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UP] 팔레트·물통 없이 수채화 완성… 어디서든 그리는 ‘소울팔레트’

최온정 기자 2023. 9. 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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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그림 여백에 물감… ‘물붓’으로 쉽게 그려
“수채화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밑그림을 그려주면 채색을 곧잘 합니다. 작은 장치만 마련해줘도 사람들은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대중적인 문화로 만들어보려고 소울팔레트를 제작 했습니다.”

홍익대 미술대학 출신인 이예린 쏘아 대표는 프리랜서 미술강사로 일하던 2017년 우연히 떠난 동유럽 여행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수채화를 그리는 ‘그림 버스킹’을 진행했는데, 밑그림만 그려주면 초보자도 곧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예린 쏘아 대표./쏘아 제공

이 대표는 귀국 직후 수채화를 쉽게 그릴 수 있는 제품을 구상했다. 을지로에 1년간 거주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2018년 소울팔레트를 만들었다. 소울팔레트는 일반적인 그리기 키트(kit)와 달리 밑그림 종이 여백에 수채화 물감 15종을 담아놔 따로 팔레트를 구비할 필요가 없다. 또 ‘물붓’을 사용해 물통이 없어도 된다.

제품을 만든 뒤에는 지방자치단체와 미술관, 공공기관을 찾아다니며 홍보했다.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조금씩 성과가 났다. 지자체 및 공공기관 50여 곳과 계약을 맺었고, 학교에도 납품하기 시작했다. 텐바이텐이나 핫트랙스,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에도 납품하고 있다.

현재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매출을 늘리기 위해 상품을 다변화하고 있다. 풍경화 위주였던 밑그림 도안에 정물화와 민화를 추가했다. 최근에는 사업성을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3 예술분야 초기창업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센터는 예술 유통 활성화와 예술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이예린 대표를 서울시 마곡동 쏘아 본사에서 만났다.

―창업 계기는.

“2015년부터 네이버·크래프톤 등 대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했다. 1000명이 넘는 수강생을 가르쳤는데, 그림 그리기에 자신감이 없어서 위축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수강생의 자신감을 북돋아 줄 방법을 찾다가 2018년 소울팔레트를 개발했고,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작년 6월 창업했다.”

―시중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명화 그리기 키트가 많이 유통되고 있다. 왜 수채화를 선택했나.

“야외에서도 그릴 수 있는 그리기 키트를 만들고 싶었다. 아크릴은 물감이 걸쭉하고 잘 풀어지지 않아 그림을 완성하려면 많은 양이 필요하다. 건조되면 고무처럼 굳어서 물감 용기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수채화 물감은 작은 양으로도 많이 그릴 수 있고, 굳어진 뒤에도 물을 묻히면 다시 쓸 수 있다. 휴대성을 높이려면 수채화 물감을 사용해야 했다.”

소울팔레트는 밑그림 여백에 물감 15종을 담았다. 또 물통과 붓을 하나로 합친 물붓을 사용해 팔레트나 물통 등 별도의 준비물이 필요 없도록 했다./최온정 기자

―수채화는 그리는 사람에 따라 완성도가 다를 텐데.

“사람들이 완성본을 보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세부 구성요소가 넓은 그림 위주로 도안을 그렸다. 원경보다는 근경 위주로 밑그림을 골라 대상이 잘 드러나게 했다. 같은 밑그림을 사용해도 물붓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더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다. 정교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수채화를 완성한 후 밑그림 라인을 펜으로 따라 그리도록 안내하고 있다.”

―소울팔레트 개발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종이를 고르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너무 얇으면 물에 닿기만 해도 종이가 우그러질 수 있어 적어도 250gsm(Grams per Square Meter·250gsm은 1㎡당 무게가 250g)을 넘어야 한다. 또 약간 거칠어야 수채화 색감을 잘 살릴 수 있다. 60개가 넘는 종이를 구입해 수채화를 직접 그려보면서 적합한 종이를 찾았다.

밑그림 종이 여백에 물감을 찍어 담는 일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수작업으로 물감 15종을 일일이 찍었다. 하지만 2020년 한국조폐공사가 운영하는 청년예술가 지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공사의 지원을 받아 충남대학교 및 카이스트 출신 대학생들과 반자동 기계를 제작했다. 현재는 한 시간에 200개가량 생산하고 있다.”

―판로를 뚫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지역 축제를 주관하는 구청이나 군청, 시청을 찾아가 제품을 홍보했다. 관광객들이 수채화 키트로 지역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면 행사를 더 다채롭게 꾸밀 수 있다고 설득했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절반 정도는 협업에 응했다. 현재까지 김포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환경생태학습원 등 공공기관 약 50곳에 소울팔레트를 공급했다.”

―일반 소비자도 구입할 수 있나.

“지금도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소울팔레트를 판매하고 있다. 핫트랙스나 텐바이텐, 국립중앙박물관·경기도박물관 온라인샵, KT&G 상상마당, 교보문고 등에서 제품을 살 수 있다. 소비자들이 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제품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민화를 소울팔레트로 제작했다. 조만간 와디즈를 통해 출시할 예정이다.”

―앞으로 계획은.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사진을 수채화 그림으로 전환해 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작가가 밑그림을 직접 그릴 필요가 없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고객들에게 더욱 다양한 예술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작 방식을 고도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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