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의 ‘질 수 없는 싸움’…법 위반 차고 넘친다 [논썰]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죄를 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구속영장이 지난주 기각됐죠. 이번주에도 상부의 외압 의혹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특검범이 발의되는 등 숨가쁜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군검찰 문서에 적시된 “혐의 특정 말라” 장관 지시
특히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수사개입 의혹이 한층 짙어졌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군검찰이 작성한 박 대령의 구속영장청구서에 ‘혐의를 특정하지 말라’는 장관 지시사항이 적시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해병대 부사령관이 7월31일 오후 국방부 회의에 참석해 장관 지시를 받은 뒤 해병대사령부로 돌아와 사령관과 박 대령 등에게 장관 지시 사항을 전달했는데, 지시 사항 중에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주면 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종섭 장관은 ‘혐의를 빼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종섭 장관 “혐의자를 포함시키지 않고 (경찰에 자료를)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9월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이 말이 거짓으로 드러난 셈입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당시 국방부 회의에서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법리적으로 ‘범죄 혐의가 불명확한 경우 범죄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시하여 이첩이 가능하다’고 보고했고, 이 장관이 해당 내용을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설명해주라고 (부사령관에게) 지시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국방부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의혹을 해소되지 않습니다. 박 대령은 이미 사단장 등 8명의 혐의를 특정해 보고하고 결재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박 대령에게 갑자기 ‘혐의를 빼고 이첩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해주라는 것 자체가 ‘혐의를 빼라’는 지시와 뭐가 다를까요.
윤 일병, 이예람 중사…억울한 죽음 벌써 잊었나
이 장관은 ‘법리 재검토 지시’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수사 개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군사법원법 제228조 3항은 ‘군인 사망 사건과 관련된 범죄를 인지한 경우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지난 2021년 신설된 조항입니다. 그해, 군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2차 가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예람 중사 사건을 선명히 기억하실 겁니다. 또 선임병들의 지속적 가혹행위로 숨진 2014년 윤 일병 사건도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군은 “윤 일병이 음식을 먹다 기도가 막혀 사망했다”고 발표했었지요. 이처럼 군대 내 억울한 죽음이 상부의 은폐와 왜곡으로 묻혀버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을 개정했던 것입니다. 상부가 수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취지입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행위는 이같은 군사법원법과 어긋납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지적이 나왔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관이든 부대장이든 관여하지 마라, 라고 판단하고 정리하고 만든 조문입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수사에 대해서 장관이 구체적으로 관여는 하지 않지 않습니까.”
박주민 “아니요. 이번에 분명히 재검토 지시하셨죠.”
이종섭 “그렇습니다.”
박주민 “왜 재검토 지시하셨어요?”
이종섭 “지휘관계에 있는 8명 전부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했기 때문에 법리 판단을….”
박주민 “지금 말씀하신 게 내용에 관여하신 게 아니에요?”
이종섭 “법리… 내용에….”
박주민 “8명이 문제 있다고 수사관이 알아서 하려고 했더니 ‘멈춰, 8명 다 하는 건 문제있어’, 이게 내용에 관여한 게 아니에요?”
이종섭 “문제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법리 판단이 되었는지를 다시 판단해 보라는 얘기입니다.”
박주민 “장관님이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저한테는 말장난으로 느껴져요. 분명히 내용에 관여했고 내용을 바꾸라는 취지의 재검토 지시인데 ‘저희가 무슨 내용에 관여했습니까’…결과적으로 내용도 바뀌었는데, 그리고 입법 취지는 특히 장관님 같은 분, 지휘관 같은 분들은 절대 들여다보지도 말라고 한 게 개정 취지인데. 안되는 걸 하신 겁니다. 안 되는 것을.”
(9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
더구나 ‘혐의를 빼라’고까지 명시적으로 지시했으면 명백한 수사 개입이고 군사법원법과 정면 충돌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군사법원법은 군 수사기관이 범죄를 ‘인지’한 경우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방부 훈령에 따르면 인지통보서에 피의자의 죄명, 범죄 사실 등을 적도록 양식이 마련돼 있습니다.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범죄인지서에는 피의자 인적사항, 범죄사실의 요지, 죄명 및 적용법조 등을 적도록 돼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혐의자와 혐의 내용도 없이 어떻게 범죄를 인지하겠습니까. 박정훈 대령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군검찰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혐의 사실을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는 결국 범죄를 입건하지 말라는 뜻이고 이는 명백하고도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수사방해', '수사개입'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병 안전에 안이한 인식 드러낸 국방 장관
재검토 지시든, 혐의를 빼라는 지시든 결국 사단장 등 고위 지휘부의 책임을 어떻게든 지우려는 의도라는 게 뻔히 보입니다. 이제껏 군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에 대해 군이 보여온 태도 그대로입니다. 국회 대정부질문 때 나온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답변에서도 그런 속내가 엿보입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물론 안전장구를 다 갖추고 했어야 되는 건 맞는데, 그 당시 상황이 워낙 긴박한 상황이다 보니까.”
강은미 정의당 의원 “어떤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안전조치를 안 하고.”
이종섭 “실종자를 최대한 조기에….”
강은미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서 장병들은 내몰려서 다 죽어도 되는 겁니까?”
