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둘러보면 '소중한 존재'가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3. 9. 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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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양질의 사회적 관계는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요즘 피로에 지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붙들고 나보다 더 내 일을 열심히 챙겨 주는 친구가 있다. 만사가 다 귀찮지만 덕분에 조금씩 힘을 내보고 있다. 문득 위기의 순간마다 항상 내 곁에 나보다 더 열심히 나를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음을 상기해 보았다. 이들 덕분에 많은 우여곡절을 넘겨온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과분한 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에게 너를 만난 것이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행운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있는지, 내 삶은 사실 기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새삼 느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양질의 사회적 관계는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다. 인간의 행복과 건강 전반에 있어 가장 해로운 요소가 외로움과 소외감인 반면, 양질의 관계는 그 어떤 물질적 풍요 못지 않게, 또는 그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준다. 

하지만 단순히 양질의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 스스로 그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는지 여부다. 잘 찾아보면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지금껏 그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 보살핌을 누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는 여전히 외로움과 불안감에 헤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실제로 존재해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는 주체는 나여서 그 사랑을 내가 보지 못한다면 나는 여전히 애정 결핍 상태로 남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들이 주어지는 사랑과 관심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잘 캐치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과 정신건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자신이 받은 사회적 지지를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같은 도움을 받아도 이를 ‘도움’으로 더 잘 인식하고 더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평소 주변 사람들이 주는 사회적 지지에 무심했던 사람들은 도움을 받아도 이를 다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똑같은 사랑을 받아도 이를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행복해 질 수도, 아니면 되려 불행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웨스트 버지니아대의 심리학자 제나 윌슨(Jenna Wilson) 등의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 지지를 잘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마음 챙김’과 작은 행복도 길게 곱씹어보는 ‘음미하기’ 또한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주어진 사랑과 관심을 잘 캐치하는 능력은 내 삶에 있어 진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 차리는 능력과 이들을 찬찬히 둘러 볼 줄 아는 관심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곁에서 언제나 나를 지탱해주던 사랑과 관심에 눈도장을 찍어 보는 작은 노력이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 것은 관계가 오래되어 그 빛이 바랬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내 주변을 둘려보기를 멈췄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항상 곁에 있다고 해서 그 소중함을 잊게 되는 공기처럼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에도 쉽게 무감각해진다. 그러다가 없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뭔가 크게 잘못 되었음을 내 안에서 그 사람의 존재가 결코 작지 않았음을 깨닫곤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과 같은 사랑들을 회피하지 않고 마음껏 음미할 수 있길 바래본다. 

Lakey, B., & Cassady, P. B. (1990). Cognitive processes in perceived social suppor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9(2), 337–343. https://doi.org/10.1037/0022-3514.59.2.337
Wilson, J. M., Weiss, A., & Shook, N. J. (2020). Mindfulness, self-compassion, and savoring: Factors that explain the relation between perceived social support and well-being.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52, 109568. doi:https://doi.org/10.1016/j.paid.2019.109568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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