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와 부부싸움이 9할…어서와, 난임의 세계는 처음이지?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작년 이맘때 남편과 함께 안식 휴가를 얻어 캐나다 록키로 떠났다. 둘 다 바빴고 예산도 빠듯했지만 큰마음 먹고 질렀다. 본격 임신 준비에 앞서 둘이서 보내는 마지막 장기 여행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딱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 우리 부부는 지난 1년 동안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다.
1년이란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그간 해본 적 없던 이런저런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그 좋아하는 술도 줄이고, 아침저녁으로 온갖 영양제 복용은 필수요. 한 번도 '내돈내산' 해본 적 없던 한약을 피‧땀‧눈물 담긴 월급 탈탈 털어 지어먹었다. 그뿐이랴, 평생 올챙이배로 살 줄로 알았던 남편은 새벽마다 운동하느라 '복근남'으로 변신 중이다(이것은 뜻밖의 '개이득'이다).
예전엔 몰랐지. 임신이 마음 먹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란 걸. 검사 결과, 우리 부부에게는 비교적 뚜렷한 난임 사유가 있었다. 그리고 35살 이상 여성의 경우는 6개월 내 자연 임신 실패 시 난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이미 '난임 합격선'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합격 통지서를 순순히 받아들 수 없었다. 투자한 돈과 시간이 얼마인가. '가능성이 0은 아니'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매달리기를 몇 달, 시간은 흐르고 흘러 1년을 꼬박 채웠다. 우리는 그제야 난임 부부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운이 좋았다면 평생을 몰랐을, 그리고 평생 모르고 싶었던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딛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왜 나만 이러냐'고 누구라도 손 붙들고 고함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랄까. 이처럼 현실 부정을 겪던 나에게 난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헬로 베이비>는 끝까지 꺼내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다다라서야 나는 이 책이 필요해졌다. 이 책이라도 '너만 이런 거 아냐'라고 말해줄 것 같았다.
<헬로 베이비>(김의경 지음, 은행나무 펴냄)는 난임 병원에서 만난 30~40대 여성들의 '난임 졸업'을 위한 고군분투기를 그린 가상의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헬로 베이비'라는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 난임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일종의 자조 모임인 셈이다.
줄거리도 흥미진진하지만, 난임 치료를 눈앞에 둔 내가 주목한 것은 실제 난임 치료가 이뤄지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었다. 병원 영상을 옮겨놓은 것 같은 적나라한 치료 과정 설명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몸서리가 쳐진다. 치료 도중 주변인과 겪게 되는 갈등, 그리고 그때의 심리 상태 묘사도 무척 현실적이다.
저자 김의경 작가는 맺음말에서 본인도 난임 치료를 경험했노라 고백한다. 작가의 아픈 경험이 생생한 묘사로 승화된 셈이다. 그 덕에 난임의 'ㄴ'자도 알까 말까 한 나도 쉽게 이해했으니 <헬로 베이비>는 '난임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을듯하다. 나아가 난임 치료를 앞둔, 혹은 이미 그 과정에 서 있는 이들에게 마치 자조 모임에 있는 것과 같은 깊은 위로를 줄 것이다.
포대에 쌓이는 주사와 약병, 그 간절함의 흔적들
내가 기존에 난임에 대해 알았던 것은 한 달간 거의 매일 같은 시간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시험관 시술로 딸을 낳은 친구에게서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네 살 무렵 유치원에서 예방 접종이 싫어 유치원 밖으로 도주 행각을 벌인, 우리집에서는 30년 넘게 회자되는 일화를 남긴 지독한 '주사 헤이터'다. 그런데 주사를 매일매일, 그것도 똑같은 시간에 맞아야 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필연적으로 <헬로 베이비>에는 주사 이야기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슈게스트 주사는 주사를 놓는 간호사가 사과를 할 정도로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주사다. 맞아본 사람은 누구나 치를 떤다는 슈게스트 주사는 트로게스테론 성분의 근육 주사이기 때문에 스스로 놓을 수 없으므로 일을 하다가도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슈게스트 주사는 아프기도 했지만 맞은 부위가 돌처럼 딱딱하게 변하기 때문에 일명 돌주사로 불렸다.(35쪽)
하도 자주 맞는 통에 온 엉덩이가 돌덩이가 돼서 간호사는 딱딱하지 않은 자리를 찾는 게 일일 정도다. 이 돌주사 말고 스스로 놓아야 하는 주사가 또 따로 있다. 바로 '배 주사'다.
