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국제정치학 바이블’ 처음으로 완역한 외교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저서 ‘디플로머시(Diplomacy·외교)’가 3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돼 지난달 25일 출간됐다. 전 세계 국제정치학도들이 ‘바이블’로 꼽는 책이지만 원서만 90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고, 외교 분야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해 번역에 뛰어드는 사람이 국내에선 거의 없었다. 이런 가운데 현직 외교관인 김성훈 주유엔대표부 참사관이 완역(完譯)에 성공해 외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994년 미국에서 출간된 ‘디플로머시’는 17세기 근대 유럽에서 시작해 400년간의 외교 역사를 훑고, 키신저 전 장관이 강조해온 ‘힘의 균형’에 도달하는 외교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19세기 빈 체제부터 미·소 대립 이후의 탈냉전 질서까지 외교사를 총망라하면서 사건 자체보다는 강대국의 외교 정책에 주목해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일찌감치 미국의 국력 쇠퇴와 다극화 시대의 도래 등을 내다봤는데, ‘세계질서(World Order)’ ‘중국 이야기(On China)’ 등 10권이 넘는 키신저 전 장관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하다. 키신저 전 장관은 2008년 본지 인터뷰에서 “내 책 중 단 하나를 꼽으라면 ‘디플로머시’를 고르겠다”고 했다.
기념비적인 외교 서적이고 유럽·일본·중국 등 주요국에선 출간 후 바로 번역됐지만 한국에선 완역본이 없었다. 전문 번역자가 1년 넘게 매달려야 할 분량이고, 외교사에 대한 상당한 배경 지식이 필요해 출판사 입장에서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 기자 출신인 정진욱(현 민주연구원 부원장)씨가 출판사를 차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동문들 조력을 받아 도전했지만 2011년 일부만 출간하는 데 그쳤고 이후 절판됐다.
역자인 김 참사관은 외무고시 37회 출신으로 중동2과장과 대변인실 공보팀장 등을 지냈고, 미국·수단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의 ‘미국 외교의 대전략’, 브래드 글로서먼 국제전략분석가의 ‘피크 재팬’ 등 다섯 권의 외교·안보 분야 서적을 번역했다. 지난해 10월 유엔총회 때 북한 외교관 면전에서 “북한이 전술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는 건 개탄스러운 일(deplorable)”이라고 말해 주목받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저자는 평소 외교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팬데믹 기간 업무 외 시간을 쪼개가며 번역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는 역자가 원문만큼이나 풍부한 분량의 각주를 달아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책 출간 이후 벌어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같은 최신 사례도 언급해가며 30년 전 출간된 책이 고전에만 머물지 않도록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 것이다. 이 책은 외교 서적으로는 드물게 출간된 지 2주가 지난 현재 교보문고 사회·정치 부문 9위(판매량 기준)에 올라 있고, 일부 대학에선 국제정치학 수업의 보조 교재로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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