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앨범 안 찍고 ‘찾기’ 거부… 제자 무서운 ‘스승의 은폐’
충북의 중학교 김모 교사는 지난 3월 교육청에서 ‘홈페이지 스승 찾기 서비스’의 정보 공개에 동의하는지 묻는 공문을 받았다. 이 서비스는 졸업 후에도 사제 간 교류가 이어지도록 교사 이름을 검색하면 현재 재직 중인 학교를 알려주는 것이다. 김씨는 작년까진 계속 ‘동의’에 체크했지만 올해는 ‘비동의’했다. 몇 달 전 한 졸업생이 학교로 전화해서 동료 교사를 찾더니 “찾아가서 가만히 안 두겠다”고 소리치며 끊는 걸 봤기 때문이다. 김씨는 “갈수록 흉흉한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졸업생들이 날 찾는다고 하면 겁나더라”고 말했다.
졸업한 제자가 교사를 찾는 것은 과거 사제 간의 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교사 정보를 악용하는 사건·사고가 속출하면서 자신의 정보를 졸업생에게 제공하는 걸 꺼리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충남교육청은 매년 두 차례 교사들에게 ‘스승 찾기 서비스’ 정보 공개 여부를 물어 원하는 교사만 공개한다. 그런데 동의하는 교사는 전체 교사의 2%(500~600명)밖에 안 된다. 인천 한 중학교 교사는 “우리 학교는 정보 공개에 동의한 교사가 재작년에 1명, 작년엔 0명이었다”면서 “졸업생이 교사를 스토킹하거나 보험 등 물건을 팔러 오는 등 악용하는 일도 많고, 세대가 바뀌면서 ‘개인 정보’를 중시하는 분위기도 커지면서 거의 공개 안 하려는 상황”이라고 8일 밝혔다.
대전시교육청은 최근 ‘스승 찾기’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지난달 A(30)씨가 대전 대덕구 한 고교에 침입해 모교 교사였던 B(49)씨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A씨는 홈페이지의 ‘스승 찾기 서비스’에 들어가서 B교사를 검색했지만 정보가 ‘비공개’되어 있자 다른 교사들에게 전화 걸어 묻는 방법 등으로 B씨 근무지를 알아냈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사건 후 정보를 비공개로 바꿔달라는 민원도 있고 불안해하는 교사들이 많아 중단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스승 찾기’ 서비스를 이미 없앤 교육청도 많다. 대구교육청은 지난 5월, 서울·경기·강원교육청 등은 수년 전 없앴다. 이들 교육청은 대신 졸업생이 교육청에 전화로 문의하면 해당 교사에게 교육청이 연락해 제자 연락처를 준다. 연락을 할지 말지는 교사가 선택한다. 과거엔 제자에게 교사 연락처를 줬지만, 이마저 악용될 소지가 있어 바뀐 것이다.
최근엔 졸업 앨범에 사진 넣기를 꺼리는 교사도 급증하고 있다. 인천 지역 중학교 박모 교사는 “교사 사진을 딥페이크(AI 인물 이미지 합성 기술)해서 나쁜 이미지를 만들거나, 선생님 신상을 터는 용도로 쓰일 때가 있어서 앨범에 사진 싣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과거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 사건 때도 졸업 앨범의 교사 사진만 모아 놓고 딥페이크한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경기도 이모 고교 교사는 “사진이 귀한 예전에는 소장용으로 앨범을 찍었지만, 요즘엔 교사가 친한 학생들과는 셀카도 많이 찍지 않느냐”면서 “악감정 가진 아이들한테까지 내 사진이 공유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자녀 담임 교사의 얼굴이 궁금해 졸업 앨범 사진을 인터넷에 공유하면서 “늙었다” “예쁘다” 같은 ‘얼평’(얼굴 평가)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원하는 교사들만 사진을 찍거나, 아예 교장이나 교감, 졸업반 담임 교사 외에는 사진을 싣지 않는 추세다. 심지어 졸업반 담임 교사가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고마운 은사를 추억하기 위해 졸업 앨범을 찾아보던 것도 옛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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