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취약성 1위' 한국, 극복 방안은? [SDF다이어리]
2021년 10월 11일. 우리의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가 4줄짜리 짧은 공고문을 발표했습니다. 요소 등 화학 비료와 관련된 29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조치는 다른 나라에 대한 보복 차원이 아닌, 철저히 중국 내부 요인에 의해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요소 등은 주로 석탄에서 생산되는데, 중국 내 석탄 부족 현상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은 호주와의 무역 분쟁으로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데다, 코로나19가 주춤한 사이 공장 가동이 늘고 이상 기후로 전력 사용이 증가하면서 석탄 사용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설상가상, 중국의 대표적 석탄 산지인 산시성에 홍수가 나면서 석탄 채굴이 차질을 빚었고,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말 한마디에, 각 지방정부가 앞다퉈 석탄 생산량을 감축한 것도 석탄 부족의 주요 원인이 됐습니다. 화력 발전량이 줄어 대규모 정전 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할 정도였습니다. 석탄은 물론, 석탄에서 생산되는 요소 등 관련 품목도 부족해지거나 부족이 예상되자 수출을 통제하고 나선 겁니다.
이 4줄짜리 공고문이 불러온 '나비 효과'는 컸습니다.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요소 품귀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특히 공업용 요소 수입의 97.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우리나라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게 더 싸다는 시장 논리에 따라 2011년부터 요소 국내 생산을 중단한 상황. 요소 부족은 이내 화물차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수 부족 사태로 번지면서 물류 대란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요소수 대란' 사태입니다.
값싸고 흔했던 물자인 요소가 국가적 대란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이 터지고 난 뒤 공개된 자료인데,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수산화리튬과 황산코발트, 알루미늄 합금 생산에 필수적인 산화텅스텐 등 중국 수입에 80% 이상 의존하는 품목은 우리나라 전체 수입 품목의 14.7%나 됐습니다.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경제안보클러스터가 지난 5월 발표한 경제안보 지수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수출 권력'은 11위지만, '수입 취약성'은 1위였습니다. '수출 권력'과 '수입 취약성'은 수출·수입량 등 무역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한 개념인데, '수출 권력'은 주요 상품 수출을 통해 상대 국가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수입 취약성'은 특정 국가의 수출 권력에 노출된 정도를 나타냅니다. 수입 취약성 1위라는 말은, 곧 우리나라가 공급망 교란에 가장 취약한 국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수출 권력 1위 국가는 중국이었고, 이어 독일, 미국, 이탈리아, 인도 등 순이었습니다. 반면 수입 취약성 상위권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 등이 위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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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AI와 같은 신기술의 출현, 기후 위기, 코로나 팬데믹, 고령화 사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례 없는 복합 위기가 도래한 시대. 경제안보 지수 개발을 주도한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만나, 경제안보 지수가 지닌 함의와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등을 들어봤습니다.
Q. 경제안보 지수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경제안보'라는 말이 전 세계적으로 큰 화두가 됐습니다. 경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중국 뿐 아니라 유럽, 일본 등에서도 경제안보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하게 진행됐습니다. 우리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경제안보라는 개념의 정확한 정의가 없고 국가들마다, 정치인들마다 개념을 다르게 사용했어요. 경제안보를 가장 기초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보자고 해서 무역 자료를 토대로 밑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품 코드를 이용해 5,000여 개 상품의 국가 간 상호 관계를 살펴봤습니다.
경제안보는 쉽게 말해 경제가 국가 안보를 위한 도구가 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출 규제라든지, 수입 제한이라든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는 불매 운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통해 상대 국가의 압력을 거부하거나, 반대로 특정 국가의 생각을 상대국에 강요하는 현상이 점차 빈번해지면서 이러한 강압적 경제 수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구 노력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죠.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세계 경제가 재구획되고 있습니다.
Q. 세계 경제가 어떤 식으로 재구획되고 있다는 말인가요?
과거 냉전 시대의 경제 질서는 사실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자유 진영은 미국을 중심으로 뭉치고 국제기구인 유엔과 IMF, 세계은행은 제 3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되, 사회주의 확산은 막아야 한다는 일종의 마스터플랜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우리로선 분명하게 전략을 세울 수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냉전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있듯이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역사상 어떤 패권 경쟁 국가도 지금의 미국과 중국처럼 경제적 공동운명체로 엮여 있던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미·중 관계는 마치 큰 나무에 등나무가 얽혀 있는 형국인데, 등나무를 떼어 내면 큰 나무의 가죽도 벗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스몰 야드 하이 펜스(small yard high fence)'입니다. 미국은 모든 분야가 아닌 특정 분야, 특히 기술 집약적 분야, 신산업 분야를 스몰 야드로 정한 뒤, 이 영역에서만큼은 장벽을 높이 세워 중국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맹국에게도 이 흐름에 동참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투명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배터리 산업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 중국과 분리할 것인지, 새로운 기술 혁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높다면, 그래서 의존도를 줄이는 비용이 너무 크다면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리는 잘 고려해야 합니다. 미리 마련된 청사진을 가지고 대응하기보다는 국제 정세를 보면서 적응력(adaptability)을 키우고 민첩성(agility) 있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우리나라가 수입 취약성 1위, 다시 말해 공급망 교란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나타났는데,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과 국민 경제는 상품을 값싸고 우수한 품질로 만들어 수출하는 데에 최적화돼 있었습니다. 부품이나 원재료의 수입 구조가 우리에게 어떤 취약성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할 필요가 크게 없었습니다. 왜? 그 당시는 세계화의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사드 제재를 받고 일본으로부터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당하고 나서 '특정 국가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는 게 효율적일 순 있지만 정치적 리스크가 클 수 있겠구나'라는 걸 알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안보의 시대가 왔음을 깨달은 거죠.
