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70년, 볼 수 없는 가족 이은 건 사랑이었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신접 살림을 차렸던 원산을 떠나 피란길에 오른 이중섭(1916.9.16.~1956.9.6.)과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 1921.10.12.~2022.8.13.). 제주도 남쪽 서귀포는 두 아들을 둔 이들 가족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이중섭의 가족은 1951년부터 1년 남짓,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지난 2019년 1월, 오누키 토모코(大貫智子) 일본 마이니치 신문(每日新聞) 당시 서울특파원은 이중섭과 마사코의 흔적을 찾아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2016년부터 이중섭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그에게 있어 제주에서의 두 번째 현장 취재였습니다.
한라산을 넘어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서도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날,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아버지와 자녀들로 보이는 일가족이 갯바위에서 돌멩이를 쥐고 바다로 힘껏 던지며 물수제비를 만드는 모습이 오누키 기자의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전은자 학예사(이중섭미술관)의 안내를 받아 미끌미끌한 갯바위를 총총 걸어, 돌 틈에서 팔딱거리는 조그마한 게를 직접 찾아다니며 그는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게와 어린이'가 등장하는 따스한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마사코 여사와 이중섭 화가도, 이곳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오누키 기자는 2년 전 일본에서 출간한 「사랑을 그린 사람(愛を描いたひと)」의 국내 번역판 「이중섭, 그 사람」(혜화1117)의 프롤로그 첫 사진으로 이 장면을 고른 이유를 이 같이 설명했습니다.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천재 화가 이중섭. 그러나 일본에 남았던 그의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이중섭' 이름만 대면 남녀노소 대부분이 아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 유학하고 일본인 아내를 둔 '화가 이중섭'에 대해선 일본에서도 거의 알지 못합니다.
2차 세계대전과 식민지배 시절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한 조선인 남자와 일본인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기뢰 공격에 배 침몰이 잇따르는 바다를 목숨 걸고 건너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평온한 삶은 잠시, 한국에서 6·25 전란까지 터지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피란민 생활을 하다가 끝내 생활고 등으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뒤 이산 가족이 되어버린 이들. 가족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당장에라도 보고 싶고, 꼭 끌어안아 볼을 맞대어 비비고 싶은' 절절한 그리움을 글과 그림으로 바다 건너 주고받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가족의 삶에 한국에서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어느 일본인 기자는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2016년, 서울에서 열린 '이중섭 특별전'을 본 것이 계기였습니다.
■ 이중섭 가족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곳, 제주에서 시작된 취재
장기간 한일 양국의 정치·외교 분야를 주로 취재하며 피로감을 느끼던 차, 오누키 기자는 그길로 이중섭의 자취를 찾아 나섰습니다. 주한일본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당시 도쿄에서 지내고 있던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를 만나 인터뷰했고, 제주에서 취재한 결과물 등을 한데 묶어 이중섭과 마사코 부부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냈습니다. 이 보도를 본 일본 출판사 쇼가쿠칸(小学館) 편집자가 오누키 기자에게 연락해왔고, 본격적인 이중섭 취재와 책 집필이 시작됐습니다.
오누키 토모코 기자는 2016년부터 한국과 일본 각지를 오가며 현장을 훑고, 한일 양국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엮은 원고는 일본 3대 출판사로 꼽히는 쇼가쿠칸(小学館)에서 주최하는 논픽션 대상을 받는 등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어 지난 2021년 6월 25일, 일본 최초로 이중섭을 다룬 평전으로 다듬어져 세상에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출간된 단행본에 붙여진 제목은 '사랑을 그린 사람'. 출간 이후 "일본에서도 이중섭의 작품 전시회를 보고 싶다"는 현지 독자들의 반응이 줄이었습니다.
이 책의 국내 번역판은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달 13일 첫선을 보였습니다. 번역본 제목은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이중섭의 이름을 살려 '이중섭, 그 사람'으로 정해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일본에서의 출간일은 6·25 전쟁이 발발한 날이었고, 한국판 출간일은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숨을 거둔 지 꼭 1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 '이중섭 부부 이야기' 책 낸 日 마이니치 신문 전 서울특파원
지난 7일 오전 제주시 이도이동 제주도서관에서 오누키 토모코 기자가 제주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저서 '이중섭, 그 사람'을 다룬, 제주에서 열린 첫 강연이었습니다. 오누키 기자는 이날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독자와의 만남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이번 취재와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오누키 기자의 책은 이중섭의 작품 세계 등 미술사적인 부분을 다루기보다는, 이중섭과 그의 아내 마사코 여사 등 인물에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자인 그는 책에서도 스스로 "학창시절부터 미술에는 젬병"이라고 밝혀두기도 했습니다.
