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도서관] 폭력과 영성이 충돌하고 뒤섞인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세계
마틴 스코세이지 : 레트로스펙티브
톰 숀 지음 | 김경진 옮김 | 그책 | 312쪽 | 4만8000원
“네가 회개할 곳은 교회가 아니야. 그건 거리에서, 집에서 하는 거지. 다른 데서 하는 회개는 다 엉터리야.”
영화 ‘비열한 거리’(1973) 도입부의 내레이션은 이 영화의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80) 본인의 목소리다. 예수의 인간적 고뇌와 마지막 환영(幻影)을 다뤄 보수 기독교계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던 자신의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도하듯, 예배를 드리듯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사제가 되고 싶었어요. 제게는 평생 영화와 종교 뿐이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다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책은 첫 장편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7)부터 로버트 드니로, 대니 드비토, 하비 카이텔과 함께 만든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2018)까지, 위대한 미국 영화 감독으로 첫 손에 꼽히는 마틴 스코세이지(80)의 영화 25편과 다큐멘터리 작업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분석한다.
270장이 넘는 방대한 사진 자료가 특히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택시 드라이버’(1976)로 14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가 됐던 조디 포스터에게 마음을 뺏긴 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젊고 파릇파릇했던 시절의 로버트 드니로, 톰 크루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맷 데이먼에게 한참씩 눈길이 머무른다.
◇폭력성과 성스러움의 이종교배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스코세이지는 뉴욕의 이탈리아 이민자 집단 거주지 ‘리틀 이탈리아’의 조부모까지 3대가 북적이는 비좁은 집에서 자랐다. 밤마다 거리를 채우는 소음, 술주정, 폭력의 눅진한 기운이 그를 휘감았다. 삼촌은 늘 빚에 쫓겨 폭력배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았고, 그 때 마다 아버지는 삼촌을 살리려 돈을 빌려주고 어머니와 싸웠다. 그런데 그 폭력배들마저 가톨릭 신부 앞에선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자연스럽게도, 그의 영화에선 가장 비열하고 격렬한 폭력이 가장 성스럽고 순수한 영성(靈性)과 충돌하고 뒤섞인다. ‘비열한 거리’ 이후 그의 영화에 반복해 등장하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모습은 그의 어린 시절로부터 온 것이다.
스코세이지는 자서전에서 말한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지만 곧 진정한 소명은 영화란 걸 깨달았죠. 저는 교회와 영화, 신성함과 불경함이 부딪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 주연 영화 ‘분노의 주먹’(1980)의 클라이맥스 복싱 경기 장면에서 주인공은 역광 속에 악마 같은 실루엣으로 나타난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데, 그가 싸우는 대상은 결국 내적 악마다.
◇할리우드식 낭만주의를 뒤집다
만성 천식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 일찍부터 그는 TV드라마와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뉴욕대 영화과에 입학하기도 전에 이미 프로에 가까운 솜씨로 영화 제작을 위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내는 영재였다.
그가 활동을 시작하는 1960년대, 미국의 젊은 영화감독들은 서구사회를 휩쓴 저항적 청년 문화를 배경으로 기존 미국 영화들이 가진 낭만적 낙관주의 대신 더 날 것 그대로의 미국 사회를 다루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졸업’, ‘이지 라이더’,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와일드 번치’, ‘대부’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로 불린 이 영화사적 흐름에서, 마틴 스코세이지는 할리우드의 전통적 도제식 육성 시스템을 벗어나 정식으로 영화학교(뉴욕대 영화과)에서 배우고 영화판에 뛰어든 영화광 세대의 대표격 감독이었다. 필연적으로 스코세이지의 동세대 영화인들은 과거 세대와 구별되는 연기론, 표현 방식, 내러티브를 할리우드에 수혈하게 된다.
◇영화 안팎 흥미로운 이야기들
스코세이지는 25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지만, 평범한 방식의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작품은 한 편도 없다.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로 흥행 대작을 만들어내지만, 영화 속에서 종종 페데리코 펠리니의 이탈리아 사실주의 영화적 태도나 프랑스 누벨바그 장 뤽 고다르의 사랑 장면을 인용한다. 그의 영화 역정에선 실패도 다반사였다.
책에는 스코세이지가 만든 걸작들의 목록과 그 안팎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법원 속기사로 생계를 꾸리며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에 출연하던 무명 코미디언 하비 카이텔은 스코세이지가 모교인 뉴욕대 지원으로 찍은 첫 35㎜ 장편영화의 배우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주연을 맡았다. 오디션을 보러 온 카이텔의 연기력을 확인하려 스코세이지가 요즘 몰래 카메라 같은 방식으로 시비를 걸어 실제 주먹다짐을 할 뻔 했던 에피소드에 웃음이 터진다. 두 사람은 평생의 영화 동지가 된다.
‘택시 드라이버’는 총격과 폭력 장면 때문에 X등급을 받게 돼, 재편집을 거부하는 스코세이지 감독과 컬럼비아 영화사 사이에 극한 대립이 빚어졌다. 결국 스코세이지가 손가락에서 피가 뿜어져나오는 장면을 덜어내고 다른 장면에서도 채도를 낮춰 피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걸 받아들이면서 겨우 상영 허가를 받았고 우리는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영화는 감독의 첫번째 상업적 성공작이 됐다.
‘컬러 오브 머니’는 스코세이지가 14살 때부터 숭배했던 배우 폴 뉴먼과 함께 젊은 톰 크루즈를 앞세워 단 49일 만에 찍었고, 제작비의 3배 넘는 돈을 벌어들인 80년대 그의 최고 흥행작이었다.
뉴욕 토박이와 아일랜드 이민자 집단이 거대한 개싸움을 벌이는 ‘갱스 오브 뉴욕’의 격투씬은 제작비와 기간 초과, 주연 배우 캐머런 디아즈의 이탈 같은 악재 속에 완성됐다. 영화는 미국 역사의 가장 혼란스럽던 시대에 관한 무질서하고 불완전한 대서사극이 됐다.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도 받지 못했고, 2억 달러 매출을 올렸지만 스코세이지는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저자는 뉴욕대에서 영화사를 가르치며 쿠엔틴 타란티노와 크리스토퍼 놀런에 관한 책을 쓴 미국의 영화평론가. 학자적 관심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숭배 쪽에 가까운 성실성으로 실제 인터뷰와 수많은 문헌을 넘나들며 스코세이지가 구축한 거대한 영화 세계를 파고든다. 그가 보기에 스코세이지는 단순히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미국 영화 감독’이 아니라 60~70년대에 이미 90년대와 이후 21세기 배우들의 연기 양식, 리얼리티 예능을 포함한 TV쇼, 독립영화의 지형도까지 혼자서 그려나갔던 영상 예술의 선지자였다.
스코세이지 영화의 팬이라면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어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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