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집 사세요’ 정책에 내년 한 해 9조…출산율 반등할 수 있을까
신생아 특공·특례 대출, 청약 때 불리하지 않게
월세보다 전세가, 전세보다 자가 보유가 출산 가능성 높아
올해 2분기(4~6월)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70명으로 떨어진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대책이 발표됐다. 부모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고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늘리겠다는 내용도 담겼지만, 가장 큰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주거 지원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만 낳았다면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신생아 특별공급’으로 대표되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관련 예산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 656조9000억원의 1.4% 수준인 9조원 규모다.
그동안 한국의 출산율이 빠르게 떨어진 원인 중 하나로 지난 정부 시절 빠르게 오른 집값이 꼽혀왔다.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결혼해서 살 집을 마련하는 문제로 결혼 시기를 늦추지 않아도 되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출산 극복 5대 핵심과제 중 주거지원 예산이 58.4%
9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저출산 문제 해결 예산으로 15조4000억원을 편성했다. 지난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저출산위 회의에서 발표한 5대 핵심분야 관련 예산을 합친 것으로, 아동수당과 첫만남이용권 등 이미 추진되고 있는 저출산 대응 정책 예산은 집계하지 않았다.
5대 핵심분야 예산은 ▲돌봄과 교육 1조3000억원 ▲일·육아 병행 지원 2조2000억원 ▲주거지원 9조원 ▲양육비용 부담 경감 2조9000억원 ▲건강한 임신·출산 지원 504억원이다. 저출산 극복 5대 핵심과제 중 주거지원 예산이 58.4%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다.
①신생아 특공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내놓은 주거지원 정책 중 눈에 띠는 것은 ‘신생아 특공’이다. 공공분양주택 ‘뉴홈’에 신생아 특공을 신설해 연간 3만호 정도를 공급한다. 입주자 모집 공고일로부터 2년 이내에 임신·출산하기만 하면,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특공을 받을 수 있다. 민간분양은 생애최초·신혼부부 특공 때 출산 가구에 먼저 기회를 준다. 우선공급 물량은 연 1만호다. 생애 최초·신혼 부부 중 2세 이하 출산 가구에게 물량을 우선 공급하는 방식이다.
공공임대주택도 자녀를 출산했으면 우선 공급한다.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아 3인 가구가 되면 기존에 살고 있던 31~60㎡ 면적의 주택에서 40~80㎡ 면적의 집으로 이주할 수 있다. 역시 연 3만호 정도 공급한다.
②신생아 특례 대출
주택을 구입할 때 필요한 자금은 ‘신생아 특례 대출’로 최대 5억원까지 최저 연 1%대의 낮은 금리로 빌려준다. 기존에는 연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신혼부부나 6000만원 이하인 미혼 가정이어야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내년부터는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연 소득 1억3000만원 이하인 출산가구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맞벌이 부부에 맞춰 기준을 현실화한 셈이다.
대출 금리는 소득에 따라 연 1.6~3.3%로 5년간 적용된다. 시중은행보다 1~3%포인트 저렴하다. 또 아이를 더 낳으면 한 명당 금리를 0.2%포인트 인하해주고, 특례금리도 5년간 연장해준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주택 가액도 기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했다.
신생아 특례 전세자금 대출 역시 소득이 1억3000만원 이하인 가구까지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미혼·일반 전세대출 소득 요건은 5000만원, 신혼부부는 6000만원인데 비해 여건을 대폭 완화했다.
③청약 시 맞벌이 부부 소득기준 합리화
청약 제도도 내년 3월부터는 출산·혼인 가구에 유리하게 바꾼다. 현재는 미혼일 때 특공 소득 요건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00%(일반공급)이고, 결혼하면 140%(특별공급)가 적용된다. 결혼하면 청약할 때 불리해지니 결혼식은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자녀 계획도 세우지 않는 맞벌이 부부들이 종종 있었다.
내년부터는 공공주택 특공 때 추첨제를 신설해 맞벌이 가구에는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200%(1302만원) 기준을 적용한다. 제때 법적인 부부가 되고 아이도 낳고 집도 분양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또 같은 날 발표되는 청약에 남편과 부인이 각각 신청해 중복 당첨된다면 먼저 신청한 건을 유효 처리하기로 했다. 지금은 중복 당첨 때 둘 다 무효로 해 청약 기회가 사실상 1번으로 한정돼 있다. 민간분양 청약 때도 특별공급 ‘다자녀’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바꾼다.
◇“사실상 ‘결혼 페널티’라고 불리던 주거 지원 제도 개선”
자녀를 출산한 가구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자는 아이디어는 올해 초에도 나왔다. 나경원 전 의원은 저출산위 위원장이었던 올해 1월 헝가리식 ‘대출 탕감’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신혼부부에게 2억원을 연 1% 이율로 20년간 대출해주고, 자녀를 1명 낳으면 이자 탕감, 2명 낳으면 원금 3분의1 탕감, 3명 낳으면 원금 3분의 2 탕감, 4명 낳으면 전액 탕감해주자는 방안이었다.
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정부가 발표한 출산가구 주택구입자금 지원 정책에 대해 “정부가 주거안정에 9조원을 투입한다고 하니 환영한다”고 했다. 이어 대출탕감 제안과 관련해 “추계에 따르면 연 12조원 정도가 소요된다. 20년 후 예산 규모에 비추어 연 12조원은 재정이 감내할 정도일 것”이라며 “앞으로 출산아 수에 따라 이자와 원금을 조금 더 과감하게 낮춰주는 것을 검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여당에서 출산과 연계한 주택 구입·전세 자금 지원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지난 정부에서 집값이 급등하며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주택가격 상승이 출산율 하락에 미치는 동태적 영향 연구’에서 집값이 1% 이상 상승하면 그 영향이 7년까지 이어져 합계 출산율이 향후 7년간 약 0.014명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집을 보유하고 있으면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20년 펴낸 ‘거주유형이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전세 거주 시 첫 출산 가능성은 자가 거주보다 약 10.1%포인트 감소하고, 월세 거주 시 자가 거주보다 19.5%포인트 감소한다”고 했다.
김영미 저출산위 부위원장은 “사실상 ‘결혼 페널티’라고 불리던 주거 지원 제도가 개선되는 등 국민 의견이 반영된 예산 편성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그간의 출산장려 정책이 기혼 가구에 혜택을 부여해 간접적으로 출산을 장려했던 것과 달리, 이번 방안은 혼인 여부와 관계 없이 출산에 대해 직접적으로 혜택을 부여한다”며 “집 때문에 출산을 망설이는 부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최근 주택 인허가 건수가 급감해 ‘신생아 특공’ 등으로 주택을 차질없이 공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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