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니토드' 번역 변천사…"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홍정민의 뮤지컬 톺아보기]

장병호 2023. 9.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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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연과 2016년 재연, 엇갈린 흥행
비결은 180도 달라진 번역 접근
언어유희·신조어·비속어 사용해 친숙함 강조
달라진 번역, 제작 당시 환경 반영 결과'

한국 뮤지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데에는 라이선스 작품(해외 원작을 현지화한 작품)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해외에서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관객의 기대와 수요에 맞게 적절히 현지화해야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뮤지컬 번역 전문가인 홍정민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해외 라이선스 작품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들 작품이 어떻게 현지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주’

[홍정민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한국 뮤지컬 산업에서 라이선스 작품의 시장 점유율은 60~70%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의 제작 과정에 필수적인 번역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으며 뮤지컬 시상식에서 ‘번역’ 부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번역가가 번역 작업으로 최초이자 유일하게 상을 받은 작품이 있다. 브로드웨이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스위니토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2016년 선보인 이 작품의 재연이다. 이 작품을 옮긴 김수빈 번역가는 그 해 열린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각색번안상을 받았다(여기서도 시상 부문 명칭에는 ‘번역’이 들어가지 않는다). 김 번역가의 가사와 대사는 과감한 의역을 통해 손드하임 특유의 풍자, 언어유희와 유머를 한국적 정서에 맞게 잘 살렸다는 호평을 받으며 이 작품 흥행의 1등 공신으로 꼽혔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2016년 재연의 한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어둡던 ‘스위니토드’, 재연 거치며 ‘빵빵 터지는’ 작품 변신

사실 2007년 공연된 ‘스위니토드’의 한국 초연은 마니아와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반면,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개막한 재연은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고, 올 초 4연까지 공연되면서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대표적 흥행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번역이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재연의 번역은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초연과는 180도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일단 원작은 훨씬 무겁고 복잡하다. 크리스토퍼 본드의 1973년 동명 희곡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은 ‘뮤지컬은 단순하고 대중적인 오락’이라는 일반적 통념을 깨고 살인, 복수, 인육 파이 등 비극적이고 엽기적인 내용, 영국 산업 혁명 시대에 대한 비판을 담아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어둡고 잔인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다만, 손드하임은 이러한 내용을 어둡게만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언어유희, 유머, 과장된 인물이나 상황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복수, 증오, 광기와 그로 인한 비극을 배가시킨다.

이 작품의 대표 넘버 ‘어 리틀 프리스트’(A Little Priest)가 단적인 예이다. 여기서 여주인공인 러빗 부인은 토드에게 사람들을 살해한 뒤 인육 파이로 만들어 팔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가사는 목사, 변호사, 군인, 정치인 등 다양한 직업군의 특징과 이를 재료로 만든 파이의 맛을 동시에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 각운 등의 언어유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심지어 나오는 음악도 매우 경쾌하고 가벼운 장조의 왈츠로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하지만 가사를 들으면서 박장대소했던 관객들은 이후 엄청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곡의 경박한 분위기, 빠른 박자, 환희에 찬 두 사람의 농담이 가사의 끔찍함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함께 웃었던 관객들도 잔인함을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초연의 번역 역시 이러한 원작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주제의식을 충실히 전달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반면 재연은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익숙한 소재와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원작의 재기발랄한 언어유희와 유머 효과를 전달하는 데 무게 중심이 있었다. 그 결과 ‘스위니토드’는 관객들이 ‘빵빵 터지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현지화되었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2019년 삼연의 한 장면(사진=오디컴퍼니).
초연은 ‘아님, 광부? 석탄 캐던’, 재연에선 ‘저 형체 귀족 같네’로

이 넘버의 가사 몇 개만 비교해보자. 원작에는 지배 계층의 위선과 이중성을 풍자하기 위해 귀족, 성직자를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다. 재연은 초연보다 한국의 시대사회적 상황에 좀 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squire’(대지주)가 초연에서는 ‘귀족’으로, 재연에서는 ‘재벌 2세’로 번역된다. 초연은 원작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어울릴 법한 단어를 사용한 반면, 재연은 현재 한국 사회에 좀 더 친숙한 표현을 선택한 것이다.

