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바이든의 워싱턴 선언·캠프 데이비드 합의 ‘휴지조각’ 될 수도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3. 9.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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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 땐 한국 압박 세질 듯
그래픽=김하경

내년 11월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트럼프 2기’가 현실이 될 경우 한반도에 끼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재집권의 영향을 분석하고 대비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재임 시절 한미는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 철강 등 관세 부과, 대북 정책 이견 등으로 풍파를 겪었다. 만에 하나 트럼프가 돌아올 경우 트럼프는 한국 정부에 본격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안보·경제 등 전방위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주한 미군 철수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 김정은과의 ‘밀월’ 관계를 과시해 온 트럼프가 외교 분야에서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 종전 선언 등 한국 정부와 기조가 맞지 않는 북한과의 협상을 다시 추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사진 왼쪽) 대통령과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18일(현지 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걸어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바이든 및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외교 업적 중 하나인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앞서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 등도 트럼프 집권 시 무력화될 위험이 있다. 이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채택한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등이 “트럼프의 재집권을 염두에 두고 만든 문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문건은 역내(域內) 군사·경제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북핵 도발, 중국의 대만 위협 등에 맞서기 위한 3각(角) 군사 협력 체제를 정권 교체 여부와 무관하게 정례화·제도화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그래픽=김하경

이 협의를 실무에서 주도한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한·미·일 정상회의 전날인 지난달 17일 미국 싱크탱크 대담에서 “이젠 (정치 상황 변화와 관계없이) 미국은 한·미·일 협력에 깊이 투자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되거나 명시되지 않았지만 캠프 데이비드 회의나 협의문은 ‘트럼프가 다시 오더라도’ 이를 지속한다는 암시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공동성명 3개 중 하나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의 경우 외교·국방장관 등 최고위 4개급 차원에서 ‘최소 연 1회 협의한다’고 정했고, 3국 재무장관회의 등도 열기로 했는데 비교적 촘촘하게 구체화한 실무급 회의가 정상의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어책’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4월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는 모습. 당시 두 정상은 북한 비핵화와 미·북 대화 재개 문제뿐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 등도 논의했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미 대선 결과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 간 핵 협력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한 ‘워싱턴 선언’이나 한·미·일 협력을 제도화한 ‘캠프 데이비드 합의’ 등은 모두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케미스트리(공감대)에서 비롯됐다”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기존 합의들의 지속 가능성에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정부는 대선까지 남은 기간에 지난 7월 출범해 첫 회의를 가진 ‘핵협의그룹(NCG)’의 내실화와 우리 인력의 핵 운용체계 숙지 등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정부 1기 때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을 놓고 벌어진 한미 갈등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미 대사관 등이 나서서 ‘트럼프 인맥’을 발굴하는 한편 고립주의 색채가 강한 공화당 후보들을 상대로 한반도 현안과 한국의 우려를 설명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막 국방 장관이었던 마크 에스퍼는 지난해 5월 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에서 트럼프가 주한 미군의 ‘완전 철수’를 수차례 제안했었다고 밝혔다. 에스퍼 전 장관은 “한국이 자기 몫을 내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우리 군을 서둘러 빼야 한다고 수차례 말했다”고 밝혔다.

그래픽=김하경

한편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를 저울질하는 트럼프는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엔 비교적 유연한 입장이라고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을 취재했던 매기 하버먼 NYT 기자는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는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데 열려 있는 편이었다”고 했다. 북핵 등의 위협에 한국이 알아서 자국을 방어하라는 취지라면, 핵무장이 불가능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는 “동맹에 부정적인 트럼프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합의됐던 각종 핵우산 정책들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정부가 핵무장 등 자체 북핵 억제력 강화 방안을 지금부터 준비해 놓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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