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겨냥한 ‘한·미·일 군사 신동맹’
“일본, 하고 싶은 거 다 해!” 윤석열 대통령이 펼치는 대일본 외교정책을 이렇게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일본 우익세력은 오랫동안 전범국가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를 꿈꿔왔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을 포기하고, 군사력 보유와 교전권을 부인한다. 이 조항 때문에 일본 헌법은 ‘평화헌법’이라 불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정 때 제정된 평화헌법은, 전범국가 일본이 민주주의 대열에 참여하고 경제성장도 이룬 디딤돌이었다.
평화헌법에도 불구하고 일본 우익세력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대외 팽창을 준비했다. 우익에게 평화헌법은 패전의 결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평화헌법까지 개정하려는 일본 보수세력의 뿌리는, 요시다 쇼인의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과 정한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유신 세력으로부터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다. 일군만민론은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라는 논리다. 천황(일본 왕) 아래서 아시아가 공동 번영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정한론은 ‘북해도를 개척하자, 류큐를 일본령으로 하자, 조선을 속국화하자, 만주·타이완·필리핀을 영유화하자’는 내용이다. 요시다 쇼인의 노선에 따라 일본은 조선을 강점하고 만주국을 세운 것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을 설계하고 운영한 장본인이다. 대동아공영권은 1940년에 마쓰오카 요스케 외무장관이 처음 제시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상황에서 전시 블록경제를 구축하고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았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첫 제안자는 아베
대동아공영권의 변종이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17년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으로 등장했고, 바이든 정부가 대중국 견제를 위해 계승한 개념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일본 아베 전 총리다.
2016년 8월 아베 당시 총리는 아프리카개발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태평양과 인도양이라는 두 개 대양을 묶고, 나아가 아프리카 대륙까지 연결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유지해나가자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치밀했다. 2015년 4월28일 미국을 방문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자위대 역할을 세계로 확장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내법 정비도 추진했다. ‘국제평화지원법’을 제정해 외국 군대를 지원하는 명목으로 자위대의 해외 진출을 손쉽게 했다. 아베 총리가 설계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에 숨겨진 구상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요시다 쇼인과 기시 노부스케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까지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 전략’을 수용했다.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미국은 중국 견제가 필요하면 언제나 일본을 활용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을 가져온 강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대표적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공산화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 강점과 군국주의에 대해 관대하게 처리하면서 등장했다. 일본은 대중 봉쇄를 위한 미국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한국은 일본의 방해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고 독도에 대한 영토 야심을 버리지 못한 원인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일본의 대외 팽창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이 중요하다. 미국과 일본은 자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고 움직여왔다. 한국에서도 그동안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을 시도한 정부가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독도에 대한 야욕을 거두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국민은 한·일 군사협력을 반대했다. 전두환 정부도 국민의 반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전두환 집권 시기인 1980년대는 한·미·일 삼국 정부가 모두 강력한 우파 노선을 견지하는 보수 정권이었다. 레이건 대통령과 일본의 나카소네 총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강경 우파 노선에 입각한 보수 동맹을 이끌었다. 나카소네 총리는 일본의 재무장을 위해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했다. 2차 대전 당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그는, 1985년 8월15일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처음으로 A급 전범들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나카소네 총리는 취임 이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다. 그는 “한·미·일 세 나라가 함께 손잡고 태평양 국가로 돌진하자는 것이 나의 외교 전략이었다”라고 말했다. 나카소네 총리는 레이건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과 손잡고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을 추구했다. 그렇지만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하고 공동 번영하는 노선을 취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과거 침략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전범들을 추앙하면서 군국주의 부활을 꿈꾼다면 이를 용인할 아시아 국가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해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바로 그날 일본 기시다 총리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장관은 직접 참배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일본 지도층의 민낯이고 속내다.
