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처럼 사장님을 '사장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그들'
[ 유성욱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은 현재 협소하게 정의되어 있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현실에 맞게끔 넓히고, 진짜 사장인 원청의 교섭 의무를 지웁니다.(2조) 더불어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손해배상청구를 금지(3조)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하지만 지난 8월 21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동조합은 고용과 임금을 넘어 산재 은폐를 막고, 안전보건 조치를 요구하며, 예방과 보상 측면에서 노동환경 개선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 사례를 통해 노조법 2조, 3조 개정의 의미와 필요성을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노동자들이 일하다 현장에서 죽어 나가고 있고, 지금도 병상에서 생존을 위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일하다가 죽거나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은 노동자 개인의 문제와 책임이 아니라 기업의 문제이고 책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상자가 발생하는 경우, 직업병이 발생하는 경우로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제정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온전하게 보장할 수 없다.
노동자 건강권이란 노동자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노동자 건강권은 노동권의 일부로서, 노동자가 적절한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안전한 노동환경, 의료서비스 등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제대로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 건강권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받는 권리로서, 노동자가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파견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근로계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함으로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가입률이 낮아 온전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할 시간, 식사할 시간, 치료를 받을 시간조차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의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파견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다. 더욱이 원청기업은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실질적인 사용자이면서 해당 노동자들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20년~2021년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급작스럽게 늘어난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마저 줄이며 일하던 택배노동자 26명이 과로를 못 이겨 현장을 떠나게 되었던 안타까운 사고들이 줄지어 발생했다. 어떤 택배사도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며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하다 과로에 의해 숨진 사인이 명백함에도 산재적용제외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산재 혜택마저 못 받은 고인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파견노동자들은 국가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어떠한 혜택이나 보장을 받을 수 없는 구조적 상황에 처해있다. 심지어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라는 명목으로 4대보험에서도 말 그대로 특수하게 적용되어 해당 노동자가 절반을 부담하거나 본인이 전액부담하는 등 사회보장제도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있다.
이 모든 건 애시당초 사업주가 져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고, 자본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특수고용 구조, 플랫폼 구조, 하청구조, 파견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서 빚어진 왜곡된 노동구조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이 "직접계약 관계"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이고 있다. 마치 홍길동이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이들은 해당 노동자들에게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노조법 2조는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하여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파견노동자들도 노동3권의 권리를 회복하여 원청에 대해 교섭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노조법 2조, 3조 개정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교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실질적 사용자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해당 노동자들은 대부분 원청과 하청의 이중구조에 놓여 있고, 하청은 실질적 권한이 없어 이러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포함한 노동조건 등을 개선할 능력도, 여력도 없는 상태이다.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은 하청 뒤에 숨어 실질적 경제적인 이익을 향유하면서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대표격인 택배노동자들은 지난 2020년 8월 원청인 cj대한통운에 ‘택배노동자 현장개선을 위한 요구안’을 전달하고 단체교섭을 요청하였지만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cj대한통운은 이를 거부하였고, 택배노조에서는 중앙노동위에 ‘교섭해태에 의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였고, 중노위에서는 위와 같은 사실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cj대한통운은 중노위의 위와 같은 결정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 하였지만 2023. 1. 12일에 서울행정법원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집배점 택배기사와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택배노동자들은 아직도 여전히 주당 70시간을 넘는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열악한 택배터미널의 환경으로 인해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등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권과 권리는 전혀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이는 오로지 원청과의 단체교섭을 통해서 만이 개선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택배노동자 사례에서 봤듯이 수많은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파견노동자들은 위와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노조법 2조,3조 개정은 cj대한통운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별기업과 해당 노동자들의 문제를 넘어 특수고용노동의 구조적인 문제이고, 나아가 원하청 구조에 놓여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문제이다. 노조법 2조,3조 개정은 해당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조할 권리를 보장 하고 실질적 사용자의 책임을 통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포함한 근로조건 개선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노조법 2조,3조 개정이 조속히 이루워져 전국의 200만 특수고용노동자, 220만 플랫폼노동자,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 5만 명의 파견노동자들도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권리를 회복하는게 반드시 필요하다.
[ 유성욱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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