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세계의 화가
“여기가 강남이야. ‘강남 스타일’의 바로 그 강남!”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전시장 앞에서 서양 남성 둘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습니다. ‘K열풍’ 덕에 서울은 세계적으로 ‘힙’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서구 화랑들이 속속 서울 분점을 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 몇 년 전만 해도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는 홍콩이었는데, 그야말로 상전벽해입니다.
휠체어 탄 노인이 프리즈 전시장에 들어서자 구름처럼 인파가 몰려들더군요. ‘단색화 거장’ 박서보(92) 화백. 지난해 루이비통과 협업하기도 한 ‘월드 스타’입니다. 박 화백과 기념 촬영하는 관람객들을 보고 있자니 김환기의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티스·루오·피카소·브라크, 이 거장들이 떠나기 전에 파리에 나가야 할 터인데, 8·15 후인 오늘에도 역시 파리는 멀구려. 과거나 오늘이나 우리 예술가들의 최대의 불행은 바람을 쐬지 못한 것,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오.”
1953년 건축가 김중업에게 쓴 편지에서 김환기는 통탄합니다. “우리들은 넓은 세계에 살면서도 완전히 지방인이외다. 한국의 화가일지는 몰라도 세계의 화가는 아니외다….” 그러나 이어 말합니다. “코르뷔지에의 건축이나 정원에 우리 이조 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 코르뷔지에의 예술이 새롭듯이 이조 자기 역시 아직도 새롭거든. 우리의 고전에 속하는 공예가 아직도 현대미술의 전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크나큰 사실입니다.”
김환기의 바람은 70년 후 현실이 되었습니다. 프리즈에 참여한 벨기에 화랑 악셀 베르보르트 부스에, 독일 거장 라이문트 기르케의 백색 추상화와 우리 도예가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조응하며 놓여 있더군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만으로도 김환기는 이미 ‘세계의 화가’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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