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위한 운동은 따로 있다… 생존 건강 프로젝트
“몸을 굽힐 때마다 신음이 터져 나온다.” 영국의 한 연구기관이 발표한 ‘중년이 다가옴을 알리는 진단 신호’ 중 하나다. 그러나 모든 중년이 이런 변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최근 나이에 반기를 들고 건강을 챙기는 40·5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일대일 트레이너를 찾아 나서거나 각종 신종 스포츠를 섭렵하며 운동하는 이들의 동기는 한결같다. 생존을 위해서다. 버려야 할 것은 ‘과욕’과 ‘과거’, 채워야 할 것은 ‘근육’과 ‘균형’이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근육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하루 10분도 걷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올해 마흔 살인 최유진씨는 종합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는 워킹맘이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운동 기록을 올리며 해시태그(#) ‘오운완(오늘운동완료)’을 단다. 적당히 보기 좋은 신체 상태를 과시하거나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목표를 공유하며 재미를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태그와는 사뭇 다른 기록이다. 시간을 체크한 화면, 담백하고 비장하게 적은 소감이 인상적이다.
처음 최씨가 피트니스 센터를 찾은 것은 큰아이를 출산한 직후다. 당시 그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가겠다’는 욕심이 앞섰던 탓에 체력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숫자에만 집착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 헬스장으로 향한 것은 지난해 겨울, 불어난 살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직업상 건강한 노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어요. 젊었을 때 몸을 챙기지 않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나이가 들어 병원을 전전하는 결말을 맞이하죠.”
근육은 우리 몸을 지탱하고 뼈와 관절을 보호한다. 또한 몸에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하고 혈압, 혈당 등 정상적인 대사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만약 노화로 인해 줄어드는 근육과 근력을 그대로 방치하다 보면 골절 등 외상의 위험이 커진다. 신진대사가 느려짐에 따라 미처 태우지 못한 지방, 탄수화물 등은 대사증후군이나 심뇌혈관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팀은 근감소증이 있는 경우 일상생활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 발생 확률이 2.15배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같은 양을 먹어도 체지방이 늘어나는 이유 역시 근육의 부재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목표를 명확하게 뒀어요.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로요. 트레이너 선생님이 진정한 재테크는 근육을 챙기는 ‘근테크’라고 강조했는데 그 말이 그렇게 와닿더라고요(웃음).”
‘청·중년의 근육은 노년의 보험’이라는 말이 있다. 중년은 ‘가성비’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하체의 근육이 많이 빠지기 때문에 이를 집중적으로 수비하는 것이 좋다. 자전거 타기와 스쾃, 계단 오르내리기 등이 하체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된다.
최씨는 주 1회 퍼스널 트레이닝(PT) 수업 외에도 주 1회 골프 수업, 주 2회 유산소 운동으로 근육 운동의 시너지를 내는 중이다. 성실함과 꾸준함은 아침마다 ‘어떤 옷으로 가려야 할까’라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됐다. 만성이었던 허리 통증이 사라졌고, 평소에도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는 습관을 얻었다. 일단 운동화를 신는 것. 최씨가 생각하는 ‘중년 생존 건강 프로젝트’의 첫 스텝이다.
“헬스장에서 만난 71세 할머니가 있어요. 양쪽 무릎을 수술하신 분이었는데 본인에게 맞는 속도로 천천히 근육량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운동을 하시더라고요. 덕분에 무릎 통증이 사라졌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했죠. 운동은 평생 해야 하는구나(웃음).”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균형
“과거의 나, 특히 군 복무 기간이었던 그 시절의 체력을 나의 평균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아마도 대다수 남성이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요(웃음).”
47세 직장인 김용운씨는 평소 자신의 건강을 자신해왔다. 비록 ‘성난’ 근육은 없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하루 1만보 이상을 걷고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 산을 타며 꾸준히 평균의 체중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식습관 덕에 동년배의 고질병으로 불리는 복부 비만, 고혈압과 같은 진단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환상이 깨진 건 지난겨울, 퇴근길 우연히 들른 피트니스 센터에서 측정한 ‘체성분 분석표’를 본 이후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고 운동량이 줄어들면서 예전보다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감소한 근육량과 그에 반해 늘어난 체지방에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10회 정도면 되겠지 하고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하면 할수록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는 ‘현타’가 오더라고요.”