"정효가 베란다에서 가져온 것은 커다란 쌀 한 가마니 크기의 포대였다. 정효가 포대를 거꾸로 들자 엄청난 개수의 갈색 병이 쏟아져 나왔다. '이게 다 뭐야?' '몰라서 물어? 내가 마신 바이오아지니나액 병이야. 나중에 아이가 크면 보여주려고. 너를 만나려고 엄마가 이렇게 노력했다고. 그동안 사용한 주사기도 모아뒀는데 쌓아두니까 흉측해서 지난달에 버렸어."(87쪽)
헬로 베이비의 왕고참 언니 '정효'는 15년간 난임병원에 다니며 27번의 시험관 수술을 받았으니, 포대가 아니라면 약병이며 주사기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이 장면은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 '시험관 주사' 검색을 해보면, 종이학 보관하듯 주사기가 켜켜이 쌓인 병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고통의 흔적이자 기다림의 흔적, 간절함의 흔적인 셈이다.
육체적 고통은 주삿바늘로 끝나지 않는다. 수면 마취로 난자 채취, 배아 이식을 받아야 한다. 임신‧출산‧양육 과정에서 수반되는 여성의 노고야 모르는 이가 없지만, 임신 이전에 '수정' 과정에서부터 여성의 몸이 갈려 나간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조차도 35년 만에 처음 알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을 오로지 여성'만' 겪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억울할 정도로' 말이다.
"아내가 온갖 주사를 맞고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남편의 역할은 정자 채취하는 날 하루 병원에 방문해서 수음으로 정액을 작은 병에 담는 것이었다. 고통이 수반되는 난자 채취와 다르게 정자 채취는 쾌락이 수반되었다."(13쪽)
44살 '문정'은 남편은 시험관 시술이 실패할 때마다 문정처럼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남편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아마 난임 시술을 하는 대다수 여성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곧잘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 마련이다.
"'방금 뭐라고 했어? 당신 정말 그걸 몰라? 당신 인공수정하고 시험관 차이는 알아? 두 번도 아니고 아홉 번인데 그걸 모른단 말이야? 그 무서운 난자 채취를 일곱 번이나 했어. 그런데 당신 정말로 그걸 모른다는 거야? 2년 동안 난임병원 다니면서 회사 화장실에서 내 손으로 배에 주삿바늘 찔러넣고 수면마취 하고 난자 채취하고 배아 이식하고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 당신은 정말 그게 뭔지 하나도 모른다는 거야?' 남편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나도 힘들어. 그만해' '힘들다고? 당신이 할 일은 나를 다독여 주는 것밖에 없어. 대체 뭐가 힘들다는 거야?' '바로 이런 게 힘들다고. 당신 감정 헤아리고 받아주는 게 나한테는 제일 힘들어.'"(92쪽)
'고통의 비대칭'으로 인한 다툼을 면하고자 많은 난임 부부들은 묘안을 찾기도 한다. 바로 남편에게 배 주사를 직접 놓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남편도 무심하고 이기적인 거라면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전 시험과 3차 때부터 배 주사를 남편이 직접 놓도록 했어요. 제 고통을 온전히 함께 느끼게 하려고요. 그런데 그런다고 남편이 아내의 고통을 알아줄까요? 주사를 놓으면서도 모르는 거 같더라고요. 인형 배에 주삿바늘 찔러넣는 거나 마누라 배에 찔러넣는 거나 똑같은 거죠."(95쪽)
아내가 엄청난 대인배이거나 남편이 위로의 달인이 아니라면, 결국 시험관 시술은 사실상 크고 작은 갈등을 동반한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러니 난임 치료 과정은 우리 부부에게도 관계의 민낯을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답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해와 노력, 그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리라.
정부의 '출산률 제고' 의지가 의심스러운 이유
극한의 고통, 그로 인한 갈등. '합계출산율 0.7명' 초저출산 시대의 뒷면엔 이런 지난한 과정을 감수하고서라도 출산을 하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아니, 많다. 나도 놀라고 작가도 놀란 게 바로 그 지점이다.
"남편과 함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문정은 대기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심각한 저출산 국가의 난임병원이 이렇게 붐비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27쪽)
호주행 비행기 티켓 예약 후 진료 예약을 위해 난임 병원 홈페이지에 접속한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가장 빠른 예약이 무려 두 달 반 뒤였다. 추석 연휴 비행기 티켓 구하는 것보다 난임 병원 예약이 더 어렵다니. 아니 그보다 이 초저출산 시대에 출산을 원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병원 예약 현황만 보면 저출산 문제는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장벽이 있다. 바로 엄청난 비용이다. 1회당 1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난임 치료 비용을 두 번 세 번 턱턱 낼 수 있는 가구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그러니 육체적 부담 못지않게 경제적 부담으로 난임 치료를 포기하는 가정도 허다하다. 개인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그때 필요한 게 정부의 역할이다.