그런데 저희가 분석을 하다 보니,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 등 신산업이라 부르는 9개 분야에선 의미 있는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취약한 구조인 것은 맞지만 신산업에서는 상당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확인된 겁니다. 이 분야에선 우리가 4~5위 정도의 수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기술 경쟁이나 신산업 경쟁에서 우리가 상당한 수준의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다, 상대국에 맞서 중요한 방어 장치를 지니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Q. 수출 권력 1위인 중국과,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까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을 너무 과도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중국이 실제 물건을 만들어 전 세계에 유통하는 중요한 국가임은 틀림없지만, 기술, 아이디어, 디자인 등은 이 공급망 지배력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애플 제품이 최종적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뿌려지는 곳은 중국이지만, 애플 제품에서 가장 큰 이윤을, 가장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입니다. 독일, 일본, 한국도 애플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국가들로 큰 이윤을 가져가고요. 이 숨은 부가가치 흐름까지 우리는 함께 봐야 합니다. 원천 기술, 소프트웨어, 디자인 파워를 지닌 미국과, 제조의 중심인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당장 수출에서 손해 보더라도 부가가치 증가가 기대되는 기술 선진국과 협업할 것이냐, 수출과 고용 증가를 위해 제조업에서 강점을 가진 국가와 협업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결국 위기를 관리하면서 경제안보에 맞는 전략으로 그때그때 대응해야 합니다. 이때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안보적 측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 입장에선 안보적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Q. 경제안보 지수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을 보완할 계획인가요?
지금까지 주로 상품 교역을 들여다봤다면, 정확성을 더 높이기 위해 핵심 부품, 원자재,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 등 미시적인 자료를 더 찾아 분석하려고 합니다. 또, 신산업 분야에서 누가 중요한 플레이어인가, 국가와 기업들이 어떤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변화도 추가 연구 주제입니다. 저희가 발견한 것 중 하나는, 러시아에 수입을 의존하는 있는 국가들이 대러시아 제재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겁니다. 러시아에서 에너지, 곡물, 공산품, 무기를 수입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유엔 총회에서 진행된 여러 차례 투표에서 대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자세를 나타낸 거죠. 이를 통해 러시아 경제권이 다른 세계 경제권으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자국에 의존적인 국가들과 더욱 친밀해질 것이고, 반대급부로 다른 나라들과는 관계가 멀어져 러시아권 블록의 고립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경제안보 관점에서, 나아가 기후 위기, 인구 고령화 등 복합 위기와 맞물려서 볼 때 우리는 어떤 방향성을 견지해야 할까요?
경제적 관계를 안보적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국가들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충돌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거기에 참여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또, 경제안보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상대국이 방어적인 수단으로 똑같은 자세를 취하려하기 때문에 무기 경쟁과 같은 소용돌이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 중 하나인 만큼 숨 쉴 수 있는 공간, '브리딩 스페이스(breathing space)'를 최대한 넓히는 게 중요합니다. 경제안보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나라들끼리 자유와 규칙에 기반해 협력하는 이른바 '협력적 경제안보'를 확보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 10위권인 우리는 그런 밑그림을 그리는 데 훨씬 큰 존재감이 있는 나라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내부적으론 앞에서 언급한 적응력(adaptability)과 민첩성(agility)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원인과 해결책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양분됐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고령화라든지, 저출생이라든지, 양극화라든지 지나친 대립은 우리의 민첩성과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겁니다. 사회적 합의와 신뢰를 모아낼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입니다. 경제안보 때문에 피해를 입은 기업과 국민을 구제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안보적인 이유로 특정 국가와 무역이 끊길 경우 그건 개인의 사업상 실수나 경영 판단 잘못으로 빚어진 피해가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가 이런 피해를 일정 부분 보상해 준다면 사회적 신뢰가 생길 수 있습니다.
AI를 비롯한 신기술을 둘러싼 전 세계 경쟁이 뜨겁습니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 코로나 펜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례 없는 대전환기를 알리는 신호음이 곳곳에서 요란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한국은 경제 급성장에 따른 비용을 뒤늦게 치르고 있습니다. 효율과 시장 논리를 쫓다 '수입 취약성 1위'라는 값비싼 청구서를 받아 들었습니다. 최근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미국의 한 석학이 머리를 부여잡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탄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여느 때보다 위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기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경제안보가 우리에게만 닥친 과제는 아닌 것도 분명합니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보란 듯이 극복한 나라입니다. 올해 SBS D포럼(SDF)의 주제처럼 경제 패러다임을 다시 쓸 것으로 자신합니다. 아래는 박종희 교수의 말입니다.
미래팀 sd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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