전문가의 코칭 덕에 체지방은 정상의 범주로 돌아왔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발견됐다. ‘한 발로 서기’와 같은 기본적인 동작들이 버거워졌다는 사실이다. 담당 트레이너는 노화와 잘못된 자세로 인한 몸의 불균형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양쪽 어깨, 허리와 골반이 틀어지고 자세를 유지하거나 움직임을 수행하는 일상적인 활동까지 방해받게 된다고 했다.
김씨는 자세 교정 및 근육 보강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운동했다. 단단한 물체를 잡고 서서 한쪽 발을 종아리 높이 정도로 올린 다음 10초간 버티는 한 발 서기부터 시작했다. 왼손으로 6kg짜리 케틀벨을 들지도 못하고 바들바들했던 ‘비포’는 퍼스널 트레이닝 60회를 넘기면서 ‘외발로 일어서기’와 좌우 수평을 맞춘 ‘벤치 프레스’ 등이 가능한 ‘애프터’로 진화했다. 몸에 익도록 복습과 반복을 강조한 트레이너의 스킬도 유효하게 작용했다.
“우리 모두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어요. 중년에게는 아직 노년이 남아 있다는 것이에요. 무작정 오래 버티는 것보다 맑은 정신으로 일과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싶어요.”
■ 중년의 운동은 달라야 한다 #전략
비단 두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40대와 50대의 규칙적 생활체육 참여율은 각각 65.1%와 63.9%다. 20대와 30대에 뒤처지지 않는 수치다.
등산과 골프로 대표되던 종목 또한 다채로워졌다. 필라테스, 주짓수 등 청년층의 전유물로 여겼던 다양한 스포츠를 행하고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체계적인 결과를 수집, 분석하는 중년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 ‘30대’에 준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고백한 배우 겸 가수 엄정화씨는 운동으로 젊음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좋은 예’다. 그는 매일 1시간씩 전문 트레이너와 헬스를 진행하고, 운동 3시간 전 영양 식단을 섭취하며 반려견과 하루 1만보 걷기 등으로 체력을 키운다고 한다.
무엇이 중년을 움직이게 했을까. <고령화 사회와 체육>의 저자인 김용수 체육학 박사는 “현재의 중년은 영양 상태와 의학의 발전에 따라 이전의 중년과 다른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중년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의 긍정적 변화, 경제적인 능력이 더해지면서 젊고 활기찬 모습을 유지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중년의 운동은 청년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중년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시기의 사람을 의미한다. 의학적으로는 기초대사량과 근육량, 골밀도가 줄어들고 체지방이 늘어나는 기점이다. 전략은 필수다.
‘생애 첫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근육 운동에 앞서 가벼운 유산소 운동으로 서서히 몸에 조금씩 자극을 주는 것이 좋다. 임승현 트레이너는 일주일에 3번, 하루에 20~30분씩 가볍게 걸으며 몸의 이상 반응을 파악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무작정 걷기보다는 어깨에 힘을 빼고 무릎을 튕기지 않으며 발뒤꿈치부터 바닥에 닿게 한다는 느낌으로 걷는 것이 좋다.
임 트레이너는 “걷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큰 근육, 즉 대근육 위주의 운동을 진행하도록 한다”며 “대근육은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때 ‘꾸준히’와 ‘무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물리치료사인 멜리사 가르시아 역시 “중년은 근육을 되도록 많이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무작정 덤벨을 들기보다는 천천히 강도를 늘려나가는 ‘점진적 근력 운동’을 해야 한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의 기준을 정해두고 끊임없이 반복한 다음 무게와 횟수를 늘려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운동에 대한 지식이 없고 서툰 자세가 교정되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잘못된 자세로 굳어진 몸은 자칫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세윤 트레이너는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고 타고난 근력의 차이가 있어 특정 동작이 좋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특히 중년의 경우 활동량이 없다 보니 기존에 어떤 운동을 해왔느냐에 따라 편차가 크다. 초반에는 전문가와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다수의 시선이 불편하다면 소규모로 운영되는 ‘1인 전용 PT 스튜디오’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단, 트레이너를 선택할 때는 국가공인 자격증인 ‘생활체육 지도사 2급’ ‘보디빌딩 자격증’ 등을 소지했는가를 확인하도록 한다.
바람이 분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중년들이 운동하기에 최적화된 계절이 왔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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