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일상으로 스며든 방법[서평]
자본주의 인문학 산책
조홍식 지음|한국경제신문|1만9800원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21세기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 내는 제도는 자본주의다. 현대 사회의 강력한 이 경제 체제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이 지배하면서 커다란 불평등을 낳았지만 동시에 수많은 기회와 물질적 풍요를 제공했다. 지난 세기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겨루면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시민에게 물질적 풍요를 제공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무릎을 꿇었고 점차 확산된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통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가 사는 지구촌을 평정했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의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일상의 영역에서 그 요소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당대의 문화적인 시대상과 사회상이 담겨 있고 역사·미학·경제학적 의미까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오늘날 당연한 것처럼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자본주의 세계가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부를 생산해 내는 자본주의를 살펴보는 데 왜 문화의 관점이 필요할까. 자본주의의 생성뿐만 아니라 확산 과정에서도 문화의 상호 작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숭실대에서 정치경제 분야를 가르치며 그간 사회과학·인문학적 시각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글쓰기를 해 온 조홍식 교수는 그저 경제학적 시각만으로는 자본주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문화의 관점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일 수 있다고 전한다. 인류의 물질적 발자취를 대중적인 접근법으로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그가 특별히 주안점을 둔 부분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시켰는지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창조되고 교류하며 발전해 왔는지 지난 16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역사 과정을 되짚으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파헤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3가지 아이템은 오랜 세월 동안 굳건히 자리를 유지해 온 자본주의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선물한다. 지구촌 물질문명을 매개로 새롭게 이해하는 ‘자본주의 답사기’인 셈이다.
저자가 가장 먼저 풀어내고자 한 부분은 인간 삶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 영역이다. 가장 기초적이기에 문화의 힘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부분이라고 여긴 때문이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언어·문화·신분이 달라진 인간의 먹거리인 음식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 쓰는 인간의 본능이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과정으로 거듭난 패션과 건축을 살펴본 뒤 인류 역사상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러 분야를 훑으며 얻게 된 다채로운 발견과 깨달음을 풀어놓는다.
재미있는 것은 겉보기엔 각자 다른 영역으로 보이는 분야들이 들여다볼수록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지혜와 정신이 물질을 지배했다는 신화와 달리 현실과 역사는 인간이 물질과 타협하고 지배받으며 협력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면서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철도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묶었고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교통과 통신으로 하나가 된 인류는 쇼핑하면서 플라스틱 카드로 계산한 뒤 비닐봉지에 담아 오는 세상으로 통일됐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역시 물질 숭배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품고 사는 세상이 바로 자본주의 세상이다.
저자는 말한다. “자본이라는 개념은 원래 새끼를 낳는 가축에서 유래한다. 같은 돈이라도 마당에 묻어 놓으면 자본이 아니다. 은행에 맡기거나 사업에 투자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이자나 이윤을 창출해야 자본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미래를 준비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를 시간과 물질을 조화시키는 제도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만들어 낸 다양한 문화의 이면을 관찰하는 과정은 호기심 충족과 함께 놀라운 재미는 물론 인류의 뿌리와 근간을 돌아보는 지적 유희를 선물할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는 길잡이다.
이혜영 한경BP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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