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출신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김진화 기자 2023. 9. 9.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MO출신은 어떤일을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수학동아 제공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출신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수학과와 통계학과에 진학한 비율이 62%나 되지만 모두 수학자가 된 건 아니에요. 컴퓨터 공학, 의료,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어요 그중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인물 5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들 모두 IMO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는데요. IMO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현재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 바로 알아봅시다.

안형준 몰로코 응용 과학자. 안형준 제공

“IMO 대표로 뽑혔을 때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정말 기뻤던 순간 중 하나예요. 꾸준히 노력하면서 간절히 바라던 목표가 이뤄졌기 때문에 굉장히 좋았어요.”

안형준 연구원은 IMO에 참여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얼굴에 기쁨을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는 수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수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원에서 위상수학 수업을 듣던 중에 추상적인 분야의 연구가 본인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로의 방향을 틉니다. 이후 비교적 눈에 보이고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응용수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에 있으면서 학계보다는 산업계에 나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낼 때의 성취감이 좋아서 수학을 공부했는데 연구 수준에서의 수학은 호흡이 너무 길더라고요. 학자로서의 수학은 제가 추구하는 즐거움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서 취업을 고민했고, LG화학에서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연구했어요.”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일정 수준 이상 쓰면 부하가 생겨서 일정 사용량을 넘으면 안됩니다. 배터리의 잔여 용량, 온도 등을 고려해서 배터리 사용량을 조절해 한계점을 넘지 않게 해야 하지만 제품마다 성능이 다르고 연식에 따라 편차가 커서 하나의 기준을 찾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는 몇 초간의 배터리 관련 데이터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수학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7년간 일하다 2년 전 1997년 IMO 한국 대표이자 몰로코에서 근무 중인 김범식 연구원의 소개로 몰로코로 이직합니다.

몰로코는 AI 기술을 통해 사용자에게 맞춤 광고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에요. 김 연구원은 데이터를 처리할 때 수학적 기반이 있으면 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안 연구원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답니다. 몰로코에는 안 연구원을 포함해 총 4명의 IMO 출신이 있습니다.

“IMO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쌓인 내공이 대학교, 대학원 공부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또 수학 문제를 깊게 고민해 풀며 사고하는 훈련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수많은 데이터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통찰을 주거나 가설을 검증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승명 디사일로 대표. 이승명 제공

이승명 디사일로 대표는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창업할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수백 년간 풀리지 않은 난제를 해결하고 본인의 이름을 딴 ‘이승명의 정리’를 만드는 수학자를 꿈꿨지요.

하지만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순수수학만이 자신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수학처럼 깔끔하고 아름답게 정리할 수 없는 부분이 많고 경제학이 있어야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IT 회사인 ‘티맥스데이터’에서 병역의무를 수행했고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보람과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후 이준행 대표와 함께 블록체인 스타트업 ‘스트리미’를 창업합니다. 첫 번째 창업을 통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이승명 대표는 회사에서 나와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에 빠집니다. 

그때 문득 IMO에 함께 나갔던 송용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연구원이던 송 교수는 ‘동형암호’를 주제로 수학 박사 졸업논문을 써서 유명해졌고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송 교수와 밥을 먹으면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들었거든요. 지금까지 동형암호 기술은 학계 위주로 발전해왔는데 이제는 산업에서 상용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동형암호라는 아이템으로 창업했지요.”

동형암호는 암호화한 상태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암호입니다. 원래는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암호화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보존됩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는 수많은 의료 데이터가 있지만 개인 정보 보호로 인해 활용하기 어려웠지만 동형암호를 이용하면 개인 정보를 암호화한 상태에서 데이터를 분석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 정보를 노출하지 않고도 맞춤형 서비스를 할 수 있어요.

“수학이 쓰이는 곳이 워낙 많아서 수학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 어디서라도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경험을 다양하게 해보면서 본인이 재미있는 걸 찾아보세요.”

송용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송용수 제공

“IMO를 통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어요. IMO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능과 학문에 대해 탐색할 수 있었지요. 또 IMO는 경쟁보다는 친분을 쌓는 축제의 장이에요. 사회인이 된 다음에 다른 직종의 사람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IMO 출신들은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어요. 그런 점에서 IMO는 일종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줬지요.”

IMO가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송용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이승명 디사일로 대표가 말했던 동형암호를 포함해 개인 정보 강화 기술을 연구합니다.

데이터의 활용도는 유지하면서 개인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서 근무하고 서울대 교수가 돼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지만 대학 시절 방황했습니다.

