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에 지지율 앞서… 커지는 ‘트럼프 2기’ 리스크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3. 9.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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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역대 대통령 기념 재단 13곳, 트럼프 겨냥 이례적 공동 성명
그래픽=김하경

역대 미국 대통령을 기념하는 공식 재단과 센터 13곳이 7일(현지 시각) 민주주의 원칙 옹호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허버트 후버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만 제외한 31~44대 대통령 재단·센터가 모두 참가했다. 이 성명은 “정치적 담론에서 예의와 존중은 필수적이다” “우리(미국)는 법치에 기반한 국가다” “선출된 공직자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름을 적시하진 않았지만, 올해 들어서만 대선 결과 조작 등의 혐의로 네 차례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문구가 포함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성명 발표 시점과 일부 문구가 지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트럼프에 대한 교묘한 질책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아울러 선거 과정에 폭력적 메시지와 상대 희화화를 일삼는 트럼프에 대한 경고로 읽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양진경

민주·공화 당적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 기념 기관 13곳이 연명(連名)해서 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이 성명은 트럼프에 대한 잇단 기소에 오히려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내년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확산하는 가운데 나왔다. 올해 초만 해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의 가상 대결에서 바이든 지지율이 대체로 높았지만 최근 조사 중엔 트럼프가 바이든을 앞선다는 결과가 많다. CNN이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47%로 바이든(46%)을 소폭 앞질렀다. 지난달 말 유고브·이코노미스트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지지율은 44%, 바이든은 43%를 기록했다. 공화당 경선 여론조사에선 트럼프(52%·CNN) 지지율이 2위(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18%)와 점점 더 벌어지는 상황이다.

미 정계와 국제사회에선 ‘트럼프 2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계감이 확산하고 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오를 경우 조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복원 정책을 모두 폐기하고 거칠고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 한·미·일 협력 강화 등 윤석열 대통령이 어렵게 달성한 외교 성과가 트럼프 재집권으로 원점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 정가에선 최근 ‘트럼프 방어(Trump-proof)’라는 신조어가 돌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미국의 제도와 체계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도록, 대통령 권한 남용을 막을 장치를 입법이나 정책 등 ‘방패’를 미리 구축해두는 조치를 일컫는다.

그래픽=김하경

미 연방하원 의원들은 지난달 연방 정부가 공공보건, 소비자 안전 등의 규정을 만드는 데 활용하는 과학 데이터에 대한 ‘정치 간섭’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과학 보호법’을 발의했다. 이를 통해 과학 정책을 입안하거나 공공 과학 분야에 자금을 지원할 때 명확한 과학적 근거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 방역 지침을 수시로 무시하고, 비(非)과학적 정책을 강행해 혼란을 부추겼던 것을 제도적으로 막으려는 의도라고 미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전했다. 이 법안은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도 참여해 만들어졌다.

올해 초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대중(對中) 특위를 설치하고, 양당이 대만 지원 법안들을 잇달아 통과시키는 데 대해서도 ‘트럼프 대처용’이라는 평가(이코노미스트)가 나온다. 트럼프의 즉흥적인 외교정책이 기존의 견고한 ‘대중 견제망’을 해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등은 “트럼프는 집권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등 전체주의 국가의 독재자들과 관계를 강화했다”며 “(보수당인) 공화당의 기조와 무관하게, 트럼프가 자신의 개인적 이미지 쇄신을 위해 중국과의 ‘화해 쇼’를 연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의원들은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미군의 해외 파병에 부정적 입장인 트럼프가 특히 대만 방어 문제에 대해 불투명한 입장을 보이는 것도 양당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유럽 등 서방 국가들도 트럼프의 복귀를 염두에 두고 대책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2017년부터 4년간 재임 기간 내내 유럽과 아시아 주요 동맹국들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대립했고, 우방국들과 무역 전쟁을 벌여왔다. 과거 미국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탈퇴시키겠다고 공언했던 트럼프가 복귀할 경우 유럽은 직접적인 안보 위협을 받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G7(7국) 회원국들은 트럼프가 복귀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우려해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기 위한 양자 합의를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유럽과의 동맹을 약화시킬 것을 대비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무기 생산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독일은 ‘트럼프 인맥’ 쌓기에 분주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핵심 참모인 볼프강 슈미트 총리실장은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공화당 인사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

2017년 11월 11일(현지 시각)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트럼프의 복귀 가능성을 반기고 있다. WSJ는 “중국은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서방 진영의 대중 압박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며 “러시아도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미 정계와 주요국이 대응 마련에 착수했지만 ‘트럼프 방탄막’이 실제로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선 시절부터 다자 협력 체제를 부정해왔던 트럼프는 재임 당시 동맹국과 의회의 반대에도 유네스코·세계보건기구(WHO)·유엔인권이사회·파리기구협약 등을 대통령 직권으로 탈퇴했었다.

◇트럼프 프루프(Trump-proof)

방탄(防彈)을 의미하는 ‘불릿 프루프(bulletproof)’처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라는 충격이 발생해도 제도가 버틸 수 있게 방어책을 마련한다는 뜻. 최근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 정계에서 종종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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