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열불나 서귀포에서 날아왔다”… 이화그룹 상폐 결정에 집단 행동 나선 주주연대

문수빈 기자 2023. 9. 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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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연대, 지분 확보해 경영 참여 계획
경영 정상화 위해 한국거래소에 개선 기간 부여 요청

“제주도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 이화전기에 몇천만원이 묶여있는데 상장 폐지를 한다니 잠이 안 와요. 대표가 잘못한 건데 피해는 왜 주주들이 봐야 하죠?”

이화전기 투자자 김모(65)씨는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귀포에 사는 김씨는 더는 집에 있을 수 없었다며 서울 여의도에 왔다. 이화전기에 대해 상장 폐지를 결정한 한국거래소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엔 김씨 외에도 이화그룹(이아이디·이화전기·이트론) 투자자 약 100명이 모였다.

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이화그룹주 소액주주연대가 ‘이화그룹주 거래 중지 해제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한국거래소의 이화그룹 3사(이화전기·이아이디·이트론) 상장 폐지 결정에 대해 개선 기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강정아 기자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한국거래소는 기업심사위원회를 열고 이화전기, 이아이디, 이트론에 대해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이런 결정에는 이화그룹 경영진의 비위와 회사의 허위 공시가 영향을 미쳤다. 이에 전날인 8일, 김씨를 포함한 이화그룹주 소액주주연대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이화그룹주 거래 중지 해제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의 요구는 개선 기간 부여였다. 상장 폐지 사유를 해소하게끔 개선할 시간을 달라는 뜻이다. 이아이디처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상폐를 통보받은 후 15영업일 이내에 한국거래소에 이의신청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20영업일 안에 상장공시위원회를 열고 상폐 여부를 재심의해야 한다.

이화전기와 이트론 같은 코스닥 상장 기업은 절차가 살짝 다르다. 기업심사위원회가 상폐를 결정했다면 이후 열리는 코스닥시장위원회가 그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유가증권시장의 상장공시위원회와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상폐 또는 개선 기간 부여 등 둘 중 하나의 답을 내린다.

이날 김현 이화그룹주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27만명의 시민을 흡혈의 대상으로 여기고 기만한 썩어빠진 이화그룹의 인적 쇄신은 우리 피해 주주들이 합심해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물적 쇄신까지 다 해낼 것이니 한국거래소는 개선 기간 부여로 우리 피해 주주들의 노력에 답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폐의 직접적인 원인은 임직원의 일탈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영준 전 이화그룹 회장과 김성규 총괄 사장 등은 2012년부터 11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2015~2017년 허위 공시로 124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다. 이 외에도 회사에 187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12억원의 증여세·양도소득세 포탈 혐의, 173억원을 불법으로 해외 반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열린 이화그룹주 소액주주연대 3차 집회가 열렸다. /강정아 기자

주주연대는 한국거래소의 안일한 행정이 피해 금액을 더 키웠다고 봤다. 앞선 5월 10일 한국거래소는 이화그룹 3사의 거래를 정지시키고 회사 측에 전·현직 임원의 횡령·배임 혐의를 물었으나, 회사 측은 혐의 금액을 줄여서 공시했다.

이 때문에 3사의 거래는 같은 달 12일 재개됐다. 하지만 실제 혐의 금액은 수백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재개 당일 한국거래소는 재차 이들 종목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거래가 재개됐다가 정지된 하루 동안에만 개인 투자자는 이아이디 76억원, 이화전기 38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김 대표는 “일차적인 책임은 이화그룹에 있지만 피해 확산의 책임은 이화그룹의 허위 공시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성급하게 거래 재개를 결정한 한국거래소에 있다”며 “주주들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주연대는 이화그룹의 증권시장 복귀를 위해 회사 지분을 확보해 적극적으로 내부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에 따르면 8일 오후 3시 기준 연대 측은 이화전기 지분 12.77%, 이아이디 12.28%, 이트론 7.04%를 확보했다.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확보하면 임시주주총회 소집, 이사 해임 청구,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아이디·이화전기·이트론은 순환출자 구조인데, 주주연대는 이를 끊고 경영진을 교체해 회사의 경영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했다. 지난 6월 기준 이아이디는 이트론 지분 29.55%, 이트론은 이화전기 지분 18.1%, 이화전기는 이아이디 지분을 18.51% 갖고 있다.

김 대표는 “3사의 순환출자를 끊을 때까지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며 “지분을 충분히 확보해 현 경영진을 끌어내릴 수 있을 때 임시 주총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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