또 원작의 ‘Looks thicker, More like vicar!’(좀 더 두껍네. 교구 목사 같아)는 초연에서는 ‘아님, 광부? 석탄 캐던?’으로, 재연에서는 ‘저 형체 귀족 같네’로 번역됐다. 교구 목사라는 표현이 현재 한국 관객들에게 어색하다는 점을 감안해 두 버전 모두 원작과는 다른 표현을 선택했지만 목적은 다르다. 초연의 경우 역시 원작의 시대에 적절한 직업을 선택했지만 재연은 ‘귀족 같네’의 발음이 현재 한국에서 자주 사용되는 비속어처럼 들린다는 점에 착안해 풍자와 유머의 효과를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재연에는 원작에 없는 한국식 ‘아재 개그’, 즉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나 신조어, 비속어도 초연보다 자주 등장한다. 원작의 ‘If you get it. Good, you got it!’은 ‘이해가 가나? 좋아, 이해했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지만, 초연은 ‘그렇게나 둔해서야’로 옮겼고, 재연은 ‘삘이 왔나, 삘이 왔네’로 번역했다. 원작의 ‘How choice! How Rare!’(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진귀한지)는 각각 ‘멋진 생각’과 ‘센스 최고’로 바뀌었다. ‘choice’는 ‘고급의/질 좋은’, ‘rare’는 ‘진귀한/희귀한’, ‘살짝 익힌’의 의미로 둘 다 일반적 상황과 식재료에 모두 사용될 수 있는 중의적 표현이다. 번역에서는 이를 옮기기가 어려워 두 버전 모두 의미 전달에 초점을 맞췄는데, 재연의 경우 신조어를 택해 친숙도를 높였다.

결국 초연의 번역은 친숙하지는 않지만 원작의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한 반면, 재연의 번역은 현재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소재와 표현을 사용해 원작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2022년 사연의 한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초연과 재연 번역, 당면한 환경 아래서 이뤄진 최선의 선택

그렇다면 대중적 호평을 받고 수상까지 한 재연의 번역이 초연보다 더 가치 있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각 공연이 이루어진 시점 한국의 시대 사회적 배경과 뮤지컬 산업의 상황, 이에 따른 제작 방향과 참여 주체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는 단순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연이 이루어지던 2007년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대형 작품은 물론, 마니아 관객을 겨냥해 오프 브로드웨이나 유럽 등의 실험적 작품도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반면, 2016년 전후에는 뮤지컬 산업이 포화되기 시작하면서 관객층 확대 및 다변화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초연과 재연은 제작 주체와 제작 방향이 판이하게 달랐다. 연출자, 출연진, 번역자 등도 이를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초연의 제작을 맡은 뮤지컬헤븐의 박용호 프로듀서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쓰릴미’ 등 대중보다는 마니아성 작품을 과감하게 들여오는 것으로 유명한 제작자다. 초연 제작 당시 원작의 작품성 및 예술성과 세부 요소에 내포된 상징성을 강조했다. 반대로 재연 제작을 담당한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프로듀서는 작품성 있는 원작에 대중성을 입혀 수많은 라이선스 뮤지컬의 흥행을 이끌어왔다. “손드하임이라면 평론가만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겠다”면서 제작 방향의 초점이 작품의 대중화에 있음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출연진 역시 확연히 차별화된다. 초연에는 류정한, 박해미 등 성악 전공자들이 주요 배역을 맡아 고난도 성악 발성이 요구되는 원작의 음악적 특징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재연에서는 조승우, 옥주현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되어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동일한 작품이더라도 공연 시점에 따라 시대와 사회적 배경, 뮤지컬 산업의 상황, 제작 방향과 참여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 각각의 번역은 당면한 환경과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최선의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재연의 번역에 대해 언어유희와 유머의 효과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희극적 요소가 과도하게 부각되었으며 이로 인해 원작의 기괴한 분위기나 비극성, 무거운 주제 의식, 복잡한 상징 등이 약화됐다는 비판적 평가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또, 초연이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지만 2008년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최우수 외국 뮤지컬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결국 번역에 대한 대중과 평단의 반응이나 평가가 어떠하든 그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각각의 조건들이 서로 정교하고 일관성 있게 맞물리기만 한다면,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

* 본 칼럼은 2016년 출판된 ‘재공연을 통해 본 뮤지컬 가사의 뮤지컬 가사 번역의 변화와 원인 -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를 중심으로’ 제하의 논문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원작의 가사는 2005년 ‘스위니토드’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사운드트랙 (2005 Broadway Revival Cast Soundtrack)을, 초연 번역은 2007년 제2회 대한민국 뮤지컬 페스티벌 영상, 2연 번역은 2016년 ‘스위니토드’ 가사집을 참고한 것입니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2022년 사연의 한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필자 소개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영어통번역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뮤지컬 번역으로, ‘Taboos, Translation, and Intersemiotic Interaction in South Korea‘s Successful Musical Theaters’, ‘국내외 뮤지컬 번역 연구 현황 및 향후 연구 방향’, ‘패밀리 뮤지컬 번역과 아동 관객: ‘마틸다’를 중심으로’, ‘뮤지컬 번역에서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멀티모달적 고찰: ‘썸씽로튼’을 중심으로’ 등 라이선스 뮤지컬 번역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한 논문을 A&HCI급 국제 학술지, KCI 등재지 등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활발하게 출판하고 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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