그는 "집필 준비는 한국의 대선(2017년 5월)이 끝나고 나서야 시작했다. 한국의 역동적인 정치 상황 때문이었다"며 "이 스토리(이중섭 부부의 이야기)를 일본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는 출판사 편집자님의 강력한 의지 덕분에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막상 취재하려니 막막함이 앞섰습니다. "당시에는 마사코 여사가 살아계셨지만, 그래도 이중섭 화가 본인을 인터뷰할 수가 없었고요. 여사도 이미 나이가 드셨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당시를 아시는 분들이 다 세상을 떠나신 상황이었죠."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기자에게 답은 일단 '현장'이었습니다. "우선은 그분들이 사셨던 곳을 가보자. 일단 제가 찾을 수 있는 건 무조건 다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제주도부터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 2016년·2019년 두 차례 제주도 취재…부산·통영·서울·도쿄까지
그는 현장 취재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친 제주 취재에선 이중섭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전은자 학예연구사의 안내를 받아, 제주에서 지냈던 이중섭 가족의 발자취를 좇았습니다.
부산에서도 한 교수의 도움으로 이중섭 가족이 피란 생활을 했던 부산 동구 일대를 둘러봤고, 서울에서 5시간 버스를 타고 찾아간 경남 통영에선 이중섭이 잠깐 지냈다고 알려진 현장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는 "통영은 이중섭 화가를 대표하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고 알려진 굉장히 유명한 지역이어서 '어떤 것이 있을까' 기대감을 안고 간 곳이었는데, 생각보다도 이중섭의 발자취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웠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렇게 현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한국에 남아있는 이중섭 가족의 자취만으로는 책을 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화가 이중섭과 그의 작품은 이미 한국에선 많이 알려져 있었죠. 한국에서 알려진 걸 바탕으로 책을 쓴다고 해도, 일본에선 전혀 '화가 이중섭'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의미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새로 취재하고 발굴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오누키 기자가 다음 취재 장소로 떠올린 곳은 이중섭과 마사코가 미술과 선후배로 처음 만난 일본 도쿄의 사립교육기관 '문화학원'이었습니다.
오누키 기자는 2018년 3월, 서울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문화학원 역시 그해 3월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귀국과 동시에 안타깝게도 문화학원이 문을 닫아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학교가 그대로 문을 열고 있었더라면 여러 가지 자료도 많이 남아 있을 텐데 하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문화학원에 이중섭 화가와 이남덕 여사의 재학 당시 기록이 조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저보다 먼저 일본에서 이중섭 연구를 하셨던 어느 연구자분이 나중에 제게 그렇게 알려주셨죠. 저는 때가 잘 안 맞았던 거고요."
오누키 기자에 따르면 옛 문화학원 건물은 현재 한 방송사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 시작 전인 1937년에 지어진 이 서양식 건축물은 현재도 '문화학원'이라 새겨진 간판 등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마사코가 쓴 '일본어 편지' 꼼꼼히 읽고 분석…취재에 큰 도움"
발품을 팔아가며 현장을 가도, 1950년대 당시를 알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미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는 게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고심이 깊어지던 오누키 기자의 머릿속을 스친 건 '일본어로 쓰인 편지'였습니다.
"(이중섭에 대해) 한국에서 나온 책이 다루지 않았던 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떠올렸어요. 편지글 대부분이 일본어였기 때문에 '혹시 일본어로 쓰인 편지를 꼼꼼히 다 읽어보면, 뭔가 새롭게 알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편지를 많이 찾게 됐습니다."
이중섭과 그 가족이 주고받은 것으로 잘 알려진 편지는 대부분 이중섭이 그려 보낸 '편지화'입니다. 그러나 마사코 여사 역시 한국에 있을 땐 도쿄 친정에, 일본으로 돌아갔을 땐 한국에 있던 남편에게 편지 여러 장을 보냈습니다.
오누키 기자는 마사코 여사가 부친 이 편지들을 꼼꼼히 읽고 분석해, 그 내용을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둘째 아들 태성 씨가 집에 보관되어 있던 편지 다수를 제공했습니다.
지난 2019년 11월에는 이중섭이 아내 마사코에게 보낸 '한글 편지'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마사코의 침실 벽장을 정리하던 태성 씨가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오누키 기자는 새롭게 발견된 편지 내용도 책 말미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렇게 주고받은 편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중섭의 편지에 '그림'이 많이 그려지기 시작한 시기가 대체로 '후반기'였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첫 '전문(全文) 한글 편지'의 존재에 대해 오누키 기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이남덕 여사께 제가 여러 번 여쭤봤을 때도 (부부가) 의사소통을 일본어로 다 하셨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었어요. 물론, 마사코 여사도 나중에 한국말을 공부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이렇게 이중섭 화가가 마사코 여사에게 한글로 편지를 썼다는 걸 보면, 여사도 어느 정도 한국말로도 대화하셨던 걸까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 함께 산 7년, 홀로 버틴 70년…같은 여성으로서 궁금했던 '인간 이남덕'
이중섭과 마사코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오누키 기자를 내내 따라다니는 물음표가 있었습니다.
