
낚시꾼의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월척을 낚았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물고기들은 대부분 그들의 허풍보다 작다. 내 말도 거짓말이다. 아무리 글로 쓴들 그때 그 순간을 생생하게 표현할 실력이 내겐 없다. 고기가 잘 잡히지도 않는 낚시. 그럼에도 자다가 생각나는 낚시. 혹시 내 거짓말에 속아서 ‘쏘가리 낚시’를 검색해보는 누군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낚였다’. 그러니 이 계절이 지나기 전에 한번 떠나 보시라.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평생에 남을 강렬한 추억이 당신에게 생길지도.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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