“큰 고민 없이 수학자라는 꿈을 갖고 수리과학부에 입학했는데, 순수수학은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 가능한 내용이 많지 않아 흥미가 떨어졌어요. 수학자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 낙심하고 방황했지요. 제가 계속 해왔던 게 수학이라 그때 가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하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군 휴학을 포함해 학부를 7년 반 만에 졸업했어요.”

방황의 종지부를 찍어준 건 암호학 수업이었습니다.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대부분의 수학과 전공을 들어보던 중 암호학이 본인과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암호학은 수학을 기반으로 하지만 컴퓨터 공학과 전자 공학 등을 접목해 어떤 기술을 만들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암호학을 전공해 동형암호에 관한 주제로 졸업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마침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에서도 동형암호에 관심이 많아 그곳에 입사했고 이후 본인의 연구팀을 꾸리기 위해 서울대 교수가 됐습니다.

“세상에는 할 일이 많고 자신의 능력을 잘 펼칠 수 있는 분야도 많아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시야를 넓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분야로 진입하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워도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한 가지만 파고드는 끈기도 좋지만, 가끔은 유연하게 열려있는 마음가짐도 중요한 것 같아요.”

남주강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서울대병원 제공

IMO는 여성 참가자가 극히 적어요. 역대 한국 대표 158명 중에서도 여학생은 6명뿐입니다. 그 가운데 2년 연속 금메달을 거둔 남주강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진료 조교수는 IMO가 남학생들의 리그라는 불문율을 깼습니다.

“여성 참가자도 거의 없고 금메달을 받았을 당시 유일한 여성이라 IMO 2005 개최국인 멕시코 언론에서 절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IMO를 준비하는 계절학교에서도 30여 명 중 혼자 여학생이었던 적도 있어요.”

그런 그에게 IMO는 자신감을 주는 기억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준비해서 IMO 대표가 되고 금메달까지 거머쥐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자신감은 의사가 된 지금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영상의학과에서 X-ray를 통해 질병을 판독하는 알고리듬은 물론 의료영상을 활용한 딥러닝 모형을 만들고 있어요.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주저할 수 있지만, IMO에서 함께했던 친구들이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저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그래서 코딩을 독학해서 직접 알고리듬을 개발했어요.”

남 교수는 대학 전공을 선택할 당시 의예과와 수학과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한 뒤 휴학하고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어요. 막상 대학 수학을 공부해보니 고등학생 때 생각했던 수학과 다르게 철학적이라고 느껴져서 잘 맞지 않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세부 전공을 선택해야 했을 때 의학 중에서도 수학적인 분야인 영상의학과를 택했습니다. 환자를 직접 보기보다는 주로 연구를 많이 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CT, MRI 같은 의료영상에도 수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어 영상의학과에 들어가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가 된 이후 9년간 연구를 이어가며 2022년에는 빅데이터 구축, 인공지능 모형 개발 등의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습니다.

주정훈 파이매틱스 연구원. 주정훈 제공

IMO 2016에서 우리나라 대표가 21년 만에 만점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요. 그중 한 명이 주정훈 파이매틱스 연구원입니다. 그는 2015년에도 IMO 대표로 출전해 42점 만점 중 40점을 맞아 우수한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IMO로 많은 배움을 얻었지만 막상 IMO가 끝나자 한편으로는 허전한 느낌이 들었어요. IMO를 향해서 중학생 때부터 5년 정도 공부했었는데 이게 끝나고 대학에 와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어요. 기존에는 목표를 위해 쉼 없이 달려갔다면 이제는 새로운 목표를 정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수학을 앞으로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게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 졸업 후 어떤 일을 할지 계속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데이터 분석 관련 일을 해봤습니다.

“주어진 데이터 내에서 여러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에 관한 성과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나름의 중독성이 있었지요. 그러면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저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는 AI 기반의 투자회사 파이매틱스에서 금융 데이터 분석을 통해 주식, 채권 등을 거래해서 수익을 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는 IMO를 준비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던 추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또래 친구들과 몇 시간 동안 한 문제를 풀기 위해 토의하면서 함께 노력했던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그는 2017년부터 3년간 폴리매스 멘토로도 활동했습니다.

“반드시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분위기에서 문제를 풀면 저도 한층 더 깊이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상당히 어렵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 문제에 매달려서 여러 시도를 통해 성취하는 경험이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됐지요. 또 IMO 대표가 되고 만점까지 받은 경험이 제가 진정으로 노력을 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어요. 이것이 저에게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수학동아 9월, IMO는 인생의 전환점! 수학 영재는 무슨 일을 할까?

[김진화 기자 evolution@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