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겹치기 사업에 비리까지… ‘큰 그림’ 없는 새만금의 현실

군산·부안=윤희훈 기자 2023. 9.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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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될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유사 컨텐츠 전시관도 길 건너 설치
‘툭하면 兆’ SOC도 재검토 필요
6일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서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윤희훈 기자

밤공기가 차가워져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9월 8일)가 성큼 다가온 지난 6일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는 여전히 강렬한 햇볕이 내리쬈다. 서해에서 간간이 바닷바람이 불어와 머리의 땀은 식혔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막을 길이 없었다. 지난달 8일 스카우트 대원들이 잼버리 야영지를 떠나고 한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야영장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각종 스티로폼과 기자재 등 행사 때 나온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준비만 늦은 줄 알았더니, 수습도 마찬가지였다.

야영장 한 곳에선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잼버리 개최를 위해 건립한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였다. 공사장 옆 건축허가표지판에는 공사 기간이 2022년 6월 7일부터 2024년 3월 7일까지로 기재돼 있다. 당초 이 건물은 새만금 잼버리의 운영본부로 활용하다 이후 청소년을 위한 체험학습시설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었으나, 부지 매립이 늦어지면서 완공도 지연됐다. 행사를 위해 480억원을 투입한 사업이었지만, 결국 용도를 잃었다. 완공 이후도 문제다. 건물을 올린 땅이 낮게 매립돼 있어 장마철 등에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락없이 ‘애물단지’가 될 처지다.

새만금방조제 부안 방면 종점 지점에 위치한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오른쪽)과 새만금 홍보관(왼쪽). /윤희훈 기자

새만금에 들어간 헛돈은 곳곳에서 보인다. 잼버리 야영장에서 새만금방조제 쪽으로 향하다 보면 두 개의 건물을 만난다. 하나는 ‘새만금 홍보관’, 다른 하나는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이하 간척박물관)이다. 2차선 차도를 마주 보고 있는 두 건물의 목적은 동일하다.

두 곳은 ‘새만금의 과거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새만금 홍보관), ‘새만금 간척사업 등 우리나라의 간척 역사와 문화유산 홍보’(간척박물관)라고 역할을 소개한다. 건축 연면적 역시 새만금홍보관이 3610㎡, 간척박물관이 5440㎡로 크게 차이가 없다.

유사한 콘텐츠를 담은 전시관을 굳이 두 곳을 만들었어야 할 이유를 알기 어렵다. 관람객을 분산해야 할 정도로 관람객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날 하루 동안 간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306명이었다. 이에 대해 간척박물관 관계자는 “새만금홍보관은 새만금 사업 자체에 대한 홍보 목적이지만 박물관은 간척사업과 간척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면서 “다만 외부에서 ‘가까운 곳에 두 시설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홍보관을 박물관의 별관처럼 이용한다든지 시너지를 낼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긴 하다”고 말했다.

새만금 기본계획. /새만금개발청 제공

이 같은 상황은 정부가 재검토할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대상으로 꼽은 새만금 국제공항 계획에서도 마주한다. 정부는 군산공항 바로 옆에 새만금공항을 짓기로 했다. 군산공항으로부터 ‘1.3㎞ 떨어진 지점’이라고 하는데, 숫자상 거리일 뿐 그냥 바로 옆이다.

군산공항은 미군 기지와 함께 민간항공기가 뜨는 ‘민군’ 공항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군산과 제주를 오가는 항공기가 매일 3편(왕복 6회)씩 운항하다 지난 4월부터 운항이 멈췄다. 미군의 활주로 공사가 이유였다.

민간 항공기가 뜨지 않는 군산공항은 적막감이 흘렀다. 대기실에는 공항직원 3명이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직원들은 항공편이 없는 공항 터미널에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니 ‘무슨 일?’ 하는 눈으로 쳐다보다, 화장실로 향하니 다시 TV로 얼굴을 돌렸다.

5개월 동안 멈춘 군산-제주 항공편은 오는 15일 운항을 재개한다고 한다. 다만 항공편은 1편 줄어든다. 이용객 감소에 따른 항공편 조정으로 전해졌다. 군산공항은 매년 30억원가량의 적자를 보고 있다.

6일 군산공항 터미널 앞에 차들이 주차돼 있다. 이날 예정된 민항기 운항 일정은 없었다. 터미널 앞의 차량은 공항 직원 소유로 추정된다. /윤희훈 기자

국내 공항은 인천, 김포, 제주, 김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운영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 지을 새만금공항 역시 적자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사전타당성용역에서 새만금공항은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479로 경제성 판단 기준인 ‘1′을 충족하지 못했다.

