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액체일까, 고체일까

이창욱 기자 2023. 9.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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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고양이가 액체일까 고체일까 고민해 본 연구자가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혹시 인터넷에서 ‘고양이 액체설’이라는 밈(meme)을 봤는가. 고양이가 마치 액체처럼 질질 흘러내려 문과 서랍 틈을 통과하고 그릇에 담기는 내용의 밈이다. 농담으로 웃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고양이가 액체일까 고체일까 고민해 본 연구자가 있었다. 그의 고민은 당연히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정말 고양이가 액체처럼 행동할까. 고양이에 관한 기반 지식이 없는 기자는 먼저 고양이 집사 경력 20여 년차인 베테랑 동료 기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집사가 볼 때 고양이는 액체입니까?"

동료기자는 “초등학교에서 액체와 고체를 구분하는 기준이 그릇에 담았을 때 모양이 바뀌냐 아니냐로 배웠다. 그 기준으로 보면 고양이는 액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마다도 물리적 특성이 다른 것 같다”며, “보통은 첫째 솜이가 액체고 둘째 사탕이가 고체에 가깝다”고 부연했다. 

동료 기자의 고양이인 솜(위)과 사탕(아래). 솜은 액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 유변학자, 고양이의 점탄성을 사유하다

동료 기자와 비슷한 생각을 2014년 인터넷의 ‘고양이 액체설’ 관련 논쟁을 보던 마크-앙투안 파르딘 당시 프랑스 리옹대 물리학연구소 연구원도 떠올렸다. 유변학자였던 파르딘 연구원은 곧 실제로 고양이가 액체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할 ‘유변학(rheology)’을 소개하고 넘어가자. 유변학은 물질이 흐를 때 어떻게 변형되는지에 관해 연구하는 물리학의 하위 학문이다. 유변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인 “모든 것은 흐른다”의 그리스어 표현 ‘판타 레이’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고체에 작용하는 힘은 ‘탄성’이라는 특성으로 액체와 기체의 흐름은 ‘점성’이라는 특성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세상 물질이 고체와 액체, 기체로 칼같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고분자 물질(예: 플라스틱)이나 콜로이드 용액(예: 녹말 용액) 등 많은 물질은 점성과 탄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를 ‘점탄성’이라 부르며 유변학은 점탄성을 통해 다양한 물질의 흐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유변학이 다루는 물질은 무한히 많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페인트, 고무 등 각종 고분자 복합재료로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물질의 흐름이 공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의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공 장기를 만들 때 눈물이나 혈액의 점탄성 측정은 매우 중요하다. 의외로 유변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발달한 분야는 식품 산업계다. 케이크 반죽부터 케첩과 마요네즈까지, 식품계에는 온통 끈적거리며 흐르는 물질 천지이기 때문이다.

2015년 물리학상 고양이의 유변학에 관하여. 과학동아 제공

● 고양이는 (보기에 따라서) 정말 액체다

파르딘 연구원은 우선 고양이의 ‘데보라 수(deborah number)’를 측정해 고양이의 물성을 검증하기로 했다. 유변학에서 쓰이는 핵심 개념인 데보라 수를 쉽게 말하면 물질이 외부에서 받은 힘에 대한 반응으로 변화하는 시간(이완 시간)을 물질을 관찰하는 시간으로 나눈 수이다. 지켜보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의 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와인을 잔에 흘려보내면(외부에서 힘을 줬을 때) 와인은 금방 잔의 모습대로 담긴다(변화가 빠르게 일어난다).  변화 시간이 관찰 시간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데보라 수는 1보다 적어지고 이때 이 물질은 액체에 가깝다고 본다. 

반대로 데보라 수가 1보다 커질수록 물질은 고체에 가까운 특성을 가진다. 반쯤 녹은 플라스틱을 와인 잔에 담았다고 생각해보라. 와인 잔의 모습대로 담기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파르딘 연구원은 인터넷에서 여러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찾아본 후 고양이의 이완 시간이 1초~1분 사이라 결론내렸다. 관찰 시간에 따라 고양이는 유변학에서 말하는 액체의 특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또한 파르딘 연구원은 겁을 쉽게 집어먹는 아기 고양이보다 아무 곳에나 뻔뻔하게 드러눕는 나이든 고양이들이 훨씬 액체에 가까운 특성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보통 사람의 추측은 물론, 유변학의 정의에서도 고양이가 액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파르딘 연구원의 논문은 유변학이라는 학문의 방법론을 극한까지 적용하면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학문적 농담이다. 유변학의 관점에서 변수를 어떻게 측정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고양이는 정말로 액체의 성질을 띨 수 있다.

이는 유변학자의 고상한 유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유변학의 시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논문이 아니었다면 누가 고양이 액체설을 과학의 관점에서 검증했을까. 

넘치는 재기와 세상을 새롭게 볼 기회를 갖게 해준 공로로 파르딘 연구원은 2017년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결국 이그노벨상 위원회도 헤라클레이토스의 오래된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세상 모든 물질은 정말로 흐른다. 때로는 고양이마저도 말이다.

2021년 생물학상 고양이 울음의 의미. 과학동아 제공

● 고양이는 어떤 말을 할까

과학자들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엄청나다. 고양이는 언제나 많은 과학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생물이었다. 물론 고양이가 직접 실험 동물로 쓰이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그 한 가지 이유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2019년 아츠코 사이토 일본 도쿄대 인지행동과학과 교수팀은 고양이 카페에서 78마리의 고양이를 대상으로 이름을 부르며 실험해 고양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아 듣지만 단지 무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doi: 10.1038/s41598-019-40616-4)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향한 일방적 사랑을 증명이나 하듯 고양이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다. 이그노벨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잔네 쇠츠 스웨덴 룬드대 음성학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고양이의 음성을 꾸준히 연구한 공로로 2021년 이그노벨 생물학상을 받았다.

쇠츠 연구팀이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인간과 고양이가 상호작용할 때 고양이가 내는 소리다. 고양이 집사였던 쇠츠 교수는 2010년부터 키우던 고양이의 울음 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곧 다양한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했고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고양이가 내는 소리를 상황에 맞게 음성학적으로 분석하는 ‘Meowsic(뮤우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사람처럼 고양이도 기분 좋을 때는 짧고 상승하는 야옹 소리를 내고 기분이 나쁠 때는 길고 낮은 야옹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doi: 10.5281/zenodo.3245999)

10년 넘게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끈기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면 쉽사리 갖기 어렵다. 아마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랑하는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고 싶은 마음이 쇠츠 교수의 원동력 아니었을까. 지금도 세계에서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고양이를 향한 애정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9월, [이그노벨상] 고양이는 액체일까, 고체일까?

[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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