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하게 관대하게 자유롭게! [여여한 독서]
스티븐 내들러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펴냄
옆지기와 격렬하게 싸우던 어느 날, 먼지 쌓인 〈정신현상학〉을 꺼내 아무 데나 펼쳐 읽었다.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문장에 코를 박고 한 줄 한 줄 좇다 보니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 되면서 싸움을 계속할 명분도 의욕도 다 시들해졌다. 그걸로 싸움 끝. 이해도 화해도 없는 끝이지만 일단 끝나서 다행이었다.
일상사의 파고에 휩쓸려 숨쉬기 힘든 이즈음, 그때 일이 생각나 시립도서관 한쪽에 마련된 철학실을 찾았다. 이해 불가능한 문장으로 악무한의 불만과 근심을 잠시 잊고 싶었던 것인데, 거기서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라는 책을 만났다. 눈길이 머문 건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죽음 공부를 할 때처럼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힘들 때 ‘죽고 싶다’라고 버릇처럼 내뱉듯이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제목을 본 순간 나한테 하는 얘기 같아 뜨끔했다. 책을 꺼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지혜’라는 부제가 달려 있고 저자는 스티븐 내들러. 〈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같은 빼어난 교양서를 쓴 이 분야의 전문가다. 나 역시 그의 책을 읽고 한동안 스피노자의 〈에티카(윤리학)〉를 읽겠다고 머리를 쥐어짰던 적이 있다. 이 책, 안 볼 수가 없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펼쳤다. 오랜 공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빤한 어려움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나를, 사람 노릇이 너무 버거워 다 그만두고 싶은 나를, 이 책의 단 한 문장이라도 깨우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스피노자는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철학자들의 철학자’이며, 대표작 〈에티카〉는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까지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른 명저로 손꼽힌다. 그만큼 어지간해서는 읽기 힘든 난해한 책인데, 내들러는 앞선 책들에서처럼 여기서도 최대한 원전에 가까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스피노자 사상을 정리해 보여준다.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이다.
슬픔과 노여움을 버리고
스피노자는 가업을 포기하고 철학에 전념하면서 쓴 첫 저작에서, “삶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궁극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탐구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힌다. 처음부터 자신의 학문적 과제가 도덕철학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전지전능한 인격신의 존재도, 세상이 특정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목적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선악이란 것도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무의미한 세상에서 언젠가는 죽음을 맞는, 가혹한 운명의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행복하게 활기차게 살아갈 방법이 있기는 할까?”
다행스럽게도 방법은 있다. 너무 어려워서 따라 하기 힘든 게 탈이지만. 앞서 보았듯 스피노자는 선악은 관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선악은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지고 ‘좋은 삶’이라 말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스피노자가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면 〈에티카〉를 쓰지도 않았을 터. 내들러는 스피노자에겐 완전함 또는 선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었으며 “인간 본성의 전형”이라 부른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즉 어떤 사람이 완전한지 아닌지는 그 삶이 전형과 얼마나 가깝냐에 달렸으며, 선과 악은 그런 삶의 전형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럼 “인간 본성의 전형”이란 무엇인가? 이는 자신의 능력과 존재 지속을 위한 노력, 이른바 ‘코나투스’를 최대치로 구현한 인간이며, 외부 사물에서 비롯된 감정이나 견해가 아니라 이성적 인식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자유인”이다. “정신의 힘”을 통해 정념을 억제하고, 자신의 본성에 기초해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자유인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전형이다. 그리고 그가 체현하는 삶은 “최선의 삶”이요 “올바른 삶의 방법”을 보여준다.
아, 나는 정말 자유인이 되고 싶다. 세상의 필연성과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체념하고 등지는 대신 모든 일을 침착하게 견디고 잘 헤쳐” 나가고 싶다. 내 맘 같지 않은 외부 사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강인함과 관대함”으로 나와 타인의 성장을 도우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다. 하나 작은 일에도 파르르 떠는 이 성정으로 자유인은 언감생심.
실망하긴 이르다. 내들러의 스피노자에 따르면 완전한 자유에 이르진 못해도 괴로움을 덜 방법은 있다. 가령 특정 개인이 아니라 외부 원인의 인과성에 주목하는 것. 애증의 대상에 연연하는 대신 그를 만든 무수한 원인과 그를 애증하는 내 안의 원인들에 집중하면 할수록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약화된다고 스피노자는 조언한다. 또한 “미움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등의 “올바른 삶의 지침”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자유인에 가까워지는 길이란다.
고매한 이야기에 정신은 고양되고 가슴엔 모처럼 사랑이 깃든다. 하지만 이 평화가 오래갔으면, 바라는 순간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 나는 다시 슬픔과 노여움에 사로잡힌다. 자유인이 되긴 틀렸다. 그래도 독서의 보람은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사물에 슬퍼하고 노여워하는 노릇은 헛되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이성보다 감정에 지배되기 쉽다는 것, 그래서 사람은 괴롭고 그래서 자유로워지기를 꿈꾼다는 것, 자유로워지려 애쓰며 살다 보면 어느 날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긴 하루가 저물고 있다.
김이경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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