윤 대통령은 일본에 따져 물을 것은 묻지 않고, 일본이 원하는 것을 대신 해주기까지 했다. 대통령실은 자체 예산을 써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안전하다는 홍보 동영상을 제작했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지급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이런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 끝에 한·미·일은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3국 정상회담을 했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새로운 군사동맹이 탄생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일 군사동맹이 아니라 ‘삼각협력체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준(準)군사동맹’, ‘유사 군사동맹’이라며 한·미·일 군사 관계가 협력 수준보다 더 강화된 관계라고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동맹이란 적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군사협력 체제다. ‘위협 인식과 대응, 회의체 구성, 합동군사훈련 실시, 군대 주둔’이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4대 요소’다. 미·일 동맹이나 한·미 동맹을 보면 분명해진다. 두 동맹 모두 외부의 무력 공격에 대한 대응을 전제로 4대 요소를 운영하고 있다. 미·일 안보위원회와 한·미 연례안보협의회가 회의체이고, 미·일 합동훈련과 한·미 훈련을 하고 있으며, 주일 미군과 주한 미군이 있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한·미·일 공동성명(캠프데이비드 정신)’, ‘캠프데이비드 원칙’, ‘협의에 대한 공약’ 등 합의 문서 3개가 채택됐다. 3개 문서로 분산됐지만, 전통적 동맹의 요소와 함께 진화한 동맹의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다만 이 3개 문서는 한국의 안전보장에 대해 중대한 것이지만 조약은 아니다. 국회 동의가 불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는 차이가 있다.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에 ‘진화한 군사 신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일 군사 신동맹’ 구축을 위한 기본 합의문서는 ‘협의에 대한 공약(이하 공약)’이다. 공약은 크게 위협 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한·미·일 3자가 신속하게 협의, 자국의 안보 이익 또는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대체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세 가지 공약은 미·일 동맹의 골간인 미·일 안전보장조약이나 한·미 동맹의 골간인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유사하다. 미·일 안전보장조약은 안전에 대한 위협 발생 시 협의(제4조),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제5조), 미국 육해공군 배치(제6조)로 구성되어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외부의 무력 공격에 의한 위협 시 협의(제2조),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제3조), 미국은 자국의 육해공군 배치(제4조)가 핵심이다. 협의에 대한 공약에서는 군대 주둔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안전보장조약에 따라 미군이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참조).
캠프데이비드 정신(이하 3국 정신)에서는 한·미·일 3국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3국 정상의 연례 회의를 비롯해 각종 회의체를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3국 정신에서 밝힌 회의체는 “최소한 연례적으로 3국 정상,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및 국가안보보좌관 간 협의”를 약속했다. 아울러 ‘3자 인도-태평양 대화’를 비롯한 경제 관련 회의도 운영하기로 했다. 이 3국 정신에서 밝힌 회의체는 미·일 동맹이나 한·미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회의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높고 다양하다. 전통적인 외교·안보와 관련한 이슈를 3국의 최고위급에서 다루는 회의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미·일 ‘미치광이 이론’ 주인공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을 발표하며 한·미·일 협력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워싱턴 선언의 최대 성과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꼽으면서 나토의 핵 공유와 비교하기도 했다. 당연히 한·미 핵협의그룹에 일본이 참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시사IN〉 제817호 ‘한·미 핵협의그룹에 숨겨진 비밀’ 기사 참조 https://www.sisain.co.kr/50267). 하지만 캠프데이비드 정신은 한·미·일 핵협의그룹을 빙산의 일각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대한 협의체를 탄생시켰다(〈그림 2〉 참조).
한·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이 아닌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이라고 말하기에는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의 수준이 너무 높아져버렸다. 냉전시대에 태어난 전통적 동맹인 한·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요소를 구비하면서도, 21세기에 맞게 진화한 동맹의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군사적 위협뿐 아니라 비군사적 위협까지 포괄하며, 안보 위협의 범위를 추상화해 다양한 요인에 대해 3국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동맹의 작동 범위도 1국 차원이 아닌 인도·태평양으로 확대했다. 무엇보다 안보를 위협하는 대상이 북한에서 중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21세기에 맞게 동맹의 개념을 진화시킨 ‘한·미·일 군사 신동맹’이 캠프데이비드에서 태어난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중국과 분리 및 대결을 의미하는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바뀌었다(〈시사IN〉 제820호 ‘심리적 G8 국가가 놓치고 있는 것’ 기사 참조 https://www.sisain.co.kr/50391). 디리스킹이란 경쟁할 것은 경쟁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위협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캠프데이비드에서 태어난 한·미·일 군사 신동맹은 중국을 위협 요소로 본다. 이는 미국의 디리스킹 정책과 모순되지 않는다. 미국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중국과 경쟁 및 협력으로 정책 전환을 하면서도 한반도에서는 중국과 대결하는 정책을 조화시킨 것이 한·미·일 군사 신동맹이다.
한반도는 또다시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다. 기회를 엿보는 북한은 도발의 강도를 높이며 긴장 고조에 나설 것이다. 일본 자위대는 한·미·일 군사 신동맹에 따라 한반도에 기웃거릴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제시한, 협상 상대방에게 비이성적 행위를 저질러 협상 테이블에 이끌어내는 ‘미치광이 이론’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그날이 곧 닥칠 수도 있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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