부친이 숨지며 1952년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 마사코는 1953년 7월, 도쿄로 찾아온 남편 이중섭과 일주일간 함께 지낸 것을 마지막으로 영영 이별하게 됩니다. 그 사이 이중섭은 1956년 요절했고, 마사코는 일본에서 재혼하지 않은 채 두 아들과 지냈습니다.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는 지난해 8월, 10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겨우 7년, 홀로 버틴 세월이 70년이었습니다.
"마사코 여사가 이중섭을 떠나보내신 건, 여사가 34살 때의 일이었어요. 그때도 '재혼할 생각 하나도 없으셨다'고 여러 차례 제게도 말씀을 해 주셨고요. '그렇게 오랫동안,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살아오셨을까' 저도 같은 여성으로서 궁금했습니다."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속 이중섭과 마사코는 겨우 30대. 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 한가운데서 한·일 국교 단절로 왕래조차 자유롭지 않던 두 나라 사이에서 남편과 생이별을 한 데다가, 일찍 사별까지 겪었습니다. 오누키 기자는 한 사람의 인간, 또 여성으로서 마사코가 이후 40대, 50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사코 여사의 중·노년기를) 함께 지내셨던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해서 일본에서 많은 접촉을 시도해봤는데, 대부분 이미 세상을 떠나셨던 상황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일기 같은 게 남아있나 봤는데, 모친이 일기를 쓰시는 분도 아니셨다고 (둘째 아들) 태성 씨가 저한테 알려주셨고요. 누구나 (내적) 갈등이 있을 것 같아서 알아보고 싶었는데, 그건 어려웠습니다."
대신 오누키 기자는 한국의 미술사학자가 수집한 마사코 여사의 1980년대 미술 잡지 인터뷰 등 옛 자료를 제공받아, 취재에 참조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1986년에 응하셨던 (미술 잡지와의) 인터뷰 때와 2016년 제가 처음 인터뷰를 할 때 이남덕 여사가 똑같이 말씀하셨던 게 있습니다. 바로 이중섭과의 첫 만남입니다. '이중섭이 굉장히 잘생겼었고, 여학생한테 인기도 있었고, 노래도 잘했다'면서 정말 행복하게 기억을 떠올려주셨는데, 예전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말씀하셨더라고요. 정말 그때, 20대 때 만났던 이중섭과의 기억을 평생 가슴 속에 담고 그렇게 사시는구나. '나도 그런 행복한 추억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이남덕 여사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80년의 사랑'"
화가 이중섭과 이남덕 여사를 수년간 취재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오누키 토모코 기자. 그는 "이남덕 여사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80년의 사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20대 때 만나서 작년 8월 13일 돌아가실 때까지 80년 동안 쭉 한 남자만을 사랑하시고, 정말 영화 같은 삶을 사셨죠. 세 차례 인터뷰하면서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남덕 여사의 사랑이) 거짓이 아니고 진심이라는 것을요. 사는 동안 많은 갈등과 어려움, 고민도 있으셨을 테지만 평생 마음속에 이중섭 화가가 계시고, 뭔가 어려움이 있을 때는 아마 속으로 (남편과) 서로 대화를 나누시면서 사셨던 분이 아니셨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도쿄와 한국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서 지내면서도 이남덕 여사가 사랑과 믿음으로 뒷받침했기에, 이중섭 화가 역시 이처럼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2년 전 일본에서 처음 이중섭을 다루는 책으로서 세상에 나온 책은 현지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양국 역사 속에서 피어난 드라마 같은 한 가족의 이야기에 '금세 끌려들었다', '책에 실린 이중섭의 작품을 언젠가 일본에서도 만나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서평을 온라인 공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중섭과 마사코의 이야기는 앞서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연극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연극에선 마사코의 부모님이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하는 것으로 연출됐는데, 마사코 여사는 이에 대해 "100% 틀린 것"이라며 왜곡된 내용이 사실인 양 알려지고 있는 것을 평생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제 책은 마사코의 부모가 언제 공습을 당할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딸이 조선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도쿄를 떠나는 것을 응원하면서 어렵게 열차표까지 구해주는 등, 반대는커녕 전적으로 딸의 선택을 지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흔쾌히' 딸을 조선으로 보내준 마사코의 부친도 다만, 걱정하는 딱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딸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걸렸던 겁니다.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한 마디를 남기고 딸을 배웅합니다. "화가이기 때문에, 잘 살 수 있겠느냐. 만약에 그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면, 언제든지 돌아오렴."
오누키 기자는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봐도,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나, 저 역시 부모로서 생각해본다"면서 "그런데도 이남덕 여사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만나는데, 뭐.' 이런 느낌이었다"며 웃었습니다.
한일 양국의 복잡다단한 근현대사 역사 위에 걸쳐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 코로나19로 한때 단절을 겪기도 했던 가깝고도 먼 나라에 차례로 소개된 이 책이, 한국과 일본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했으면 하는지 물었습니다.
"한일간에 어려운 역사도 있었고, 지금도 가끔씩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죠. 하지만 '삶과 삶이, 마음이 통할 땐 국적·역사·정치 이런 건 전혀 상관이 없다.' 이런 걸 양국 모든 분에게 조금이라도 전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오누키 토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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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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