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맞은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국내 영향은?[이슈속으로]

권다희 기자 2023. 9. 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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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금리·정책 불확실성 리스크…韓 기자재 기업 영향 주목
2018년 9월 5일, 영국 블랙풀 연안에서 오스테드가 운영하는 월니 익스텐션 해상 풍력 발전 단지 전경/로이터=뉴스1


덴마크 에너지 기업이자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 오스테드가 지난주 미국 해상풍력 사업에서 160억 크로네(약 3조원)의 예상 손상(impairment)을 입을 수 있다고 밝힌 뒤 전 세계 청정에너지 사업에 대한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심화된 공급망 병목과 비용 상승이 이어지고 있지만, 풍력 터빈 수주가 역대 최대로 늘어나는 등 악재가 바닥을 쳤다는 진단도 있다. 오스테드의 발표 후 시장의 주목도가 높아진 글로벌 해상풍력 산업의 쟁점을 살펴본다.

1. 미국산 없는 데 미국산 쓰라니…유럽 대기업의 호소
오스테드가 지난달 29일 미국 내 3곳의 해상풍력 사업에서 초래될 수 있다고 밝힌 손상 원인은 공급업체의 공급 지연(50억 크로네), 높은 이자율(50억 크로네), 미국 정부의 투자 세액공제 감소 가능성(60억 크로네)이다. 청정에너지 사업과 관련한 대부분의 위험들이 얽힌 결과다.

공급망 병목 및 고금리가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줄곧 이어져 온 이슈인 데 비해 오스테드가 꼽은 예상 손상의 가장 큰 이유는 미 정부의 세제 혜택 축소 가능성이다. 미 정부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30%의 ITC(투자세액공제)를 제공하며, 추가 조건에 따라 40%까지 이 혜택을 확대한다. 오스테드는 지난 6월까지 미국 해상풍력 프로젝트(오션윈드1, 선라이즈윈드)에서 40%의 세제 혜택을 받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후 발표된 미국 재무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적용받는 혜택은 30%가 유력하다.

세제혜택이 예상보다 줄어든 이유는 미국 정부의 로컬콘텐츠 규정(자국산 부품 일정 비중 이상 사용 의무화) 때문이다. 오스테드는 "30% 이상의 ITC를 받으려면 프로젝트가 현지 공급업체로부터 조달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미국 공급망은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미국산 철강, 선박, 터빈을 쓰고 싶어도 미국 안에 이를 만들 수 있는 제조 기반이 아직 없다는 의미다.

오스테드는 "미 연방 관계자들이 1세대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최대의 ITC를 주는 게 산업, 미국 공급망, IRA가 의도한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거란 걸 인식하기 바란다"고 했다. 또 "(미국의) 연방 관계자들과 협력해 현지 공급망을 성장시키고 프로젝트가 (40%의 혜택을 받을)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솔루션을 찾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2. 공급망 병목, 청정에너지 산업 막을까?
청정에너지 산업, 특히 풍력산업의 공급망 병목은 우크라이나 전쟁 후 업계의 가장 큰 우려 요인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팬데믹 기간의 공급망 병목,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를 위한 풍력개발 증가, 전쟁 후 에너지 안보를 위한 유럽국가들의 풍력발전 목표 상향조정 등이 이어지며 풍력발전 기자재 수요도 급증했다. 팬데믹 기간 단행 된 전세계 통화 부양책발 인플레이션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며 원자재 값이 급등했고, 개발 수요 급증으로 터빈·케이블 등의 기자재 생산비용이 크게 올랐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철강과 구리 가격은 2019년에 비해 40% 높은 수준이다. 터빈 가격도 2년 새 40% 가까이 올랐다. 공급 대비 많은 수요로 원가는 더욱 오르고 기자재 조달은 지연됐다.

개발사들의 예상 손실은 늘어났다. 사업비용이 연쇄적으로 상승했지만 전력 판매 가격은 그만큼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기자재 조달 지연으로 프로젝트 완공 시점이 늦춰져 수익 창출이 지연되면서다. 크고 작은 풍력개발 프로젝트들이 철회된 배경이다. 유럽에서는 지난 7월 스웨덴 개발사 바텐폴이 영국에서 추진하던 1.4기가와트(GW) 규모 해상풍력 단지 건설을 중단한 사례가 발생했다. 지난달엔 유럽 최대 개발사 중 한 곳인 이베르드롤라가 경제성 악화를 이유로 위약금을 내고 미국 메사추세츠 풍력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우호적이지 않은 업황에도 불구하고 풍력 산업이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 역시 감지된다. 풍력산업 업황의 선행지수 격인 터빈 주문이 사상 최대로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리서치 기업 우드매킨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풍력 터빈 주문량은 전년동기대비 12% 늘어난 69.5GW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 풍력 시장인 중국의 신규 주문은 성장이 정체했지만 중국 외 지역의 주문이 늘었다. 특히 북미지역 주문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배 증가한 7.7GW로 지역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육상풍력을 제외한 해상풍력 터빈 주문도 전년 동기에 비해 26% 성장한 12GW로 사상 최대였다.

우드매킨지의 글로벌 재생에너지 연구 책임자인 루크 레반도프스키 부사장은 "올해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수요가 많아 매우 고무적"이라며 "공급망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조달 결정을 촉발할 만큼 상황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해상풍력 시장에서는 한동안 모멘텀이 구축돼 왔다"며 "프로젝트 개발자가 승인 및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거래가 조건부로 이뤄졌다"고 했다.

SK오션플랜트 하부구조물 제작 과정의 일부/사진=권다희 기자

3. 한국 풍력 공급망 기업 영향은?
오스테드 발표가 한국 증시에 처음 반영된 지난달 31일 한국 주요 풍력 기자재 기업들의 주가도 4~5% 급락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받을 영향은 제한적일 거란 평가가 현재는 우세하다. 전세계 정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 및 유럽의 에너지 안보 강화, IRA 등으로 글로벌 풍력 시장이 꾸준히 커질 거란 전제에서다. 오히려 현재의 기자재 공급 부족이 한국 공급망 제조업체들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일 보고서에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생산기업인 SK오션플랜트에 대해 "오스테드 주가 급락 원인은 해상풍력 업황의 하향 때문이 아니라 기자재 공급난이기 때문에 오히려 SK오션플랜트의 가치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했다. 한 연구원은 같은 날 풍력 타워 제조업체 씨에스윈드에 대해서도 "가격협상력에서 기자재 업체들이 유리한 상황"이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안주원 DS투자증권 연구원은 4일 풍력터빈 베어링 제조업체인 씨에스베어링에 대해 "오스테드의 미국 해상 풍력 프로젝트 이슈 등으로 풍력산업에 대한 우려가 부각됐지만 일부 해상 풍력 사이트에 한정된 이벤트이며 중장기 풍력시장 성장성은 변함 없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 등 중국 외 풍력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비용상승 압박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당국이 역내 제품을 쓰도록 요구하는 방침을 완화한다면, 이 역시 한국을 포함한 역외 기자재 기업들에게는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유럽 국가들 역시 미국처럼 역내 공급망 구축을 바라고 있지만, 당장 기자재 공급 부족으로 중국 기업들과의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RWE는 노스랜드파워와 진행 중인 독일 북해 지역 1.6GW 규모 해상풍력 발전 클러스터에 쓸 하부구조물 공급업체로 중국 다진 오프쇼어를 선택한 게 대표적이다.

유럽 풍력산업협회 윈드유럽의 크리스토프 지프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머니투데이에 "유럽 풍력 시장에서 케이블, 변전소, 해상풍력 선박 및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의 공급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비유럽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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