난임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이고는 있지만, 중앙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달 말 정부가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을 보면, 내년도 저출산 문제 지원 방향은 주거 안정과 육아휴직 확대 등에 주로 맞춰져 있다. 임신 전 건강 관리, 냉동 난자 등에도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시험관 시술비 지원에 대한 계획은 밝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가 여전히 난임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난임이 개인의 문제일 수가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임신에 최적화된 연령은 여성의 경우 만 35세 미만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장기 불황으로 인한 취업난으로 취업 연령, 혼인 연령이 차례로 늦어지다 보니 임신 성공률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도 출산율 하락과 사회 구조적 문제 간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출산율 제고를 위해 난임 부부를 위한 정부 지원을 촉구해 왔다.
남편과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난임 부부가 될 줄 알았더라면, 20대에 결혼해서 곧장 애를 낳았을까? 우리의 대답은 둘 다 "아니"였다. 20대에는 서둘러 취업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렸고, 30대에는 일터에서 자리를 잡으려 고군분투했고, 집 장만에 허덕였다. 우리만이 아니라 대부분 청년의 삶이 그렇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불황의 파고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잇따른다는 데 있다. 난임의 심각성은 그에 따라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정부가 출산율 문제를 제대로 잡으려 한다면 난임 문제를 멀리서 팔짱 끼고 볼 일이 아니란 얘기다.
난임 휴가제 손질도 시급한 과제다. 난임에 대해 이래저래 알아보다 충격받은 사실 하나는, 난임 치료를 위한 법정 휴가가 단 3일에 불과하단 점이었다. '1회당'이 아니라 '1년' 통틀어 3일. 난소를 채취하고 회복하는 데만 보통 하루 이틀이 걸린다. 복수가 차는 등 부작용이 있을 경우 이를 치료하기 위해 휴식 기간은 추가로 늘어난다. 주사 맞으러 매일 같이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건 논외다. 그러니 직장인 여성에게 난임 치료는 그야말로 무덤이다. '너의 커리어를 이곳에 묻으라'.
정부가 제도를 빡빡하게 만들어 놓은 탓인지 일반 기업은 고사하고 공무원 사회까지도 난임에 휴가가 수일씩이나 필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거의 없다. 난임을 이유로 휴가를 내는 것은 핑계이고 사치다.
"나중에 출산휴가 육아휴직까지 다 쓰고 퇴직금 받으며 그만두겠지? 애 낳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진짜 여자의 수치다."(59쪽)
'여초'회사에 다니는 '지은'은 사내 게시판에서 난임 치료를 받는 직장 선배를 겨냥한 글을 보게 된다. 이런 수모를 견딜 자신이 없는 지은은 결국 퇴사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퇴사하지 않는 한 직장인 난임 여성의 일상은 고달파질 수밖에 없다. '혜경'은 차마 난임 휴가를 낼 수 없어 "2년 동안 난임병원 다니면서 회사 화장실에서 내 손으로 배에 주삿바늘 찔러넣"는다.
안타깝게도 이런 내용 또한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내 친구 역시 회사 사람들에게 난임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껄끄러워 매일 회사 화장실에서, 숙직실에서 배 주사를 놓았다고 했다. 주사를 맞아야 할 시간에 회의나 급한 업무가 생기면 초조함이 극에 달하고, 회사 워크숍에도 빠질 수 없어 주사를 아이스박스에 넣어가 몰래 냉장고에 넣어놨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줬다. 내 친구는 분노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회사 내 누구에게든 하소연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고 돌아오는 것은 손해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주사는 오롯이 혼자 맞아야 하겠지만
<헬로 베이비>를 손에서 놓자 진이 쭉 빠져버렸다. 고달파질 미래가 벌써 암담하게 느껴졌다. 현재 난임 치료에 관한 모든 부담은 여성이 홀로 진다. 그러니 여성이 기댈 수 있는 존재는 가족이나 정부, 사회가 아닌 같은 아픔을 가진 또 다른 여성들뿐이다. 주인공 여성들이 '헬로 베이비'를 통해 서로 누구보다 끈끈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주사는 오롯이 여성 혼자의 몫이겠지만, 그 외의 부담은 일정 부분이나마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내가 난임에 이르지 않았다면, 나 또한 난임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불과 1년 전까지도 그러했던 것처럼. 다만, 난임과 관계없는 누군가 이 책을 본다면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는 상상력을 키우는 기회가 될 수 있을듯하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어려움을 헤아려 보듯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이 수많은 제도와 정책으로 구현돼 어제보다 더 나은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난임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허들'을 마주하니 겸허해지는 마음이다. 이제껏 내가 지나친 어려움이 또 무엇이 있었을지를 떠올려 보게 된다. 혹시 아는가. 난임을 계기로 오히려 부부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나 또한 타인을 더 잘 헤아리는 멋진 인간으로 거듭나게 될지. 지나고 보면 난임은 허들이 아니라 발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라고 노력하는 수밖에.
'아가는 발이 작아 아장아장 천천히 온다'고 한다.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모두가 "헬로 베이비"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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