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김수한 음악감독 "음악을 덜어내는 것도 중요해요"

오명언 2023. 9.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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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곡 '다만 마음으로만' 작사·작곡도 맡아
"OST 녹음하러 부다페스트, 빈까지 날아갔죠"
MBC 드라마 '연인' [MB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늦은 오후 햇살로 노르스름하게 물든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청보리밭. 시종일관 장난기 넘치는 능글맞은 태도로 확신을 주지 않던 이장현(남궁민 분)은 유길채(안은진)를 두고 청나라로 떠나게 되자 그제야 감춰왔던 진심을 전하려 한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의 한복이 스치면서 나는 사각사각 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풀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이장현의 나지막한 목소리 아래 절절한 배경음악이 깔리고, 두 사람이 입을 맞추기 직전에는 둔중한 드럼 소리가 심장을 울린다.

최근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MBC 드라마 '연인'의 화룡점정은 애절함을 극대화하는 배경 음악이다.

'연인'의 음악을 총괄한 김수한 음악감독을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다.

드라마 '연인' 김수한 음악감독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감독은 "음악팀은 작품 시놉시스(드라마 줄거리를 요약한 글)만 보고 작업을 시작해서 마지막 편집본에 음악을 넣는 작업으로 일을 마무리한다"며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하고 가장 늦게 마무리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음악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이라고 짚었다.

"주어진 장면에 음악을 붙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음악이 분위기에 어울리는지는 누구에게나 극명하게 드러나니까요. 하지만 좋은 음악 감독은 전체적인 극의 흐름을 파악하고 완급 조절을 할 줄 알아야 해요. 힘을 빼야 하는 장면에서는 빼야 중요한 장면에서 힘을 줄 수 있죠."

김 감독의 해석이 깃든 장면 중 하나는 4화의 엔딩 장면이다. 오랑캐에 맞서 싸우러 떠난 능군리 사내들과 달리 피난을 택한 이장현은 전쟁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송추 할아버지를 보고 마음을 돌린다.

MBC 드라마 '연인' [MB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복수를 다짐한 이장현은 칼을 휘두르며 수십명의 오랑캐들을 베는데, 이때 배경 음악으로 서정적인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온다.

김 감독은 "통상 액션 장면에는 긴박감 넘치는 음악을 넣지만, 이 장면에서는 감정적인 음악을 깔고 싶었다"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이장현의 의지를 강조하는 음악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음악을 붙이는지에 따라 시청자들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흔히들 음악 감독의 역할은 극에 어울리는 음악을 넣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김 감독은 음악을 덜어내는 과정 역시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배경음악을 비우는 것을 좋아한다"며 "배우들의 연기가 좋거나, 음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장면에서는 음악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연인' [MB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령 이장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길채가 그의 털조끼를 들고 산에 올라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시오"라고 울부짖는 장면에는 배경 음악이 전혀 깔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길채의 절절한 목소리와 울려 퍼지는 메아리 소리, 산 정상의 바람 소리와 옷이 펄럭이는 소리 등을 살리고 싶었다"며 "음악을 넣으면 오히려 시청자들의 신경을 흐트러트릴 것 같았다"고 했다.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 '다만 마음으로만'의 작사와 작곡을 직접 맡기도 한 그는 '연인'에 어울리는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세세한 디테일도 대충 넘기지 않았다.

극 중 량음이 부를 노래를 찾기 위해 만주족의 전통 노래를 연구했고,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녹음을 위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까지 찾아갔다.

김 감독은 "국내에는 오케스트라 단원 40∼5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녹음실이 없다"며 "풍부한 볼륨감과 스케일을 구현하기 위해서 부다페스트와 빈 현지 오케스트라와 협업해 20여 곡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연인' 김수한 음악감독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음악 감독으로서 가장 마음에 드는 OST는 뭐였을까. 김 감독은 가수 김필이 부른 '나의 별이 돼주오'와 미연의 '달빛에 그려지는'을 꼽았다.

그는 "OST를 선정할 때 특히 가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두 노래를 잘 들어보면 묘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사가 남녀 주인공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귀띔했다.

"고단했던 나의 삶에/ 단 한줄기 빛이 되어준 그대 곁을/ 이 생이 닳도록 내가 지킬 테니"('나의 별이 돼주오')

"달빛에 그려지는/ 잊지 못할 나의 사랑아/ 이별은 망설임도 없이/ 그리움만 놓고 갔구나"('달빛에 그려지는')

2003년 MBC 드라마 '다모'로 시작해 드라마 '킬미, 힐미'(2015),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 등 60여 개의 작품을 작업한 김 감독은 '연인'의 극본을 집필한 황진영 작가와는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MBC 드라마 '연인' [MB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직 파트 2 편집본을 끝까지 받아보지 못했다는 김 감독은 내용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

"끝이 어떻게 맺어질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궁금하지 않은 이유는 파트 1보다 파트 2가 훨씬 더 좋게 만들어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입니다. 음악감독으로서 파트 2에서도 매 회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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