일각에선 군산공항 확장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꼬집는다. 이에 대해 지역에서는 “군산공항은 미군기지로, 중국 민항기의 자유로운 이착륙 보장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가 관제 통제권을 갖는 민간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 짓는 민간공항도 현재 입지상 미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진 않아 논란이 있다.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북쪽(군산)에서 남쪽(부안)으로 내려왔다. 오른쪽은 서해 바다, 왼쪽은 방조제 안 인공 호수이다. 방조제와 최근 개통한 새만금 동서도로가 만나는 지점의 서쪽에선 신항만 공사가 한창이었다. 새만금신항만은 새만금 산단 등 배후산업단지를 지원하고 대중국 교역 확대를 대비한 미래 거점 항만이다. 새만금신항만에 투입되는 총 사업비는 3조원이 넘는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북측 방파호안 및 관리부두, 접안시설 공사 등으로 438억원이 배정됐다. 새만금 신항만 역시, 기존 군산항과의 차별화가 과제다. 다만 군산항은 수심이 얕고, 조석간만의 차가 큰 서해 특성 상 큰 배의 접항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신항만의 사업적 필요성은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6일 새만금 수상 태양광 실증단지의 태양광 패널 위에 새들이 쉬고 있다. /윤희훈 기자

신항만 맞은 편, 방파제 안쪽은 ‘스마트 수변도시’ 매립지다. 매립을 늘려가고 있는 이 지역에 글로벌 교육, 복합의료 서비스, 관광·테마파크 등 복합개발을 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스마트수변도시와 잼버리 야영장이 포함된 ‘관광레저용지’, 새만금 동서도로를 잇는 ‘지역간 연결도로’를 짓는 데만 1조원 이상의 사업비가 앞으로 투입돼야 한다.

스마트 수변도시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신시도와 야미도가 나온다. 야미도 인근 휴게소에서 보이는 새만금 방조제 안쪽 해역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 비리 복마전으로 거론되는 ‘새만금 풍력발전’ 사업의 예정지였다. 애초 육상 풍력으로 분류됐던 게 해상 풍력으로 바뀌면서 가중치가 달라졌고, 3500억원 규모의 추가 수익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감사원이 감사에 나서기도 했다. 감사원은 해당 사업권을 국외 자본에 넘기려다 적발된 A 교수 등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새만금 풍력발전단지의 북쪽에선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상 태양광 실증 사업이 진행 중이다. 수상 태양광 패널은 새들의 휴식처였다. 바닷물의 염분기와 갈매기의 배설물로 뒤덮인 태양광 패널을 보며 발전 수익보다 관리 비용이 더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만금 국가산단 5공구에 입주한 두산퓨얼셀의 공장. 해당 공구는 아직 매립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두산퓨얼셀은 빠른 공장 가동을 위해 매립이 된 지역에 공장을 지었다. /윤희훈 기자

1991년 새로운 농경지 확보를 위해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방조제 공사를 시작한 이후 30년 넘게 이어져 온 새만금의 최종 모습은 어떻게 될까. 30년이 지난 지금도 전체 간척 예정지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최종 완성까진 앞으로도 30년을 더 기다려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새만금 기본계획 청사진은 ‘205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 시작 이후 매년 7000억원 정도의 돈을 매립에 쏟아붓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새만금 기본계획을 다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핵심 키워드는 ‘기업’으로 잡았다. 목적성이 불분명한 농생명용지를 산업·연구 목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노태우정부때만 해도 쌀이 부족해 농지가 필요했으나, 이제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안 팔리고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하는 데만 1조원을 써야 할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 땅을 간척해 농업용지를 늘리는 것은 비용 낭비다. 특히 이 지역은 농업용수 확보가 쉽지 않고, 토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매립해 운영 중인 농생명용지도 농업용수가 필요하지 않은 축산용 조사료만 재배 중이다.

안그래도 새만금 국가산단에 기업은 입주할 땅이 부족하다고 한다.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새만금산단 1, 2 공구는 분양·입주율이 90%에 이른다. 사실상 완판이다. 5, 6공구도 입주가 빨라지고 있다. 현재 매립이 진행 중인 5공구에 두산퓨얼셀은 벌써 공장을 지었다. SK온과 에코프로, GEM 이 합작한 ‘지이엠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와 LG화학 입주가 예정된 6공구의 매립도 예정보다 앞당길 방침이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산업단지 내 매립공사 착공을 준비 중인 7, 8, 9공구가 분양 물량으로 남아 있지만 현재 들어오고 싶어 하는 기업 수요를 감당하기엔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새만금개발통합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재수립할 기본 계획의 우선순위는 기업의 수요를 파악해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며 “기업이 들어와야 지역 고용이 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지역 경제 차원에서도 SOC보다 이게 더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대규모 재정이 들어가는 SOC에 대해서는 세밀한 과학적 검증이 필수”라며 “경제성과 경쟁력이 불투명한 계획은 전면 재검토하고, 기존 시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통합적인 운용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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