(9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
이 장관의 말은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전장구를 갖추지 않은 장병들을 급류에 투입한 게 잘못은 아니라는 투입니다. 채 상병이 숨진 데 대해 윗선이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장이 무리한 수색 작업을 지시했어도 과실치사는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국방부 장관이나 군 지휘관이 휘하 장병의 목숨을 이렇게 가벼이 여겨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판단력으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군대에 보낸, 앞으로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털끝만큼도 헤아리지 못하는 망발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국방부 장관의 자격이 없습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보도에 나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는 것인데요, 이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이나 사단장이나 똑같이 장병의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실 개입 논란 속 안보실2차장·국방비서관 교체, 왜?
대통령의 이같은 개입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논란입니다. 이와 관련해 새롭게 주목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군검찰의 박 대령 구속영장청구서에 나오는 국방부 장관 지시사항 가운데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장관이 8월9일 현안보고 이후 조사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이 보고할 곳은 상식적으로 대통령실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실이 이 사건의 처리 결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련의 정황들을 볼 때, 대통령의 질책이 있었고, 국방부 장관이 혐의를 빼라고 지시했고, 그 최종 처리 결과를 대통령실에 보고하려 했다는 시나리오가 개연성있게 그려집니다.
최근 대통령실의 대응도 의아함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대통령실은 4일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과 임기훈 국방비서관을 동시에 교체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인물들입니다. 임종득 2차장은 해병대 사령관과 통화를 했고, 임기훈 비서관은 해병대로부터 수사 관련 자료를 보고받았습니다. 국가안보실의 핵심 관계자 두 명을 동시에 교체하는 것부터 이례적인 일입니다. 게다가 국방부 장관 교체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대통령실이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 이렇게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게 교체를 하는 시점이 좀 미묘하기는 한데.”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지금 거론되는 그분들 전부 다 이 사건의 진실에 관한 핵심 증인입니다. 그 핵심 증인들을 하나하나 지금 어디 숨기거나 치우는 거예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의 2차장은 국방부 소관 업무 하는 너무나 핵심 증인이죠. 7월30일 오전에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수석보좌관회의에 국방비서관이 있었고 보고를 했고요. 그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격노하셔서 국방부 장관하고 통화로 질책했다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은 다 들었을 거 아닙니까?”
(9월7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박 대령 쪽 “비장의 무기는 진실”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 대령은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입니다. 박 대령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지난 5일 다시 군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법률대리인인 정관영 변호사의 말 들어보시죠.
“박 대령이 메모를 꼼꼼하게 했기 때문에 타임라인이 분 단위로 기록이 돼 있거든요. 본인이 알고 있는 그대로를 기록해놓은 기록이 있고 이미 언론에도 많이 공표가 돼 있고 그대로 진술도 했습니다.…비장의 무기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억울한 죽음이 없게끔 하고자 하는 본인의 과업에 대한 열정과 명예, 이런 것이 진검이라고 생각합니다.” (9월5일 군검찰 출석에 앞서)
사실 박 대령이 외압 의혹을 거짓으로 지어낼 이유는 아무리 봐도 없습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정훈 수사단장이 (허위사실을 말해서) 얻을 실익이 무엇입니까? 아들이 육군사관학교 다니고 있는 사람인데.” (9월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은 7일 특검법을 발의했습니다. 특검법은 채 상병의 순직 경위 진상규명과 함께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사령부, 경북지방경찰청의 은폐·무마·회유 등 직권남용 및 이와 관련된 불법행위를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법안 발의자인 민주당 의원 24명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해병대원 순직 사고의 진실과 은폐 외압에 대한 모든 진실을 밝히고, 외압에 가담한 모든 자들에 대한 사법적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의당도 특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대정부질문에서는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설훈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사건은 대통령이 법 위반을 한 것이고, 직권남용 한 게 분명하다고 봅니다.…만천하 국민은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증거가 넘치고 넘칩니다. 그래서 직권남용이 분명하고, 대통령이 법 위반한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법 위반하면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한덕수 국무총리 “의원님 말씀하신 대로 많은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설훈 “탄핵 갈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말씀 분명히 드립니다.”
(9월5일 국회 대정부질문)
채 상병 죽음의 진실 덮고도 국방의무는 신성할 수 있나
이 사건의 핵심을 다시 돌아봅니다. 그것은 채 상병 죽음의 진실입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대에 간 스무살 젊은이가 왜 허망하게 희생돼야 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국방부 장관의 외압 의혹, 나아가 대통령실의 개입 의혹은 채 상병 죽음의 진실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규명돼야 하는 것입니다. 외압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결과는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 “앞으로 군대에 보내야 할 부모들은 걱정됩니다. 이런 군대에 우리 아이를 맡겨도 되는 건지. 어떻게 안심시키겠습니까?”
이종섭 국방부 장관 “좀더 안전한 군이 될 수 있도록 저희들이 각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강은미 “그래서 이 수사가 제대로 돼야 합니다. 적당히 위에 잘못한 사람들 다 면죄해주고 꼬리 자르기식으로 조사한다고 하면 어떻게 군대를 믿고 자식들을 보낼 수 있고 장병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군대에 갈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수사해야 합니다.”
(9월6일 국회 대정부질문)
채 상병의 죽음에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답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국방의 의무를 짊어진 젊은이들의 소중한 생명, 그리고 국방의 의무가 지니는 헌법적 의미를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실 발견을 방해하는 누구든 법 위반은 물론 반헌법 행위의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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